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앞둔 나발니의 운명 - 중환자에서 '영어의 몸'으로 바뀔 뿐..
귀국 앞둔 나발니의 운명 - 중환자에서 '영어의 몸'으로 바뀔 뿐..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1.16 0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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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저녁 7시20분 모스크바 브누코보 공항에 도착, 현장서 긴급체포될 듯
나발니 측 공항서 반정부 시위 개최 - 당국 "불법집회 참여자 엄중 단속"경고

푸틴 대통령의 정적으로 꼽히는 알렉세이 나발니(44)가 독극물 중독 증세 치료를 끝내고 귀국하는 17일 모스크바 브누코보 공항 주변에는 그의 지지자들과 경찰들간에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반체제 인사의 귀국에서 흔히 보아온 역사적 장면들이 모스크바에서도 재연될 게 분명하다.

나발니는 포베다 항공 여객기를 타고 이날 오후 베를린을 출발해 저녁 7시20분께 브누코보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모스크바 검찰, 브누코보 공항에서 열릴 시위에 대한 책임을 경고/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은 15일 나발니의 귀국에 맞춰 브누코보 공항에서 열리는 (환영) 행사에 시민들의 참여를 촉구한 나발니 측 인사 15명에 대해 엄중 경고하면서, 시민들에게도 "승인받지 않는 행사의 참석에는 책임이 뒤따른다"고 밝혔다. 나발니 측은 그의 공항 도착에 맞춰 '독살 시도 주모자및 배후세력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기로 하고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집회 참여를 촉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러시아 당국은 이 행사가 당국과 사전에 조정되지 않은 불법 집회라는 사실을 분명히한 뒤 "행사 참여를 촉구한 주도 인사 15명에게는 불법 행위에 대한 경고장을 보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나발니가 항공기의 착륙 후 기내에서 교정당국에 의해 긴급 체포될 가능성이 높아 공항 집회는 '주인공이 빠진' 상태에서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러시아 교정당국은 나발니가 집행유예 판결에 따른 의무조치를 어겨 귀국과 함께 체포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혀왔기 때문이다. 

러시아 교정당국, 나발니의 귀국 후 체포 의지 피력/얀덱스 캡처

교정당국의 체포 이유는 간단하다. "나발니가 지난해 9월 24일부터 실제 체류지를 당국에 통보하는 의무를 어겨 지난달 29일부터 수배자 명단에 올라갔다"는 것. 다만, 나발니의 집행유예 의무 위반을 근거로 법원 측에 집행유예 판결의 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에서 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나발니를 긴급체포할 수 있느냐, 체포하더라도 얼마나 구금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구심은 남는다.

교정당국은 "나발니가 지난해 1월부터 8월 중순까지 최소 6차례나 교정 당국에 출두하지 않는 등 집행유예 시 부과된 의무들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지난해 11월 23일에야 독일 베를린의 한 호텔에 체류하며 재활 중이라는 통지문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또 "독일 베를린 샤리테 병원의 임상 자료에 따르면 나발니는 지난해 9월 20일 퇴원했고, 10월 12일에는 건강한 것으로 밝혀져 더이상 불출석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나발니에 대한 형사적 족쇄는 지난 2014년 12월 채워졌다.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이브 로셰'의 러시아법인으로부터 3천100만 루블(약 5억9천만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징역 3년 6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것. 2019년 말로 끝나야 할 집행유예는 그러나 2017년 법원 판결로 2020년 말까지 연장됐다. 

나발니가 병원에서 의식을 찾은 뒤 찍은 가족들 사진/SNS 캡처

체포 위기에 몰려 있는 나발니는 14일 러시아 정보기관(FSB) 요원들을 자신에 대한 독살 시도에 관여한 혐의로 고소했으나, 기각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대 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연방수사위원회의 기각 통지문 사본을 블로그에 올린 뒤 "살인범들을 현장에서 체포하고 그들의 여행 경로와 실제 이름, 가짜 여권 등을 확인하더라도, 그들에겐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며 "누구도 공정한 사법 절차를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발니는 FSB 독극물팀이 자신의 속옷에 신경작용제를 묻혀 암살하려 했다고 털어놓는 한 한 FSB 요원과의 통화 내용을 지난해 12월 21일 SNS를 통해 폭로한 바 있다. 그러나 연방수사위원회는 "FSB 요원들의 범죄 징후를 보여주는 정황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부족하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나발리, 17일 귀국 의사 밝혔다/얀덱스 캡처
귀국 의사를 밝히는 나발니 동영상 캡처

그는 자신의 귀국 의지에 대해서는 "'돌아가느냐 마느냐'라고 스스로에게 물은 적이 없다. 나는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처음 퇴원했을 때만 해도 일어섰다 눕는 것도 하루 세 번이 최대였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팔굽혀펴기와 스쿼트, 버피도 했다"며 "이제는 건강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고 밝혔다.

나발니는 설사 긴급체포 된뒤 바로 풀려난다고 해도 앞날이 순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연방수사위원회가 지난해 12월 29일 그가 운영하는 '반부패펀드' 등에 들어온 기부금 중 3억 5500만 루블(약 52억원)가량을 횡령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연방수사위원회는 "기부금 5억 8800만 루블(약 86억원) 중 3억 5500만 루블을 나발니가 해외 휴가 등에 사적으로 사용했다"며 "시민들로부터 모은 펀드가 도둑맞았다"고 주장했다. 횡령 혐의가 인정되면 나발니는 최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나발니는 트위터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새로운 범죄 수사 거리를 만들어냈다"며 "죽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감옥에 처넣으려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집행 유예를 실형으로 바꾸고, 기부금 유용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고 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지만, 그 올가미에서 벗어나기는 그리 쉬워보이지 않는다.

앞서 러시아 당국은 지난해 9월 말 나발니의 은행 계좌를 동결하는 등 러시아 내 자산을 압류하기도 했다. 

독일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특별기로 옮겨지는 나발니/현지 매체 rbc 동영상 캡처

나발니는 지난해 8월 모스크바 행 여객기 안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베를린의 샤리테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깨어났다. 독일에서 몇달간 재활 치료를 받고 귀국을 앞두고 있지만, 이번에는 중환자가 아닌 영어의 몸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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