스탈린 시대의 일상을 엿보게 하는 책 '속삭이는 사회'
스탈린 시대의 일상을 엿보게 하는 책 '속삭이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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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9.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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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한소 수교 전후에 모스크바로 간 한국인들이 놀란 것중의 하나는 비밀 보장이 잘 안되는 주거형태였다. 모스크바 도심은 물론이고 외곽 지역에까지 거의 일정한 주거형태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중 5층짜리 아파트는 흐루시초프 전 공산당 서기장 시절 우리의 '신도시'처럼 속전속결로 세운 저층 아파트다.

이 아파트에 앞서 스탈린 시대에는 거의 공동 아파트 체제였다. 그 아파트 일부는 모스크바에 남아 있었다. 소위 부엌과 화장실을 다가구가 같이 쓰는 아파트 시스템이다. 비좁은 아파트에는 거실에 침대 겸용 소파가 놓여 있어 낮에는 소파로 사용하다 밤에는 침대로 개조해 잠을 잤다. 술주정 아버지는 그 침대에서 담배를 피면서 졸다가 침대에 불이 나기도 했단다. 그 흔적들이 남아 있는 집을 가본적도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속삭이는 사회(The Whisperers) 1·2'는 그 시절 소련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영국의 역사학자 올랜도 파이지스가 2007년에 출간한 책인데, 러시아 역사를 전공한 김남섭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가 번역했다. 교양인 발간. 1권(560쪽)·2권(604쪽). 각 권 2만3천원.

'속삭이는 사회'는 소비에트 억압 체제가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 인간관계, 가치관과 내면 심리에 끼친 영향을 당사자 자신의 목소리로 서술한 최초의 책이다. 그런 억압이 가능한 게 바로 공동주거 형태 때문이었다.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1930년대 중반 주민의 4분의 3이 공동 아파트에 살았다. 공동 아파트는 국가의 감시 권력을 사적 공간으로 확장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저자는 1권 308쪽에서 비밀을 보장할 수 없는 주거형태의 특징을 이렇게 적었다.

"공동 아파트의 주민들은 이웃들의 개인적 습관, 방문객과 친구, 구입한 물건, 먹은 음식, 전화로 말한 내용, 심지어 벽이 매우 얇았기 때문에 방에서 말한 내용까지 거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는 것을 미덕으로 보는 소비에트 사회에서 사람들은 섣부른 한마디로 체포당할 걱정을 해야 했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다. 대화는 밤에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이뤄졌다. 곳곳에 감시의 눈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속삭이는 집안에서 자랐다.

저자는 1천 명에 달하는 생존자 인터뷰와 무수한 편지 및 일기를 바탕으로 당대를 살아간 이들의 숨결까지 되살렸다.

스탈린 시대의 억압 경험은 러시아 사람들의 내면 심리와 가치관, 가족과 친구를 비롯한 인간관계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피해자였던 기억, 가해자였던 기억, 방관자였던 기억으로 지금도 무수한 사람이 괴로워하고 있다.

이 책은 편지와 사진, 일기, 개인 문서 등 주로 각 가족이 보관한 사적인 자료와 러시아의 인권 단체인 '메모리알 협회' 도움으로 1천 명 이상을 인터뷰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삼아 썼다.

저자는 총 1천 명 이상의 사람들과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수집한 원자료를 확인하고 이 책의 구술사 프로젝트에 포함할 가족들을 선택했다. 소련 사회 전체를 대표할 수 있도록 표본을 선정하는 데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으며, 인터뷰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있어야만 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저자는 스탈린 시대를 산 여러 가족의 내밀한 역사를 20여 년의 구상과 5년의 조사 및 연구 기간을 거쳐 이 책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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