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격리' 중 러시아의 불만은 지도상 '가상 시위'로 터졌다.
'자가 격리' 중 러시아의 불만은 지도상 '가상 시위'로 터졌다.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4.22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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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카프카스 주민 1500명, '자가 격리' 해제 요구 가두 시위
모스크바 등 주요 도시엔 얀덱스 지도위 '쪽지 붙이기' 가상시위

러시아의 전국민 '자가 격리' 조치가 4주차로 넘어가면서 '격리 생활'을 견디다 못한 일부 지역 주민들이 반대 시위에 나서고, 온라인 상에서는 '가상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30일까지 한달간 '임시 휴일및 자가 격리' 체제에 들어가 있다. 이에 따라 국가 기간사업 등 일부 필수 분야를 제외하고 모든 사회경제적 활동이 '올 스톱' 됐다. 또 대부분의 지역 주민들은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집밖으로 외출이 가능하다.

블라디카프카스 중심가에서 '자가 격리' 반대 시위가 열렸다/얀덱스 캡처
반대시위에 나선 블라디카프카스 주민들/동영상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북카프카스 지역의 북오세티야공화국 수도 블라디카프카스에서는 (자가 격리 4주차가 시작되는) 20일 1천500여명의 주민들이 공화국 청사 앞에 모여 '자가 격리' 조치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며 "출근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또 레스토랑과 상점, 미용실 등이 몰려 있는 상가와 스포츠시설, 각종 클럽 등을 폐쇄한 책임자의 사임을 외쳤다.

북오세티아 공화국 정부는 시위 주도세력과 만나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지역내에서 177명이나 나왔다"며 '자가 격리'의 불가피성을 설득했지만, 시위대는 끝내 경찰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과격 시위자 55명이 체포됐다. 

블라디카프카스 중심가를 가득 메운 시위대/동영상 캡처

북오세티아 공화국 시위와는 또다른 온라인 '가상 시위'는 이날 남부 로스토프시를 시작으로 모스크바까지 수많은 도시를 휩쓸고 지나갔다.

발단은 '통행허가제'를 시행키로 한 로스토프시 당국의 허술한 허가증 발급 시스템. 주민들은 통행허가증이 제대로 발급되지 않자, 러시아 포탈사이트 얀덱스 지도(Yandex.Maps)와 얀덱스 내비(Yandex.Navigator)에서 '플래시 몹' 형식의 '가상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가상 시위'는 얀덱스 지도에 있는 시 청사 앞에 '불만'을 터뜨리는 의견 쪽지를 일시에 붙이는 식으로 진행됐다. 원래 얀덱스 지도에는 교통사고 등 긴급사항을 알려주는 '쪽지 붙이기및 대화' 기능이 있는데, 이 기능을 이용해 시 당국에 대한 항의 표시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 네티즌들의 '가상 시위'/현지 매체 veved.ru 캡처

이같은 가상 시위는 이날 봇물 터지듯 다른 지역으로 급속히 번졌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니즈니노브고로드, 예카테린부르크, 우파 등을 거쳐 모스크바 크렘린 앞에도 열렸다. 네티즌들은 크렘린을 포위하듯 쪽지를 붙이는 '플래시 몹'으로 대정부 항의 시위를 펼쳤다.

각 지역 가상 시위의 주메뉴는 역시 '자가 격리'조치에 따른 불편과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용. “집에 계속 머물 돈이 없다” “언제까지 아이들을 집에 둘 것이냐" “거리로 나가자” “(맛있는 것)먹고 싶다" "대출금을 낼 돈이 없다" “실제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등등이었다. 또 "자가 격리 조치를 해제하라"는 등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도 적지 않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얀덱스측은 가상 시위대가 남긴 메모를 지우기 시작했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일각에서는 얀덱스가 쪽지를 삭제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얀덱스측은 이 기능은 긴급 교통상황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모스크바 '가상 시위'는 오후 4시에 시작됐다고 한다. 네티즌 수천명이 크렘린 성벽과 붉은 광장 등으로 몰렸다. 현지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는 "얀덱스 지도상에 쪽지(메시지)가 서로 겹쳐지는 바람에 대략적인 참가자 수조차 추정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시위에는 "얀덱스, (쪽지를) 삭제하지 말라. 우리에겐 시간이 많다. 더 많이 쓸 것"이라는 메세지도 등장했다.

'가상 시위'의 특징은 역시 단시간에 몰렸다가 급속히 사라지는 것. 저녁 7시쯤에는 얀덱스 지도상에 거의 모든 쪽지가 사라지고 얀덱스는 다시 정상화됐다. 

야당 지도자들은 이번 가상 시위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위가 '자가 격리'로 지루해진 사람들에 의해 즉흥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거리에서 표출하지 못하니 온라인으로 번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크렘린의 트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블라디카프카스의 '자가 격리' 반대 시위에 대해서는 "불법"이라고 규정하면서도, 가상 시위에 대해서는 "인터넷 공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의견 표출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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