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에 의한, 푸틴을 위한 전직 대통령 면책 법안이 러시아 하원을 통과했다고?
푸틴에 의한, 푸틴을 위한 전직 대통령 면책 법안이 러시아 하원을 통과했다고?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0.12.10 0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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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의 '푸틴 법안' 보도는 사실과 거리가 - 7월 발효 개헌안에 따른 법률개정
하원, 전직 대통령의 상원의원 부여 법안 심의중 - 벨라루스 루카셴코 겨냥해?

러시아 국가두마(하원)이 전직 대통령과 그의 가족에 대한 면책 조항을 보장한 법안을 9일 채택했다. 이 법안은 앞으로 상원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서명하면 발효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하원을 통과한 새 법안은 전직 국가원수(대통령)와 그의 가족에게 평생 기소나 행정 소송 등에 대한 면책특권을 부여했다. 구금과 체포, 수색, 취조 등도 금지되고 재산 몰수도 없다. 거주지와 자동차, 각종 물품및 문서, 통신및 서신 등에도 면책이 적용된다.

다만, 국가반역죄와 그에 버금가는 중대범죄를 범할 경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승인을 거쳐 상하원의 3분의 2찬성으로 면책특권을 박탈할 수 있다.

국가두마, 전직 대통령 불가침 보장(면책특권)에 관한 법안 채택/얀덱스 캡처

일부 외신(국내 언론)은 지난 달 건강이상설이 제기된 푸틴 대통령이 퇴임후 '자신과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추진한 법안이라고 비판했지만, 사실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이 법안은 지난 7월 국민투표를 거쳐 발효한 헌법개정안 중 제 4장 '러시아 연방 대통령'에 관한 관련 조항(제91조, 92-1조, 93조 등 3개 조항, 퇴임 대통령과 그 가족의 보장에 관해 규정)이 개정되면서 이뤄진 후속 입법 조치다. 개헌안 속에 이미 입법 취지가 담겨 있었다.  

1999년 12월 31일 옐친 전대통령의 전격 사퇴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푸틴 대통령은 첫번째 법률 조치로 '옐친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에 대한 면책' 관련 법안을 채택했다. 이를 기반으로 2001년 2월 '퇴임한 대통령과 그 가족에 대한 보장' 법안이 만들어졌다. 이 법안에는 대통령 본인에게만 면책특권이 부여됐는데, 이번 법률 개정으로 면책 대상이 가족으로 확대되고, 면책 범위도 넓어졌다.

최근 러시아에서는 전 사위(?) 등 푸틴 대통령 가족들에 대한 탐사보도물이 쏟아지고 있어 이 법안 채택이 '대통령 가족들을 위한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푸틴 대통령의 전직 사위(위)와 둘째 딸/사진출처: 유튜브
둘째딸 부부의 결혼식 장면/사진출처:러시아 탐사보도 매체 istory

사진은 러시아탐사보도 매체 아이스토리

그러나 이 법안이 심의되기 시작한 지난 달, 일부 외신(국내 언론)이 제기한 푸틴 대통령의 퇴임 후 평생 보장을 위한 법안 추진 보도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미 관련 법안이 존재했고, 개헌 취지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의 건강 이상설도 설에 불과하다. 

푸틴 대통령의 애초 임기는 2024년까지다. 하지만 대통령의 기존 임기를 모두 백지화하는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를 거쳐 발효되었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앞으로 2차례 더 연임이 가능하다. 연임에 성공하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푸틴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전대통령(전총리)/사진출처:크렘린.ru

지금으로서는 이 법안의 적용 대상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뿐이다. 옛 소련의 대통령을 지낸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러시아의 대통령이 아닌 탓에 제외된다. 

생각의 범위를 조금 더 넓히면, 퇴진 압력에 시달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떠오른다. 본인도, 푸틴 대통령도, 개헌후 2선 후퇴를 검토중이다. 개헌 과정에서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국가연합' 구상이 현실화한다면, 루카셴코 대통령도 면책 가능성이 높아진다. 양국의 '국가연합' 구상은 당초 지난해 말까지 로드맵을 만들어 추진하기로 했지만, 루카셴코 대통령의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이제는 벨라루스 안팎의 정세가 달라졌다. 루카셴코 대통령이 본인의 신변 안전을 위해서라도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 하원은 또 퇴임한 국가원수에게 평생 상원의원직을 보장하는 법안도 심의 중이다. 이 법안 역시 퇴임한 루카셴코 대통령을 달래는 카드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러시아 야권의 저항이다. 독극물 중독 증세로 쓰려져 독일로 후송된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는 법안 심의 소식을 듣고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왜 면책 특권이 필요한가. 독재자들은 자신의 의지로 물러날 리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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