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다가오는 '선택의 시간'? 5시간 회동의 의미는..
푸틴,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다가오는 '선택의 시간'? 5시간 회동의 의미는..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5.29 1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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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항기 강제착륙사건으로 촉발된 서방의 대벨라루스 제재압력은 높아지고
푸틴, 루카셴코의 결속은 더욱 강화되는데, 그 방향은 결국 어디로 향할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라이언에어 여객기의 강제착륙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을 28일 흑해 휴양지인 소치에서 만났다.

두 정상의 회동을 앞두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26일 “푸틴 대통령은 (내달 16일로 예정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이 다가오면서 루카셴코 대통령을 지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치적 비용을 지출할 것인지 선택에 직면했다”며 “이번 사건(민항기 강제착륙)은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는 크렘린의 노력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반면, 푸틴 대통령의 처지에 대한 유럽쪽 시각은 조금 달라 보인다. 리투아니아의 기타나스 나우세다 대통령은 27일 미 블룸버그 통신과의 회견에서 "러시아는 벨로루시를 통합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러시아가 이를 위해 현재의 벨라루스 (위기)상황을 이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벨라루스에 대한 추가 제재조치의 합의를 위해 유럽연합(EU)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한 알렉산더 샬렌베르그 오스트리아 외교부 장관은 "(이번 제재로) 우리가 원치 않는 것은 벨라루스가 러시아 품에 안기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은 벨라루스의 민항기 강제착륙사건으로 푸틴 대통령이 선택의 고민에 빠진 것으로, 유럽은 오히려 그가 기회를 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어느 편이 더 현실적인 분석일까? 

푸틴 대통령과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정상회담/사진출처:크렘린.ru

루카셴코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푸틴 대통령을 만나 도움을 청했다. 올 들어 벌써 세 번째 만남이다. 

그러나 이번 회동은 라이언에어 사건으로 급히 만들어진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양측은 강조했다. 이미 지난 9일 전화 통화를 통해 합의된 회담이라고 했다. 예상했던 대로 두 정상의 만남은 여객기 강제착륙 사건에 대한 대화로 시작됐다.

푸틴 대통령, 라이언 에어 여객기의 민스크 공항 착륙후 상황을 감정의 분출이라고 지칭/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루카셴코 대통령의 방문에 감사를 표하면서 "여객기 강제착륙 사건의 '논란' 이전에 만나기로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논란'이라는 말을 받아 "(서방의) 감정 분출"이라고 감정을 드러냈고, 푸틴 대통령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3년 미국의 요청으로 오스트리아가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전용기를 강제 착륙시킨 사건을 상기시켰다. "그때는 대통령을 비행기에서 내리게까지 했지만 (서방은) 조용했다"고 꼬집었다. 

러시아로 망명한 미 정보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을 모스크바에서 볼리비아 대통령의 전용기에 몰래 태운 것으로 판단한 서방 측이 대통령 전용기를 오스트리아 빈 국제공항에 비상착륙시킨 뒤 14시간 동안 기내 수색을 한 사건이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금 우리(벨라루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가 관여하고 있는지 알려줄 몇 가지 문서를 가지고 왔다"며 "(대선 불복 시위가 벌어진) 지난해 8월과 같은 흔들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 루카셴코 대통령의 소치 만남, (5시간을 넘겨) 끝났다/얀덱스 캡처

두 정상의 만남은 5시간을 넘겨 끝났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나 언론 발표는 없었다. 추측은 가능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회담 전 "양국 대통령이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현안과 경제통상·에너지·문화인적교류 분야 등의 합작 프로젝트, 연합국가(Union State) 창설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심은 역시 '연합국가' 창설 문제다. 지난해 대선 불복 시위 당시, 두 사람의 만남에는 이 주제가 반드시 들어갔고, 진전이 있었다는 크렘린 대변인의 언급도 나왔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이 우려한, 푸틴 대통령이 벨라루스의 (위기)상황을 이용해 통합을 추진할 수 있다는 현실적 필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서방측의 압력이 거세질 수록 벨라루스는 러시아 지원에 기댈 수 밖에 없고, '연합국가' 창설은 더욱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루카셴코 대통령 개인에게는 '연합국가'가 마지막 선택지일 수도 있다. 그는 지난 3월 유리 카라예프(54) 전 내무장관과 그로드노 주지사를 맡고 있는 블라디미르 카라니크(48) 전 보건장관을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설 수 있는 '가치있는 후보자'라고 선언했다.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게 당시 러시아 언론의 해석이었다. 

그 이유는 야권의 대규모 시위에도 불구하고 집권 6기를 연 루카센코 대통령이 난국 타개를 위해 헌법 개정과 자진 사퇴를 연계하는 정국 운영 구상을 여러차례 피력했기 때문이다.

루카셴코 대통령이 새 헌법개정안을 1년 뒤 국민투표에 회부할 것이라고 약속한 지난 2월의 인민대표회의 기사 묶음/얀덱스 캡처
차기 대선에 나설 가능 후보자 2명 지목한 루카셴코 대통령 발언에 관한 지난 3월 19일자 기사 묶음/얀덱스 캡처 

그는 지난 2월 열린 제 6차 벨라루스 인민대표 회의에서 "국가의 평화와 질서가 유지되고 시위가 없다면 권력에서 물러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또 "올해 중으로 새로운 헌법 초안을 마련해 내년 초에 국민투표에 부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열흘 후 소치로 푸틴 대통령을 찾아가 6시간 가까이 함께 보냈다.

유럽에 남은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그의 퇴진이 아무런 사전 준비없이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준비 작업이 푸틴 대통령의 '연합 국가' 혹은 '통합' 구상과 맞아떨어질 경우,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라이언 에어의 강제착륙 사건으로 촉발된 서방의 대 벨라루스 추가 제재 움직임이 '연합 국가' 구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런지는 예단할 수 없다. 다만, 루카셴코 대통령이  '통합을 위한 푸틴 대통령의 카드'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EU, 벨라루스의 정권 교체시 30억 유로 경제지원 약속/얀덱스 캡처 

문제는 새로운 '연합 국가' 체제에 반대하는 벨라루스 국민의 불만을 달래는 카드다. EU는 이미 벨라루스의 정권 교체시, 30억 유로의 경제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카드를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벨라루스 야권 인사들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솔깃한 제안이다. 

그렇다면 루카센코 대통령의 선택은? 구소련으로부터 얻어낸 ‘독립’을 잃는 것에 반대하는 일부 국민을 설득하거나 협박하고, 자신의 향후 신변 안전을 보장받는 방안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여전히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벨라루스의 대다수 국민들로서는 혈통이 크게 다르지 않은 루스(러시아)와 통합이 나쁜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NYT는 '푸틴 대통령에게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분석했지만, 그 시간은 오히려 루카센코 대통령에게 눈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는 지도 모른다. 두 정상이 이날 소치에서 5시간 이상 길게 나눈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크렘린 대변인이 머지않아 조금 귀띔해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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