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보드카가 잘 팔리지 않는 이유?
러시아에서 보드카가 잘 팔리지 않는 이유?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9.10.0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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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의존하던 러시아인들이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을 찾는다?
술 유통채널 개편, 판매처-판매시간 제한 등 강력한 금주정책 효과

'보드카의 나라'에서 보드카가 안 팔린다면? 러시아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블라디보스토크 길거리에서도 '술 취한'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아직 날씨가 추워지기 전이라고 해도, 술에 대한 구매가 눈에 띄게 줄어든 건 분명해 보인다.

최근 유럽에서 나온 술 관련 보고서도 '보드카가 잘 팔리지 않는 러시아의 풍경'을 전해준다. 통계만으로 보면 독일과 프랑스보다 술 소비가 적은 나라가 됐다.

BBC 방송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알코올 정책 영향 사례 연구: 러시아 연방의 알코올 통제 조치가 사망률과 수명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에는 러시아의 1인당 술 소비량이 2003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43%나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2016년 러시아의 1인당 술 소비는 11.7ℓ로 독일(13.4ℓ) 프랑스(12.6ℓ)보다 적었다. 2010년만해도 러시아는 15.8ℓ로 독일, 프랑스보다 많았다. 술 소비가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으니, 보드카는 안팔리는 게 당연하고, 알콜 중독에 따른 사망률도 낮아졌다. 자연스레 기대수명의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해 러시아의 기대 수명은 남성 68세, 여성 78세로 최대로 올라섰다고 한다.

러시아 술전문 판매점 빈랍 

 

술에 관한 한, 러시아는 옐친 전대통령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뉜다. 옐친 전 대통령 이전의 시대, 즉 소비예트 세대에게 보드카는 생활 필수품이나 다름 없었다. 만남은 늘 보드카로 시작하고 끝났다. 옐친마저 술에 취해 외교적 무례를 범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소련 붕괴후 러시아가 출범했던 1990년대 초반 혼란기에는 술 소비가 더욱 늘었다. 당시 남성의 기대수명은 57세에 불과했다. 술은 러시아에서 사망률을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 여겨졌다. 특히 경제활동 인구인 남성들에게 술은 큰 영향을 끼쳤다.

옐친 전대통령의 뒤를 이어 등장한 젊은 푸틴 대통령은 술을 사실상 '사회의 악'으로 규정했다. 푸틴 역시, 술을 잘 안마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WHO 보고서는 술 소비 감소의 원인을 '푸틴 정부의 확고한 금주 정책'에서 찾았다. 푸틴 대통령은 무분별한 술 생산을 막기 위해 술 제조회사를 국영기업화한 뒤, 비합법적인 암시장을 대거 단속했다. 그의 뒤를 이어 2008~2012년 집권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현 총리)은 ‘음주와의 전쟁’에 나섰다. 공공장소와 인터넷에서의 술 광고를 금지하고, 술값과 주류세를 연거푸 인상했다. 술 판매도 허가를 받은 특정 장소에서 성인들을 상대로 오전 8시~오후 11시에만 팔 수 있도록 제한했다. 과거에는 '음료'로 분류되던 맥주를 공식적으로 '술' 영역에 포함하기도 했다. 

이 조치에 따라 도시 길거리에 널려있던 술 가판대(키오스크)는 완전히 사라졌고, '빈랍 винлаб'과 같은 주류 전문 유통업체가 자리를 잡았다. 처음 '빈랍' 간판과 와인 잔 이미지를 보고선 '와인 전문점'으로 착각했다. 알고 보니, 술 전문마켓이었다.

러시아에서 중산층의 확대와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생활패턴도 술 소비 감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젊은 층들이 몸에 나쁜(?) 술을 즐겨 마시지 않는다는 것. 대신 그들은 곳곳에 자리잡은 서구식 커피점과 패스트푸드 점에 모여 웃고 떠들든가,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즐겨 찾을 만한 장소가 많지 않는 시골 지역에서는 아직도 집에 모여 술을 마시는 등 과거 음주 문화가 여전하다고 BBC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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