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베리아횡단열차 - 겨울 여행의 참맛은 '시베리아의 눈'
뉴-시베리아횡단열차 - 겨울 여행의 참맛은 '시베리아의 눈'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2.29 1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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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우데를 떠나 이르쿠츠크로 향하면서 시베리아횡단열차의 '겨울 여행'은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열차가 바이칼 호수를 끼고 돌면서 창밖 풍경은 '눈 덮힌 시베리아의 겨울'속에 가 있었다. 

시베리아여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모스크바와 같은 음울한 눈 날씨'보다 '쌓인 눈위로 내리쬐는 밝은 햇살'을 기대하고, 여행 일정에 따른 날씨를 체크하곤 했다. '흐린 뒤 맑음'이라는 예보에도 '앗싸!' 환호를 내질렀다. 

그러나 막상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니 '눈 구경'을 할 수 없었다. 최근 몇년간 눈이 너무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올라 '울란우데'까지 오는 열차 안에서도 '시베리아의 눈'을 제대로 눈에 담지 못했다. 넓은 평원에도, 야트마한 산비탈에도 눈은 드문드문 쌓였고, 길고 날씬한 자작나무의 하얀 종아리가 허전함을 안겨주곤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서 울란우데로 가는 열차의 바깥 풍경. 그나마 위의 사진 정도가 위안거리였다

울란우데를 떠나 이르쿠츠크로 향하면서 시베리아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달리는 차창이 차츰 하얀색으로 물들더니, 어느 순간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바이칼 호수는 '하얀 세상' 속에 잠들고, 드문 드문 나타나는 '작은 마을'도 눈 속에 파묻혀 있다. 눈보라를 헤치며 시베리아를 달리는 '닥터 지바고'의 영화 장면이 소리없이 현실로 들어왔다.
 

울란우데서 이르쿠츠크로 향하는 열차 바깥풍경. 눈속에 갇힌 마을들과 바이칼 호수

밤에 내린 이르쿠츠크 역에도 눈은 가득 쌓여 있다. 하룻밤을 지내고 계속 달리다 정차한 크라스노야르스크. 40분을 쉬어갈 만큼 큰 도시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역에 내리니 바로 옆 철로에 이상하게 생긴 기관차 하나가 천천히 오가고 있다. 철로 제설용 기관차다. 

기관차 앞바퀴에 붙어 있는 제설기기가 철로에 쌓인 눈을 빨아올려 뒤쪽 화물용 차량으로 보낸다. 화물은 바로 '눈'이다. 모스크바에서 쏟아지는 눈을 순식간에 치우는 제설차량을 보고 '감탄했던 마음'이 또 한번 일렁거린다. "이젠, 저런 기관차도 나왔구나!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눈을 치우기 위해 하루 종일 철로를 쓸었을꼬!"|

크라스노야르스크 역의 제설 기관차. 맨 앞쪽의 제설기기가 눈을 쓸며 빨아올린 뒤 뒤쪽 화물차량으로 보낸다. 가운데 하얀 것들이 모두 뒷칸으로 운반되는 눈이다.

눈 세상은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크라스노야르스크를 출발한 뒤에도 오랫동안 '시베리아 눈' 구경에 심취해 있던 우리는, 이 감정 그대로 영화 '닥터 지바고' 속으로 다시 빠져들기로 했다.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기에는 1등석이 최고였다. 눈치볼 것도 없이 창문 커텐을 내리니 '작은 영화방'으로 변했다. '닥터 지바고'는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울란우데 호텔에서 다시 다운받아둔 것 아니겠는가? 

눈 내리는 시베리아횡단열차 정차역

007호 열차는 노보시비르스크가 종착역이다. 새벽 1시가 넘어 마지막 큰 정차역인 타이가 역에서 50분간을 쉰 뒤 내처달려 새벽 5시에 노보시비르스크에 닿는다. 승무원들은 타이가 역을 지나면서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꼬박 닷새를 열차에서만 보냈으니 그 기분도 이해가 된다.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내리면서, 감정을 건드리는 불평불만에 애궂은 잔소리에 속을 끓였을까 싶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있다. 차량 출입구와 화장실, 복도 등 차량 내부를 청소하는가 싶더니 화장실 문을 아예 잠궈버렸다. 우리도 열차에서 내리기 전에 이빨도 닦고 뒷처리도 해야 하는데.. 뒤통수에 승무원의 따가운 눈초리를 느끼며 노보시비르스크에 내렸다. 다행히 영하 10도 안팎이다.
 

노보시비르스크역과 역앞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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