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러시아 그리고 내일 3 - 확 달라진 우체국, 인터넷 쇼핑의 총아로
소련, 러시아 그리고 내일 3 - 확 달라진 우체국, 인터넷 쇼핑의 총아로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8.09 07: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3년 정부 부처서 독립, 인프라 확충 등 경쟁력 강화 - 해외직구 독점
'지역의 디지털 센터'로 변신 중 - 금융 의료 교육 쇼핑 등 비즈니스 강화

#1 러시아우체국 Почта России의 세르게이 에멜첸코프 정보기술및 디지털 서비스 개발 담당 부청장이 최근 직권남용과 배임 등의 혐의로 9월 13일까지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지난 2016년부터 통계청 등 주요 기관(업체)의 전산화 관련 장비 교체 과정에서 일부 업체와 담합했다는 반독점법 위반에, 우체국 측에도 6천700만 루블의 손실을 끼쳤다는 혐의다. 

#2 막심 아키모프 러시아우체국 청장은 지난달 푸틴 대통령에게 시골 마을에 있는 우체국(지점)을 '지역 디지털 센터'로 바꿔 신종 코로나(COVID 19)에 의한 언택트(비대면) 시대에 공공서비스를 강화하겠다고 보고했다. 기존의 우편·택배 배달 서비스를 토대로 온라인 금융, 인터넷 쇼핑, 디지털 의료서비스 등 모든 생활 서비스가 가능한 곳으로 변신하겠다는 계획이다.

러시아 우체국이 느닷없이 찾아온 '비대면 시대'를 맞아 변신을 더욱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급속한 체제 변화 과정에서 삐져나온 불법과 탈법, 편법 등에 대해서는 '과거 청산' 작업의 수순으로 정리를 계속하면서, 도전적인 '미래 청사진'을 그려나가는 중이다.

러시아 우체국 홈피. 편지 배송 금융이체를 담당한다고 되어 있다/캡처  

러시아 우체국은 7~8년 전만해도 '소비예트(소련) 잔재'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후진적인 조직으로 국민들로부터 원성이 높았다. 어차피 독점적 영업 분야이다 보니, 굳이 바꿔야 할 필요성을 못느꼈던 곳. 2010년 초 러시아에 도착한 국제우편물·택배의 배송이 어떤 지역에서는 2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인터넷 쇼핑이 확산되던 그 시절, 배송 지연에 우체국의 '존재 가치'마저 부정당했다.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우체국 기능이 2013년 4월 정부 부처(통신부)로부터 독립하면서. 급속도로 성장하는 민간배송·물류업체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물류 인프라 개선과 전산화 시스템 확충 등에 나섰다. 지역 곳곳에 대규모 물류센터를 마련하고 이를 자동화 시스템으로 묶어 어느 지역이든 배달 시간을 평균화하고 단축했다. 

그 과정에서 핵심은 바로 물류 인프라의 자동화. 엊그제 가택연금에 처한 에멜첸코프 부청장이 혁혁한 공을 세운 분야였다. 그가 형사처벌 대상에 올랐다는 것은, 우체국이 새로운 도약을 위해 '내부 정비'에 들어갔다는 뜻으로 읽힌다.

러시아와 국제 우편물·택배 거래를 경험한 사람들은 "러시아 국제우편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그만한 인프라가 갖춰진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550여대의 우편·화물 전용 차량과 각종 배달 차량 1만7천여대가 24시간 러시아 전역을 누비고 있다. 시베리아횡단열차 중 고속특급차량(엑스프레스)에는 거의 빠짐없이 우체국 전용 객차가 달려 있다. 화물열차에 매달고 이동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간 이동에 무려 1주일(특급열차 8일, 화물열차 14일)이나 단축된다.

러시아 우체국의 자체 항공기(위)와 전용 배송트럭/사진출처: 홈피 SNS
러시아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접속된 우체국 객차/사진 출처:바이러 자료

항공 운송도 일반화됐다. 러시아우체국은 아에로플로트항공을 비롯해 시베리아항공(S7) 등 지역 기반의 항공사들과 직접 계약을 맺고 '빠른 우편물'들을 실어나른다. 또 자체 화물기(Tu-204) 2대는 배달물품을 국내외로 직송하는 중이다. 주로 노보시비르스크와 예카테린부르크, 노릴스크, 야쿠츠크 등 시베리아 도시로 향한다. 해외직구 물품 배달을 위해 중국을 오가기도 한다.

당초 계획에는 러시아우체국은 올해 60여 대의 우편·화물 전용 자동차와 2천여대의 운송 차량을 구입할 계획이었으나, 신종 코로나사태로 더욱 늘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 우편·택배물은 러시아에서 가장 큰 물류 센터인 '브누코보-1'을 통한다. 분류된 물품은 바로 각 지역으로 옮겨져 현지에서 세관 검사를 거친 뒤 주소지로 배달된다. 몇년 전만 해도 모스크바에서 일률적으로 세관검사를 거쳐 각 지역 주소지로 배송됐다. 세관 통관 시간을 줄어 배송 시간을 단축한 것이다. 

러시아우체국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국제 우편 부문 비중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2018년 전체 매출의 15%를 차지하던 국제 부문 비중이 2019년 20%로 늘어났고, 5년 내에 50%를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러시아 우체국을 이용한 해외직구가 지난해 3억4,500만 건으로, DHL 등 급행 민간 서비스보다 10배 가량 웃도는 것을 보면, 허황된 전망은 아니다. 

더욱이 러시아 우체국의 '발전 전략 2020-2030'에 따르면 전국의 80%에 이르는 지역에서 배달 시간을 1~3일로 줄일 계획이다. 이를 통해 우편·물류 서비스 분야에서 세계 5위권에 진입할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러시아 우체국의 궁극적인 미래 청사진은 '지역 디지털 센터'로의 변신이다. 우편물 배달 네트워크를 통해 시차만 무려 11시간이 나는 크고 넓은 땅덩어리를 하나로 묶어온 러시아 우체국이 '디지털 네트워크' 구축으로 각 지역의 디지털 핵심 역량이 되겠다는 것. e메일과 소셜미디어(SNS) 등의 활성화로 우편 기능이 줄어든 시대에 사업의 다각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또 러시아 전역의 4만2,000여개 지점중 3만여개가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 있어 가능한 구상이다. 

아키모프 청장이 지난달 푸틴 대통령에게 보고한 '신종 코로나 시대의 우체국 현안과 목표'는 크게 2가지다. 1만 1천개 지점이 공공 서비스의 통합 포털사이트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금융및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것과 실업자 구제다.

그는 신종 코로나 사태로 올해 매출(수익)이 전년도 대비 180억~300억 루블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 5천여명을 추가로 고용하겠다고 했다. 기존의 우편배달 물건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새로운 디지털 사업에 따른 추가 고용 수요를 예상한 선택이다.

러시아 우체국 새 사업은 그동안 소외된 오지 지역에 대한 '디지털 공공 서비스'다. 모바일 앱과  간단한 전자 서명을 통해 금융, 의료,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고, EMS 배송에 선불·착불 서비스 등도 주어진다. 특히 이동통신은 물론이고, 주택·난방·상수도 등 공공 서비스 요금에 대한 온라인/모바일 지불·결제 시스템인 '모바일 우편 현금 단말기(BMD)' 시스템이 확대, 가동된다.

직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우체국(지점)에 한번 다녀오면, 'BMD 시스템'을 통해 공공 요금과 정부 서비스료, 교통 벌칙금, 세금, 대출 이자, 보험금 납입 등 거의 모든 금융 서비스가 집에서 가능해진다. 필요하면 영수증은 나중에 배달된다. 2019년 1~8월 승인된 'BMD 시스템' 지불 건수는 144만건에 불과하지만,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주로 은퇴한 노년층이 대상이라고 한다.

'지역 디지털 센터'의 기능중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의료 서비스다. 2019년 12월 기준, 전국 12개 지역에서 시범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약국 체인이 부족한 지역에 병원 처방에 따른 약품을 배달하고, 필요할 경우 응급 처치에도 나선다는 것이다.

우체국 지점내 자체 미니 마켓. 러시아우체국은 식품 시장에 진출한다는 제목이 달려 있다/현지 매체 캡처
(러시아우체국과 인터넷쇼핑몰 '오존'의 디지털 서비스 통합으로) 배송이 2배나 빨라졌다/얀덱스 캡처

'인터넷 쇼핑과 배달'을 묶은 '우체국 쇼핑'도 새로운 개척 분야다. 이미 대형슈퍼마켓 체인인 마그니트(Magnit), 픽스 프라이스(FIX PRICE)와 계약을 통해 필요 식품을 각 가정에 배달해 준다. 러시아의 유력 인터넷 쇼핑몰 '오존' Ozon과는 '디지털 서비스'의 통합을 통해 전국 어디서나 실시간 배달이 가능해졌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먼 사할린이나 추코트카 지방에서도 오존이 판매하는 210만여종의 상품·서비스 중 선택한 물품을 3일만에 받을 수 있다.

아예 각종 생필품들을 진열해 놓고 주문을 받는 우체국(지점)도 나오고 있다. 식료품과 음료는 물론, 가정용 세제와 화장품까지 현장 주문을 받는다. '미니 마켓' 기능까지 겸하는 셈이다. 논란끝에 최근에는 맥주 등 저알콜의 주류도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러시아 우체국의 이같은 사업 다각화는 기본적으로 전국 네트워크가 탄탄하기에 가능하다. 러시아 우체국은 전국 34개 도시에 다양한 수준의 자동화를 갖춘 40개의 물류 센터를 갖추고 있다. 초현대식 대형 분류 센터에서 이제 갓 수동화를 벗어난 수준의 센터까지 다양하다.

특히 2019년 초, '브누코보-2' 자동화 물류 센터를 가동하면서 러시아 전역의 배달 시간을 전년 대비 20% 가까이 단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로 인터넷 쇼핑몰 주문을 처리한다. 

결론적으로 러시아 우체국은 2018년 말 기준으로, 전국에 4만2천여 개의 지점을 두고, 연간 약 25억 건의 우편·택배물 처리를 담당하면서 약 2천만 명의 가입자에게 금융 등 다양한 민생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체국을 통한 연간 거래 규모는 약 3조2천억 루블에 이른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