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가깝고도 먼 이웃들'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는 지금..
러시아의 '가깝고도 먼 이웃들'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는 지금..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2.2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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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야권 시위에 처한 벨라루스 루카셴코, 러시아와 '국가연합'으로 위기 극복?
화해 손짓 보냈던 우크라 젤렌스키, 신종 코로나 위기에 반러 노선 노골적 드러내

보리스 옐친 전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와 함께 독립국가연합(CIS) 창설을 선언한 것은 지금부터 약 30년 전인 1991년 12월 8일이다. 보름쯤 뒤에 미국과 유럽 등 서방진영이 러시아를 소련의 적통을 이어받은 국가로 인정하면서 소비예트연방(소련)은 공식 해체된 것으로 본다.

소련 해체에 적극 가담했던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는 서로 극과 극이다. 우크라이나는 반러시아, 벨라루스는 친러시아다. 서방과의 관계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와 나토 가입을 추진하는데 반해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국가연합' 결성의 뜻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

서로 다른 길을 택한 원인은 여러가지다. 같은 슬라브족 계통에 뿌리는 두고 있지만, '루스'(러시아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는 민족성이 다르다. 국민 대다수의 종교도 가톨릭(우크라이나)와 러시아정교(벨라루스)로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상징되는 '우크라이나 사태'다. 물론 그 뒤에는 러시아 특유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인들과 '(유로) 마이단 사태'라는 유혈 참변이 자리잡고 있다.

당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야당세력은 대규모 시위로 친러시아계 대통령을 쫓아냈고, 위기를 느낀 러시아계 주민들은 동부 돈바스(도네츠크 자치공화국과 루간스크 자치공화국)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러시아도 전격적으로 주민투표를 통해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동서로 갈라진 우크라이나는 반러시아 정권의 주도 아래 러시아와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구소련(CIS)의 체제에서도 완전 탈퇴를 추진중이다.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크 우크라 대통령이 2019년 12월 9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초대로 이뤄진 정상회담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다/사진출처:크렘린.ru

극단적인 반러 성향을 지닌 포로셴코 전임 대통령의 무능과 부패를 공격하며 권력을 잡은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 푸틴 대통령과 접촉 면을 넓혀가며 포로 교환 등 화해 제스처를 취하는 듯하더니, 어느 새 강경노선으로 돌아선 모양새다.

30년 가까이 장기독재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대선 불복 시위를 계기로 푸틴 대통령과 밀착하며 친러 노선을 더욱 강화하는 중이다. 동시에 국면 전환을 위해 헌법 개정및 퇴진 의사를 자주 입에 올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양국이 택한 서로 상반된 길은 하나같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평가된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신종 코로나(COVID 19) 팬데믹이 몰고온 사회 경제적 불안정을 '정치적'으로 돌파할 수 밖에 없는 권력자들의 '몸부림' 같기도 하다.

◆ 러시아와 '국가연합'을 모색하는 벨라루스, 루카셴코 대통령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 22일 흑해 휴양지인 소치로 푸틴 대통령을 찾아가 6시간 가까이 함께 보냈다.

"양국의 협력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고 잘 작동하고 있다"(푸틴 대통령)는 말을 확인이나 하듯, 두 정상은 회담 후 '2014 소치동계올림픽'으로 잘 가꿔진 스키장으로 이동해 스키와 스노모빌(설상차)을 함께 타며 개인적 친분을 과시했다. 두 사람은 정상회담에서도 정장이 아닌 평상복 차림으로 만났다.

푸틴-루카셴코 대통령의 회담(위)와 함께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사진출처:크렘린.ru

이날 회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연합국가'의 틀내에서의 협력 문제를 논의했다는 발표 대목이다.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지난 1999년 '연합국가' 창설 조약을 체결한 뒤 국가통합을 추진해 오고 있는데, 루카셴코 대통령의 막판 반발 등으로 '로드 맵' 자체가 헝클어진 상태다. 
***2019년 11월 15일자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국가연합' 로드맵, 19일에 결판난다?' 기사 참조

당초 구상대로라면, 양국은 2019년 말까지 국가연합을 위한 '로드 맵'에 합의하고, 지금쯤 '국가연합' 운영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야 한다. 

뒤늦게 '국가연합'과 '국가연합'의 틀내에서의 협력 논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루카셴코 대통령의 정치적 위상과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는 없다. 대선 불복 시위를 계기로 그의 퇴진은 명분과 방법, 시기만 남았을 뿐, 기정사실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 11일 열린 벨라루스 인민대표 회의에서도 헌법개정과 자신의 퇴진 문제를 공식화했다.

러시아 크렘린은 정상회담 다음날인 23일 두 정상이 전화통화를 갖고 '연합국가' 틀 내에서의 양국 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를 계속했다고 공개했다. '연합국가'를 주제로 한 논의 자체를 계속 외부로 전한다는 건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분위기속에서 뭔가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2019년 말 국가연합의 '로드 맵' 협상에서 에너지 가격과 함께 가장 큰 걸림돌의 하나였던 단일 세금제도를 비롯해 국가안보체제와 군산복합체 협력 문제 등이 이날 전화통화의 주요 의제였다고 했다. 세금의 단일화 등 제도적인 측면에서 통합의 장애물을 제거한다면,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가격의 양국 일원화는 푸틴 대통령의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합의가 가능한 분야다.
** 2019년 12월 9일자 '러-벨라루스 국가 통합을 위한 정상간 '담판'도 다음으로 미뤄졌다' 기사 참고

루카셴코 대통령은 일단 푸틴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지난해 대선불복 시위를 진압한 뒤, 자신의 스케줄대로 정국 운영을 해가는 것으로 관측된다.

루카셴코 대통령, 지지세력의 안전을 권력 이양의 조건으로 제시/얀덱스 캡처
루카셴코 대통령, 새 헌법개정안을 1년 뒤 국민투표에 회부할 것이라고 약속/얀덱스 캡처

그의 국정 운영 구상이 가장 최근에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11일 열린 제 6차 벨라루스 인민대표 회의에서다, 그는 연설을 통해 "국가의 평화와 질서가 유지되고 시위가 없다면 권력에서 물러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조건도 제시했다. "국가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고 국가들 뒤집겠다는 불법적인 시위없이 합법적인 틀내에서 의사를 표시할 때, 또 권력교체가 이뤄지더라도 그의 지지자들 머리에서 머리카락 한올도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올해 중으로 새로운 헌법 초안이 마련돼 내년 초에 국민투표에 부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의 구상대로라면 '새 헌법이 국민투표에 부쳐질 때까지 시위는 없어야 하고,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정치보복은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가능할까? 러시아와 '국가연합'을 통해 그 길을 모색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양국이 1999년 체결한 '국가연합' 조약은 러-벨라루스가 장기적으로 독립적 주권과 국제적 지위를 보유하되 통합정책 집행 기구(정부)·의회·사법기관 등을 설치, 운영하고 단일 통화 사용 등 경제 전반을 통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구조하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의 자신의 자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벨라루시는 현재 야권의 저항시위는 상당히 수그러들었으나, 완전히 멈췄다고 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야권 대선후보였던 스베틀라나 티호노프스카야는 여전히 해외에 머물고 있지만, 국내 지지세력과 연계해 국제사회를 향해 루카셴코 정권에 대한 정치 경제적 압박을 호소하고 있다. 

◆ 다시 러시아에 등을 돌리는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

우크라이나의 최대 현안은 '신종 코로나' 방역이다. 젤렌스키 정권은 일부 친러세력의 '스푸트니크V' 백신 도입 압력을 거부하고, EU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 서방측 백신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동시에 EU 자금 지원에 감사 표시라도 하듯, 러시아에 대한 EU의 강경 자세에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50만 도스(1회 접종분)가 23일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주도의 백신 공동구매 국제프로젝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공급받은 첫번째 물량으로 알려졌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사진출처:AZ홈페이지

막심 스테파노프 우크라이나 보건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첫 번째 물량이 수도 키예프 인근 보리스필 공항에 도착했다"며 "가능한 한 빨리 주민 접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신의 키예프 도착에 맞춰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독립국가연합(CIS)의 민간 항공및 영공 사용에 관한 협정과 군사적 활동을 위한 영공 활용에 관한 협정 등 2건의 CIS 공조체제에서 탈퇴하는 문건에 서명했다.

우크라이나, 민간항공및 영공에 관한 CIS협정에서 탈퇴/얀덱스 캡처

민간 항공및 영공 사용에 관한 CIS 협정은 지난 1991년 12월 25일 민스크에서 서명된 것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12개국이 회원국 영공을 단일 영공으로 간주하고, 운영하기로 한 약속이다. 이를 위해 세부 실행조직도 운영해왔다. 

또 다른 협정은 지난 1992년 5월 15일 타슈켄트에서 서명된 것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11개국이 군사 활동을 위해서도 서로 영공을 제공하고, CIS 기능과 역할을 방해하는 무장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CIS 협정 탈퇴 소식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러시아 언론은 우크라이나가 지난 1993년 제정된 CIS 헌장도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킬 정도다.

특히 '마이단 유혈 사태' 이후 들어선 포로셴코 대통령 정권은 CIS의 주요 협정을 파기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2014년 3월 'CIS 국가안보위 의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CIS 체제의 탈퇴를 구체화해왔다.

2018년 5월에는 아예 CIS 조약체제(연방)에서 완전 탈퇴하겠다며 민스크에 본부를 둔 CIS 각 부문 운영위에서 철수한 바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이번 CIS 항공 협정의 탈퇴 결정이 주목을 끄는 것은 푸틴 대통령과 한때 화해 제스처를 취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확연히 달라진 자세 때문이다. 돈바스 전쟁 당시 포로로 잡힌 양측 군인들을 서로 맞교환에 합의하는 등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정을 누그러뜨리는데 앞장섰던 젤렌스키 대통령이었다.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도 '민족주의 감정'에 매몰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급기야 신종 코로나 사태로 위기에 처하자, 반러 성향의 민족주의 세력에 의지하는 노선으로 완전히 돌아선 것으로 관측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월 들어 러시아에 대한 적대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지난 2일 친러 야당인 '야권 플랫폼-삶을 위하여'의 지도자인 빅토르 메드베드축 의원이 정권 공격에 이용하는 친러 방송사 '112'와 '뉴스원'(Newsone), '지크'(ZIK)을 폐쇄했다. 이어 19일에는 메드베드축 의원과 그의 동료들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급격한 노선 변경의 이유에 대해/얀덱스 캡처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같은 노선 전환에 대해 현지 정치평론가인 안드레이 졸로타레프는 크게 2가지 이유를 들었다. 다가오는 봄에 '제 2의 마이단 시위'가 일어나 권좌에서 쫓겨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서방측의 대러 압박노선에 대한 확고한 지지 표명 의지다.

대통령을 실각시킨 2014년 '마이단 사태'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서는 노선 변화의 압박을 심하게 받았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맞춰 우크라이나의 대러 노선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줄 필요도 있어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임 트럼프 시절과 달리, 유럽 국가들과 힘을 합쳐 러시아에 압박을 가하려는 시점에, 젤렌스키 정권이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의미다.

또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신병 처리를 놓고 추가 제재를 가하는 EU 노선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기도 하다. 유럽투자은행(EIB)이 백신 구매 자금으로 우크라이나에 5천만 유로(약 670억원)를 지원하는데 대한 보답 차원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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