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출신 하바로프스크 주지사 전격 체포 - 지지자들 '석방 요구' 대규모 시위
야당 출신 하바로프스크 주지사 전격 체포 - 지지자들 '석방 요구' 대규모 시위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7.13 0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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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지방선거서 결선투표끝에 승리한 야당 단체장 - 푸틴에게 밉보여
개헌안 통과 후 '분위기' 장악 위한 야당 압박? 옐친 전대통령 전략과 유사

러시아 극동 하바로프스크주의 세르게이 푸르갈 주지사(50)가 10일 살인 공모및 교사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자유민주당(자민당) 소속인 푸르갈 주지사는 85개 연방주체(자치공화국과 주 등)로 구성되는 러시아 연방내에서 몇 안되는 야당 출신 연방주체(우리식으로는 광역단체) 수장이다.

당연하게도(?) 자민당과 그의 지지자 수만명이 11일 하바로프스크시 중심가인 레닌광장 주변에서 푸르갈의 석방을 요구하며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였다. 자민당 블라디미르 쥐리노프스키 당수도 "스탈린 시대와 같이 행동한다"며 크렘린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경찰, 푸르갈 구속 반대에 항의하는 '불법시위(?)의 주도자 소환/얀덱스 캡처 

푸르갈 주지사의 구속은 시기적으로 '야당 손보기' 혹은 '지방의 반 푸틴 분위기 제압'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그의 혐의는 14~15년 전 사건에 대한 것으로, 국가에 따라서는 법률적 공소시효가 이미 끝난 것일 수도 있다.

더욱이 푸틴 대통령에게 사실상 '종신 집권의 문'을 열어준 '셀프 개헌안'이 지난 1일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78%)로 통과된지 열흘도 채 안돼 야당의 지자체 단체장을 긴급 체포한 것은 '특별한 목적'을 지닌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그의 전임인 옐친 전대통령 주도의 '개헌안 통과' 이후를 떠올리게 한다. 1991년 12월 소련의 해체 후에도 소련공산당의 영향력 하에 있던 러시아 의회주도세력에 맞서 옐친 대통령은 1993년 12월 대통령의 절대적인 권력을 명문화한 헌법 개정안을 가까스로 통과시킨 뒤, 이듬해 10월 탱크를 동원해 새 헌법에 반대하는 의회 건물를 포격하는 등 무력으로 반대세력을 제압한 바 있다. 

오는 9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뒤늦게 터져나올 수도 있는 야권 주도의 '반 개헌, 반 푸틴' 분위기를 제압하고, 지방 선거의 승리를 위해 '사정 정국' 만들기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바로프스크주와 연해주 등 극동 지역은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반 정부 성향이 강한 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이들 지역의 지지율은 다른 지역들보다 크게 낮았고, 최근 개헌 국민투표에서도 찬성율은 62%에 그쳐 전체 지지율(78%)보다 못미쳤다.

더욱이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해임한 집권 여당 소속 미하일 이그나티예프(58) 추바시 공화국 대통령이 지난 5월 대법원에 해임 무효 청구 소송을 내자 '지방 정부 수장의 이반'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그나티예프 대통령은 소송을 제기한 지 한달만에 사망했는데, 신종 코로나(COVID 19) 감염에 의한 것으로 발표됐다.

푸르갈 주지사의 국가두마(하원) 의원 시절/인스타그램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모스크바 바스만니 구역법원은 10일 푸르갈 주지사에 대한 구속전 피의자 심문에서 수사당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오는 9월 9일까지 2개월간 구속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긴급체포된 뒤 모스크바로 압송된 푸르갈 주지사는 이날 심문에서 자신에 대한 모든 혐의를 부인하면서 범죄에 개입한 바 없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사당국은 마피아(범죄조직) 조직원 4명을 체포해 조사하고 있으며, 이들로부터 푸르갈 주지사의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푸르갈 주지사가 지난 10년 동안 형사 사건으로 체포된 13번째 주지사라고 한다.

그가 구속된 후 하바로프스크에서는 푸르갈 주지사 구속에 항의하는 현지 주민들이 11일 시내 레닌광장과 중심가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현지 온라인 뉴스통신 '데베노보스티'는 이날 시위에 최대 3만5천명이 참가했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레닌광장에서 중앙로를 따라 행진하면서 '푸르갈', '자유를', '모스크바는 물러가라', '푸틴은 도둑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하바로프스크주 전역에는 신종 코로나(COVID 19)로 인한 대중행사 금지령이 내려져 있어, 경찰당국은 당국의 허가 없이 진행된 항의 시위의 주도자들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푸르갈 주지사 체포에 격분한 쥐리노프스키 자민당 당수는 "당신들(크렘린)은 우리에게 개헌 지지을 부탁했고, 우리는 그것을 들어줬다"면서 "우리의 손에 수갑을 채운 것은 스탈린 시대에서나 하는 행동"이라고 크게 반발했다. 그는 자유민주당 출신 하원 의원과 주지사가 집단 사퇴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푸르갈 하바로프스크 주지사, 형사 범죄 혐의로 체포/얀덱스 캡처

앞서 중대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연방수사위원회와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은 지난 9일 아침 출근 중이던 푸르갈 주지사를 하바로프스크의 자택 인근에서 전격 체포해 수천km 떨어진 모스크바로 압송했다. 

푸르갈 주지사는 지난 2004, 2005년 극동 하바로프스크주와 아무르주에서 자행된 마피아의 기업인 살해및 살해 미수 사건 3건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기업가 출신의 푸르갈 주지사는 2007년부터 11년 동안 자민당 소속의 연방하원 의원을 지낸 뒤 2018년 9월 지방선거에서 2차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집권당 후보를 누르고 하바로프스크 주지사에 당선됐다. 그는 여당 후보를 상대로 승리한 몇 안 되는 단체장 가운데 1명으로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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