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사고의 비상탈출시, 기내서 짐가방을 챙기는 행동은 죄악일까?
항공기 사고의 비상탈출시, 기내서 짐가방을 챙기는 행동은 죄악일까?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9.05.08 0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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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언론, 당초에는 "희생자를 키웠다"고 보도, "영향없었다" 정정?
한 아기 엄마 "미리 통로앞에 나와있었다" 증언, 다들 미리 준비한듯

항공기 사고의 비상탈출시, 비상구에 가까운 승객이 기내 수화물칸에 든 자신의 짐을 챙기려는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건 탈출에 얼마나 지장을 줄까?

모스크바 세레메체보 공항에서 발생한 '수퍼젯 100' 여객기 화재사고는 이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현지 언론은 사고 발생 초기에 생존한 일부 승객들의 주장을 인용, "일부 몰지각한(?) 승객이 자신의 짐을 챙기려다 탈출 통로를 막았고, 그 바람에 뒷쪽 승객의 희생자가 예상외로 컸다"고 보도했다.

그후 생존 승객들중 뚱뚱한 한 남성을 비롯해 짐가방을 든 일부 생존자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법적 조치를 요구하는 여론도 생겨났다. 급기야 무료신문의 대명사인 영국의 메트로는 7일 “짐을 챙기느라 통로를 막아 탈출을 지연시킨 드미트리 클렙니코프라는 승객이 기소됐다”고 보도했다. 그가 앉은 ‘10C’ 좌석에 뒤쪽 승객들 중 살아남은 사람은 단 3명이라고도 했다.
 

탈출통로를 막은 것으로 비난받은 한 생존자의 언론 인터뷰 장면

하지만, 여기까지는 언론의 (추정) 보도였다. 8일 아침 현재 러시아 포탈 얀덱스에 드미트리 클렙니코프를 검색하면, 그의 기소에 관한 기사는 찾을 수가 없다. 탈출 직전 기내 상황과 탈출 과정, 승무원들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공항 인터뷰 기사만 검색될 뿐이다.

이쯤에서 차분히 한번 떠올려 보자. 타고간 비행기가 일단 공항 활주로에 착륙하면 승객들이 기내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대부분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나서 머리위 수화물칸에서 자신의 짐을 챙긴다. 그리고 기다린다. 게이트에 도착해 비행기 문이 열리기 무섭게 빠져나간다.

승무원의 제지에도 미리 탈출을 준비한 아기 엄마에 관한 언론 보도

이번엔 이 시간적 흐름을 모스크바 공항 사고기에 대입해 보자. 회항과 비상착륙 예고로 승객들은 아마 겁에 질려 있었을 것이다. 화재가 발생한 뒤,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채 멈춰서기도 전에 기내는 아수라장이 됐다. 승무원들의 통제도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한 여성은 승무원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기를 안고 미리 통로 앞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탈출에 성공했다고 증언했다. 깜깜한 기내에서 화염의 뜨거움이 전해오는 상황에서 나머지 승객들도 탈출 준비, 적어도 마음의 준비는 했을 게 틀림없다. 일부는 이미 수화물 칸의 짐도 찾아 품에 안고, 문만 열리면 바로 뛰쳐나갈 준비를 했을 것이다.

 

휴대품 소지 승객이 탈출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보도

다시 정상적으로 착륙한 항공기 기내로 가보자. 좌석 사이의 좁은 통로는 두 사람이 나다니기 쉽지 않다. 수화물을 든 앞 사람이 빠져 나가지 않으면 뒷사람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는 게 여객기의 좌석 구조다.

공황상태에 빠진 사고기 기내에서 뒷줄에 있던 사람이 어떻게 앞사람을 제치고 탈출할 수 있을까? 그것도 급하게 비상구를 열고 고무풍선으로 된 비상탈출 트랩을 내린 상태에서. 또 비상탈출은 승무원이든 누구든 도움을 받아야 한다.

노보스티 통신은 7일 "기내에서 소지품을 챙긴 승객들이 다른 승객의 탈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보도를 처음으로 내보냈다. 다른 매체들은 이 기사를 인용, 보도했다. 언론에 따르면 조사 소식통은 "소지품을 챙긴 승객들이 사고기의 대피 속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대피할 수있는 사람들은 모두 신속하게 탈출했다"며 "많은 희생자가 나온 정확한 원인도 조사과정에서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아에로플로트 항공사 대변인은 아예 한술 더 떴다. 이번 사고에서 승객 대피에는 55초가 소요됐다고 주장했다. 원래 규정은 90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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