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깔바사의 왕' 재벌 피살 사건이 더욱 흥미진진해진 까닭은?
러시아 '깔바사의 왕' 재벌 피살 사건이 더욱 흥미진진해진 까닭은?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0.11.04 23: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호한 동거녀에 5년 전 이혼한 전처와 가까운 범행 용의자
용의자 집에 억류된 남성, 그를 감시한 청부살인업자 변호인

러시아의 '깔바사(러시아식 소시지) 왕’으로 유명한 러시아 육류가공 분야의 올리가르히(재벌) 블라디미르 마루고프(54)가 지난 2일 무장 괴한의 석궁에 맞아 숨졌다. 용의자 중 한명은 체포됐으나,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마루고프는 이날 밤 모스크바 외곽의 이스트라 마을에 있는 별장에서 동거녀와 함께 사우나를 즐기던 중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다. 동거녀는 가까스로 별장을 탈출한 뒤 이웃을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

석궁으로 피살된 러시아 '깔바사의 왕' 마루고프/사진출처: 유튜브 트윗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마루고프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괴한들이 그를 쏜 뒤 버리고 간 석궁만 시신 옆에서 발견됐다. 그의 동거녀는 괴한들이 자신들을 결박한 뒤 현금과 귀금속 등을 숨긴 '비밀 금고'를 실토하라고 협박했다고 경찰에 증언했다. 

돈많은 부자를 대상으로 한 단순 강도 사건으로 끝날 뻔한 이 사건은 그러나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더욱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들이 쏟아지고 있다.

먼저 탈출한 재벌 동거녀에 대한 의문. 재벌 당사자는 죽어 나가는 판에 괴한들의 눈을 피해 결박을 풀고 탈출한 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 동거녀가 중간에 범인들과 딜(거래)을 했거나, 미리 짜고 마루고프를 별장 혹은 사우나장으로 유인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다. 이 경우, 금품을 노린 강도가 아니라 청부 살인 가능성이 제기됐다. 

용의자의 집에서 침대에 결박된 중년남성 발견/얀덱스 캡처

이같은 추리는 그러나, 살인 용의자 한명이 체포되면서 급반전됐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용의자 집을 덮친 경찰이 발견한 것은 침대에 묶여 있는 한 60대 남성. 그는 괴한들에게 납치돼 사흘째 침대에 묶인 채 모진 고문을 받았다고 했다. 괴한들의 요구는 모스크바에 있는 집 3채를 자신들에게 넘기라는 것. 이미 2채를 괴한들에게 넘기는데 서명한 계약서도 집안에서 발견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침대에 묶여 있던 이 남성은 문을 따고 들어오는 경찰을 보고, "신은 존재한다"고 소리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게 또 끝이 아니었다. 이 남성을 감시한 것으로 추정된 남자를 검거했더니, 그는 또 1990년대 러시아에서 청부살인자로 악명이 높았던 알렉산드르 솔로닉을 변호한 변호사 알렉세이 자브고로드니로 밝혀졌다. 그가 이제 와서 왜 또 살인범(납치범) 편에 서 있었는지 미스터리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붙잡힌 살인 용의자가 살해된 마루고프와 5년 전에 이혼한 전처와는 '남친'으로 알려질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 전처가 용의자에게 마루고프의 별장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고, 범행을 사주했다는 정황이 제기되면서 그녀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단란했던 시절의 마루고프 가족. 오른쪽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들 알렉산드르/사진출처:인스타그램
마루고프를 '소시지의 왕'으로 만든 '오제르스카야 깔바사'/얀덱스 캡처 

그녀의 사주설은 남편과의 극단적인 다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20여년간 단란한 가정을 꾸려온 마루고프가 어느날 젊은 여자에게 빠지더니, 갑자기 "이혼하자"며 집을 나가버렸다. 같이 살고 있던 저택과 거액을 아내와 아들에게 위자료로 넘겨준 '통 큰' 남자 행세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돌려달라"며 소송을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지난해 여름 아들이 모스크바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고급 스포츠형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택시와 충돌했는데, 전처는 남편이 자신을 압박하기 위해 교통사고를 사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당국은 도망간 또다른 용의자를 체포해야 분명한 범행 동기와 사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여자 2명과 얽히고 설킨 살인 용의자와 피살자, 그 사이에 드러난 청부살인업자의 전 변호인과 억류된 남자 등 복잡한 사건 구도는 시중에 화젯거리를 던지기에 이미 충분한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