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식 집권 연장 플랜은 결국 '개헌을 통해 2번 더' 였다 - 2036년까지
푸틴식 집권 연장 플랜은 결국 '개헌을 통해 2번 더' 였다 - 2036년까지
  • 나타샤 기자
  • buyrussia2@gmail.com
  • 승인 2020.03.11 06: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헌안 하원 2차 독해 통과, '현직 대통령도 2번 더 대통령직 맡을 수 있다'
해임된 '회색 추기경' 수르코프 전 보좌관이 기본 틀을 짠듯 - 치밀한 각본?

푸틴식 러시아 헌법개정안의 실체가 10일 드러났다. 한마디로 '기가 막히는' 푸틴 대통령의 집권 연장 '꼼수'라고 부를 만하다.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연임금지 조항 때문에 최측근인 메드베데프 총리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고, 4년 뒤 다시 복귀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헌법을 바꿔 집권을 계속하겠다는 속셈을 완전히 드러냈다.

국가두마(하원)에서 연설하는 푸틴대통령/크렘린 홈페이지

푸틴 대통령이 '대통령은 2번 이상 못한다'고 못을 박는 헌법 개정안을 내놓은 것은 지난 달 15일.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기존의 '국가평의회'를 헌법기관으로 독립시키는 등 국가 권력체제를 일부 바꾸는 개정안도 동시에 제시되자, 서방언론은 일제히 '푸틴 대통령이 대통령이 아닌 다른 직책으로 영구집권을 꾀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개헌으로 권력이 강화될 '국가평의회' 의장, 상하원의장, 집권 여당 대표 등을 맡아 '상왕' 자리에 머물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전대통령,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총리, 중국의 덩샤오핑 등과 같이 '실질적인 1인자' 자리를 겨냥하고 있다는 전망이 이어졌다. 러시아 현지의 정치 전문가들도 반신반의하면서 그같은 가능성에 문을 열어뒀다.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개헌안을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면서, 참석자들은 '권유하는 형식'을 빌어 그같은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도 했다. 주로 '체제의 급격한 변환시 초래될 혼란을 막기 위한 완충장치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단호했다. "의원내각제 등 다른 정치체제는 러시아에 맞지 않는다" "러시아에 두개의 권력(대통령과 국가평의회)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국가평의회 의장이나 종신 상원의원(장)을 맡을 생각이 없다"는 등 그간 제기된 집권연장 시나리오를 강력히 부인했다. 

푸틴 대통령은 2036년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있다

결과론적이지만, 푸틴식 집권연장 플랜은 일반 정치전문가들의 머리를 벗어나 있었다. 헌법이 바뀌고 권력체계가 달라지는 만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2번에 걸쳐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컨셉이 다른 시나리오를 갖고 시작한 헌법 개정안이었다. 4번째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푸틴에게나, 한번 대통령을 역임한 메드데베프 전 총리에게나, 한번도 대통령직을 지내지 못한 다른 지도자에게나 공평하게 2번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10일 개헌안 2차 독회가 이뤄진 국가두마에 나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두번의 대통령에 입후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개헌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하원은 푸틴 대통령의 2024년 대선 출마를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된 개헌안을 압도적 지지(찬성 380표, 반대 43표, 기권 1표)로 통과시켰다.

대통령 선수를 제로화하는 헌법개정안을 제안하는 테레쉬코바 의원/얀덱스 캡처

이 개헌안은 원래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 출신의 발렌티나 테레쉬코바 하원의원이 내놓은 안이다. 테레쉬코바 의원은 이날 개헌안 심의에서 "대통령 임기 제한을 (아예) 없애든지 개헌안에 현직 대통령도 과거 경력을 제로화(0)해 다른 후보들과 똑같이 입후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을 넣자"고 제안했고, 푸틴 대통령이 이를 지지하는 형식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헌법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전제조건"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헌법재판소가 이 개헌안을 거부할 리는 없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푸틴식 집권연장 플랜은 지난달 말, 언론에 한번 등장한 적이 있다. 푸틴 대통령의 집권 초기(2000년)에 '크렘린의 회색추기경'으로 불린 최측근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가 정치전문가와 대담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헌법체제하에서는 기존 대통령의 선수(임기)도 제로화(0)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수르코프는 당시 대통령 보좌관에서 해임된 지 10여일이 지난 상태였다. 크렘린은 언론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한 시민의 개인적 의견”이라고 피해갔다.

되돌아보면, 수르코프 보좌관은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푸틴 대통령의 집권(연장)을 위해 '기본 틀'을 짰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그는 개헌안이 제시된 지 한달여 만에 별다른 설명도 없이 크렘린 보좌관 직책에서 해임됐다. 일견 '팽' 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치밀한 각본과 철저한 계산속에 그의 거취가 결정됐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하원의 개헌안 2차 독회를 계기로 '집권 연장의 길'을 새롭게 열었다. 오는 4월 22일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받아들여지면, 푸틴은 2024년 대선 때부터 6년 임기의 대통령직에 두 차례 더 도전할 수 있다. 개헌안 찬반 국민투표가 그의 신임투표 성격을 띠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야권은 개헌안 국민투표 하루 전인 오는 21일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의 2024년 대선 재출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한차례 정치적 폭풍이 불어닥칠 전망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