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구속한 키르기스 권력의 부메랑? 제엔베코프 대통령 탄핵 위기
전직 대통령 구속한 키르기스 권력의 부메랑? 제엔베코프 대통령 탄핵 위기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0.10.09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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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불복 대규모 시위후 정국 주도권은 야권에, 의지할 곳 없는 제엔베코프
한때 대통령 행방도 묘연, 평화적인 정권교체 의미 퇴색 - 안타까운 협치 부족

야권의 총선 불복 시위로 정국 혼란을 겪고 있는 키르기스스탄의 앞날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국 불안은 소론바이 제엔베코프 대통령 측의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야권의 대규모 시위로 촉발됐지만, 잠재된 전 현직 대통령간의 갈등이 폭발했다는 분석도 있다. 시위대가 키르기스 보안당국(KGB) 교도소로 몰려가 수감되어 있던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을 석방시킨 것도 허술히 넘길 일이 아니다.

소론바이 제엔베코프 대통령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 자신에 대한 당국의 체포 작전에 항의하는 모습이다/러시아 매체 rbc 동영상 캡처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은 단임 임기 6년(2011~2017)을 끝내면서 후계자로 점찍은 제엔베코프 총리(현 대통령)에게 권력을 물려주었다. 1991년 소련 붕괴 뒤 사실상 첫 평화적인 정권교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전에는 2005년, 2010년 당시 대통령(임기 5년 연임제)들이 모두 쿠데타성 시민혁명으로 쫓겨났다. 그 혼란을 수습하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낸 정치인이 바로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2017년 10월 권력을 물려받은 제엔베코프 대통령 측은 지난해 8월 전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부정부패, 비리혐의로 체포했다. 그 과정에서 2차례에 걸쳐 무력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임 대통령 지지세력은 자신들이 물려준 현 권력이 1년 10개월여만에 '칼을 거꾸로 들고 자신들을 압박해 오자' 잔뜩 벼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0년 당시 쿠르만벡 바키예프 대통령 축출에 앞장선 조국당 등이 의회에서 제엔베코프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하는 이유다. 탄핵안은 전체 의원 3분의 1 이상의 찬성으로 발의되고,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된다. 

비슈케크 시청을 접수한 전직 대통령 세력. 앉아있는 사람은 전 정권의 내무부 차관 쿠르산 아사노프. 그는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 체포작전을 방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페이스북 캡처  

의회는 또 아브딜다예프를 새 의장으로 선출하고, 이번 시위 과정에서 전 대통령과 함께 석방된 야당 메켄칠(애국자당) 당수 사디르 좌파로프를 총리 대행에 임명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제엔베코프 대통령이 한때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러시아 망명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제엔베코프 대통령이 비슈케크에 머물면서 "모든 정치 세력과 직접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으나 어디에서 누구와 협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키르기스 제엔베코프 대통령 행방 묘연. 사진은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얀덱스 캡처
제엔베코프 대통령은 비슈케크에 머물면서 직무 수행 중/얀덱스 캡처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제엔베코프 대통령은 현재의 무질서한 혼란 상황을 수습한 뒤 모든 문제를 야당측과 논의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을 통해 정국을 완전히 장악하려던 시도는 이미 무산된 것으로 분석된다. 의원내각제에 비견될 정도로 권한이 막강한 의회는 야권인사에게 주도권이 넘어갔고, 총리 대행 역시 '반 제엔베코프 대통령' 인사다. 

일각에서는 키르기스가 10년만에 고질병(쿠데타성 시민혁명)이 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제엔베코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 측과 '협치'로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4년뒤에 다시 한번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면, 무려 16개 정당이 난립하는 현 정치판에서 완전한 '정국 주도세력'으로 자리를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키르기스 국기를 들고 나온 시위대/러시아 매체 캡처

안타깝게도 그는 전임 대통령을 구속시키고, 내치면서 '적'을 많이 만들고 말았다. 고만고만한 16개 정당이 지역으로, 민족으로, 이념으로, 친러 친서방으로, 신·구권력으로 나눠 '치고 받고 싸우는' 정치 지형을 바꾸는데 실패했다.

이번 시위 사태로 대통령이 탄핵으로 쫓겨나든, 해외로 도피하든, 정국 혼란은 불가피하고,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이 만든 '평화적 정권교체'는 빛이 바랬다. 키르기스 정치는 다시 10년전으로 되돌아갔다는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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