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2월 21일자 조선일보엔 ‘본사 노국(露國) 특파기자 김준연씨 금조(今朝) 출발’이라는 제목의 사고가 실렸다. “로서아는 옛날부터 북극의 곰이라는 별명을 들어왔다. 컴컴한 나라, 굳센 나라, 무서운 나라라는 인상을 주어왔다. 그 알기 어려운 로서아가 한 번 ‘꿍’하고 돌아눕는 때에 세계 각국은 대경실색하였다. 과격파의 나라, 공산주의의 나라, 인류 역사상에 신기록을 만든 나라… (중략) 이 의문의 나라를 하루 바삐 독자 여러분 앞에 소개하기 위하여… (중략) 금 21일 오전 8시 경성역발 열차로 노국(露國) ‘모스꾸바’를 향하여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러시아 특파원 부임을 알린 이 사고의 주인공은 신조선 창간호에 ‘최근 일본 정계의 번민상(煩悶相)’이란 글을 쓴 김준연(金俊淵)이다. 45일간의 모스크바 체류를 마치고 6월 11일 귀국한 그는 6월 14일부터 ‘노농(勞農) 노서아의 현상’이라는 제목으로 40회에 걸쳐 러시아 사회 각 분야를 상세히 소개했다.
김준연은 광복 후 민족진영의 지도자로 정계에 투신, 제헌의원, 3∼6대 의원, 법무장관을 거쳐 1967년 민중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5선 의원을 지냈지만 말년엔 변변한 집 한 칸이 없었다고 한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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