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가짜 뉴스' 충돌 미-러시아, 이젠 공격과 수비가 뒤바꿨다?
코로나 백신 '가짜 뉴스' 충돌 미-러시아, 이젠 공격과 수비가 뒤바꿨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3.09 0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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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백신' 비야냥의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 40여개국서 사용 승인 획득에
미 정부, 언론 "스푸트니크V 홍보위해 화이자 모더나 가짜뉴스 퍼뜨린다"고

미국과 러시아가 벌이는 '백신 전쟁'의 판이 바뀌는 듯하다. 신종 코로나(COVID 19) 팬데믹(대유행)의 종식을 위해 서로 협력해도 모자랄 판에, 양국은 상대 백신을 헐뜯고 비난하는 '정보 심리전' 을 펼치고 있는데, 최근 들어 공수가 뒤바뀐 모양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러시아측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 미국 등 서방측의 '여론 몰이'에 발끈하더니 이제는 느긋해졌다.

상대 진영의 심리를 흐트러뜨리는 '선전전'은 오랜 전쟁의 역사에서 '승리'의 주요 수단으로 인정돼 왔다. 신종 코로나 백신에 대한 양국의 충돌은 주요 전쟁의 '선전전' 못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위)와 모더나 백신/캡처

러시아는 지난해 8월 첫 코로나 백신의 등록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백신을 '스푸트니크V'라고 소개했다. 위성이라는 뜻의 '스푸트니크'는 미소 우주개발 전쟁에서 '소련의 승리'를 알린 인공위성의 이름이다. '스푸트니크V'는 동서 백신 전쟁에서 러시아의 승리를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그 다음. 스푸트니크V 백신이 임상 3상을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러시아는 급격히 수세로 몰렸다. '맹물 백신', '원숭이도 안맞을 백신' 등등의 모욕적인 표현이 서방측으로부터 쏟아졌다. 

러시아측은 이같은 서방측의 공격을 '서방의 메이저 제약회사들이 '스푸트니크V'에 겁먹고 선제적으로 차단에 나선 것"이라는 맞받았다. 

"세계는 신종 코로나 백신전쟁 중"이라며 서방측의 스푸트니크V 비판에 날을 세운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발언에 관한 지난해 12월 24일자 러시아 언론 보도/얀덱스 캡처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언론 회견에서 "백신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러시아의 힘은 진실 그 자체"라며 '백신 정보 전쟁'의 실체를 알렸다. 이때만 해도 러시아 측은 일방적으로 당했다. 자하로바 대변인이 '가시적인 성과를 통해 백신 (효능의) 진실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이유다.

비슷한 시기에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도 현지 TV채널이 마련한 백신 특집 프로그램에 나와 "백신 개발은 경쟁"이라고 전제, "러시아 '가말레아 센터'가 (예상보다) 빠르게 백신을 개발했고, 그 효능 역시 뛰어나 세계적인 제약업체들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방 측이 제기한) 스푸트니크V 백신의 안전성 위험 주장을 반박한 러시아 보건부의 지난 1월 5일자 러시아 언론 보도/얀덱스 캡처

스푸트니크V 백신의 해외 유통을 맡고 있는 러시아 직접투자기금(RDIF)의 키릴 드미트리 에프 대표는 지난 2월 "경쟁자들(제약업체)과 다양한 정치 세력(미국 등 서방측)이 많은 나라에서 스푸트니크 V의 사용 승인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심지어 도발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푸트니크V 백신의 호능이 권위있는 의학학술지 '랜싯'에 의해 입증되자,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러시아측은 공격적으로 중동과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자국 백신 홍보에 나서 40여개국에서 사용 승인을 받아냈다. 사용 승인국가 수로는 어느듯 '톱-3' 지위를 차지했다(러시아측 주장).

미국은 러시아가 스푸트니크V 백신 홍보를 위해 화이자와 모더나 등에 대한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짜뉴스' 대상이 스푸트니크V에서 화이자와 모더나로, 행동 주체가 서방 메이저제약사 혹은 정치세력에서 러시아 정보기관으로 바뀐 것이다.

미 백악관, 미국 백신에 대한 가짜뉴스의 러시아발 가능성 지적/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8일 "'러시아측이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 백신에 대해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며 "워싱턴은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녀의 발언은 전날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보도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WSJ은 미 국무부 산하 해외 여론공작 대응 부서인 글로벌인게이지먼트센터(GEC) 관계자를 인용, "러시아 정보기관들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온라인 매체에서 화이자 백신에 대한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며 러시아 4개 매체를 지목했다. '뉴 이스턴 아웃룩', '오리엔탈 리뷰', '뉴스 프런트', '레벨 인사이드'로, 별로 들어보지 못한 매체다.

보도에 따르면 4개 매체는 러시아 정보기관과 직접 연계돼 있으며 러시아의 대외선전과 허위 정보 생태계의 일부라고 한다. 러시아의 대외 선전은 주로 TV채널 '러시아 투데이'와 라디오및 온라인 매체 '스푸트니크'다.

포탈 사이트 얀덱스에 검색된 '뉴스 프런트' 홈피/캡처 

GEC 관계자는 '뉴스 프런트'가 지난달에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접종한 사람의 얼굴 근육이 마비될 수 있다고 위험을, '뉴 이스턴 아웃룩'은 화이자 백신의 개발 기술인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방식이 '급진적인 실험 기술이어서 백신 접종은 실험대상자가 되는 것' 등으로 전하는 등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고 주장했다.

또 '뉴 이스턴 아웃룩'과 '오리엔탈 리뷰'는 러시아 대외정보국(SVR)과, '뉴스 프런트'는 연방보안국(FSB), '레벨 인사이드'는 러시아군 정찰총국(GRU)과 연관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들 매체가 러시아 정보기관들과 연계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초창기 러시아측이 '가짜뉴스'운운하며 분노하고 반박할 때와 비교하면 아주 구체적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증거는 아직 없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정도다. 솔직히 자유경쟁체제하에서도 같은 제품을 내놓은 경쟁사들끼리도 이 정도 충돌은 비일비재한 것 아닌가? 100년 이상 체제경쟁을 해온 동서 진영이 서로 상대 진영의 백신을 칭찬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러시아 측은 이제 좀 더 느긋해진 것 같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WSJ과의 통화에서 "러시아 정보기관은 (서방) 백신에 대한 비판과 전혀 관계가 없다"며 "만약 스푸트니크V 백신에 대한 모든 부정적인 글을 미국 정보기관의 공작으로 돌린다면 어떻겠는가"라고 되물었다. 또 "매일, 매시간 그리고 모든 영미권 매체에서 '스푸트니크V'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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