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쇼프 소련공산당 제1서기의 아들 세르게이 사망
흐루쇼프 소련공산당 제1서기의 아들 세르게이 사망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6.21 0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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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거 음모 적발, 회고록 발간 등 아버지를 위해 일생을 산 막내 아들

스탈린 격하운동을 벌인 옛 소련 공산당 중앙위 제1서기(최고 권력자) 니키타 흐루쇼프 Никита Хрущев (국내 언론은 이전에 흐루시초프라고 적었다)의 아들 세르게이 흐루쇼프가 18일 미국에서 숨졌다. 향년 84세.

러시아 언론들에 따르면 세르게이가 그동안 거주해온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크랜스턴에서 이날 눈을 감았다고 유족들이 전했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니키타 흐루쇼프의 아들 미국에서 사망/얀덱스 캡처

흐루쇼프 제1서기의 막내 아들인 세르게이는 1958년 모스크바 전력공과대학를 졸업한 뒤 자동제어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했으나, 소련 핵미사일 개발자인 블라디미르 첼로메이의 권유로 로켓 엔지니어가 됐다. 그러나 아버지 실각 후 로켓 연구소에서 쫓겨났고, 아버지가 사실상 감금된 별장에서 '아버지 회고록'을 준비하는 등 역사적 사실의 기록에 심취했다.

1970년 서방에서 4권짜리 '아버지 회고록'을 발간하는데 앞장선 그는 소련이 무너져 가던 지난 1991년 미국으로 이주해 브라운대학에서 미-소 냉전 역사 강의를 맡았다. 그는 대학 강의 시절에 "아주 편안했다"고 회고하고, 흐루쇼프 시대를 그린 '초강대국의 탄생' 등의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세르게이의 부고를 전한 현지 언론에 따르면 소련 정치국의 흐루쇼프 제1서기 제거 음모를 세르게이가 가장 먼저 알고 아버지에게 귀띔했다고 한다. 아버지도 당시 정치국원 니콜라이 포드고르니를 불러 '음모의 존재' 여부를 물었다고 했다. 1964년 흐루쇼프 제1서기 축출에는 비교적 젊은 블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흐루쇼프 후임 권력자)과 코시킨 전 총리, 포드고르니 정치국원 등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흐루쇼프 제1서기의 아들 세르게이의 생전 모습/현지 TV 캡처

현지 매체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MK)는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지만, 흐루쇼프 제1서기가 아들 세르게이의 말을 들었다면 권력을 잃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전했다. 또 "세르게이는 죽을 때까지 아버지(흐루쇼프 제1서기)를 위해 헌신한 아들"이라고도 했다.

흐루쇼프 제1서기의 큰 아들 레오니드는 소련공군 폭격기 조종사로, 제2차세계대전에서 독일군 폭격에 나섰다가 격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흐루쇼프 제1서기는 스탈린 사후 전설적인 비밀경찰 총수 베리아를 제거하고 권좌에 올라 '스탈린 시대'를 비판하는 등 개혁정책을 추진했으나 1964년 비교적 젊은 정적들에 의해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쫒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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