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집권 연장 시나리오는 9월 총선에서 시작된다
푸틴의 집권 연장 시나리오는 9월 총선에서 시작된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8.0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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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대항마 나발니 조직 완전 분쇄 - 공산당 대선후보도 총선 출마 금지
푸틴의 숨겨진 딸 보도 '프로엑트' 겨냥, 반정부 성향의 언론매체 활동 봉쇄

러시아 총선(9월 19일)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현지 언론에는 모스크바의 첫 신종 코로나(COVID 19) 전문병원 '카무나르카' 원장이 푸틴 대통령의 권고를 받아들여 총선에 나가기로 했다는 등 출마 후보들에 대한 이야기가 속속 나오고 있지만, 과거와 같은 총선 분위기를 직접 느끼기는 힘들다고 한다. 모스크바시와 선관위가 최근 온라인 투표 신청을 받기 시작했지만, 반응은 아직 미지근하다. 

러시아 여론조사 전문기관 '전러시아여론연구센터'(브치옴)이 지난 4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투표 의사를 밝힌 응답자는 전체의 22%에 그쳐 지난 2004년 이후 17년 만에 최소로 떨어졌다. 러시아의 총선 투표 의향자는 브치옴의 조사 결과, 2004년 55%로 최대치를 기록한 뒤 2006년 32%, 2011년 27%으로 줄곧 내리막이었다.  

러시아의 9월 19일 총선 홍보 자료/캡처

이번 총선에 대한 러시아의 무관심은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러시아 총선은 그동안 '푸틴의 정적'으로 알려진 반체제 인사들의 활발한 움직임이나 그들이 주도하는 집회(반정부 시위)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아예 원천차단된 상태다. 반정부 단체 또는 인사들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압박이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탓이다.

'반푸틴' 전선의 대명사격인 유명 야권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는 이미 다른 혐의(횡령)로 수감중이고, 그외 인사들이 야외집회로 정부 당국에 맞서기에는 신종 코로나(COVID 19) 감염 위험과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등을 감안할 때 역부족이다. 

나발니의 모스크바 지방법원 출두 모습/사진출처:모스크바 지방법원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항소법원은 지난 4일 나발니가 만든 반부패재단과 시민권리보호재단, 나발니 본부 등 3개 핵심 단체를 '극단주의 조직'으로 인정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나발니 측 변호인들이 지난 6월 모스크바 시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기각된 것이다. 이에 따라 반부패재단 등 나발니 주도 조직들은 조만간 법무부 사이트에 게시된 '극단주의 단체' 목록 Список экстремистских организаций 에 오를 전망이다.

'극단주의 활동 방지에 관한' 연방법에 따라 '극단주의 조직'으로 등재되면, 러시아에서 나발니 단체들은 거의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 조직 취급을 받게 된다. '극단주의 조직' 명단에는 지난 2004년 사이비 불법종교단체를 시작으로 2007년 국가볼셰비키 당이 이름을 올렸고, 이후 네오나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이슬람근본주의 단체, 축구 울트라 협회, 크림 타타르 조직, 여호와의 증인 등 모두 85개 조직이  사실상 준테러(극단주의) 단체로 지정됐다. 

법원, 나발니 (반부패재단의) 극단주의 (조직) 인정, 산하 펀드 청산/얀덱스 캡처

'극단주의 조직' 등재와 함께 나발니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거나 자금을 지원하는 사람들은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최대 징역 10년. SNS에 게시글을 공유하거나, ‘좋아요’ 만 눌러도 처벌받을 판이다. 

극단주의 성향의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공직 선거 참여가 제한된다. “나발니가 푸틴 체제에 맞서 지난 수년간 쌓아온 정치적 네트워크에 러시아 당국이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것”이라는 분석이 서방에서 나오는 이유다.

나발니 측근들에 대한 체포 위협도 잇따랐다. 러시아 나가틴스키 지방법원은 지난 6월 29일 나발니 반부패재단의 이반 즈다노프 소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과거 법원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러나 그는 해외에 머물고 있어 구인 자체는 면했다.

나발니 유튜브 계정 'Navalny Live'의 전 책임자 알렉세이 야코블레프는 이튿날 모스크바 셰례메티예보 공항에서 체포됐다. 사기 사건에 연류된 혐의다. 

급기야 법정에서 나발니와 그의 단체들을 변호해온 법률 조직 '팀 29' (Команды 29)도 지난달 활동 중단을 전격 선언했다. 러시아 통신·정보기술·매스컴감독청(로스콤나드조르)에 의해 '팀 29' 사이트 접속이 차단된 뒤, 조직 구성 변호사들과 지지자들에 대한 형사 고발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댔다. 로스콤나드조르은 지난달 26일 검찰의 요청에 따라 반부패재단 등 '나발니와 그 동료들과 관련된 사이트(SNS 계정 등) 49개의 접근을 모두 차단한 바 있다. 

로스콤나드조르, 나발니와 그의 지지 세력 사이트 49개 차단/얀덱스 캡처

러시아 당국의 나발니 견제가 겉보기엔 합법적이다. 이미 2015년 발효된 관련 법규에 따른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방에서는 이를 반체제 단체들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악법'이라고 비판한다. 반체제 단체를 '바람직하지 않는 조직' Нежелательная организация으로, 비정부기구(NGO)를 '외국 대리인' Иностранный агент'으로 지정해 제한및 감독을 강화하는 게 목적이라는 주장이다.

'외국 대리인'은 한마디로 외국으로부터 로비 자금을 받고 활동하는 '브로커'라는 뜻이다. 또 '바람직하지 않은 단체'로 지정된 곳은 지금까지 40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위협적인 조치는 '극단주의 조직'으로 지정되는 것이다. 아예 활동 자체가 원천 봉쇄된다. 반부패재단 등 나발니의 핵심 3개 단체는 지난 2019년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됐다가 이번에 '극단주의 조직'으로 확정됐다. 1단계 외국대리인, 2단계 극단주의 조직으로 통제가 강화됐다고 보면 정확하다. 

출범 10년이 된 '반부패재단'은 그동안 푸틴 대통령 중심의 권력층에 대한 부정부패및 비리 의혹을 폭로해 왔다. 특히 지난 1월에는 흑해 연안의 호화판 휴양 시설이 사실상 푸틴 대통령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영상 '푸틴 궁전'을 유튜브에 올려 조회수 1억 뷰를 간단히 넘어섰다. 

나발니가 폭로한 '푸틴 궁전' 유튜브 영상의 일부. 위는 전체 모습, 아래는 스트립쇼 기둥이 있는 물담배 바/캡처 

'시민권리보호재단'은 반부패재단이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된 후 만들어진, 반부패재단의 승계 단체다. '나발니 본부'는 나발니가 지난 2018년 대선 출마를 준비하며 지역 선거운동본부로 만든 조직이다. 대선이 끝난 뒤에는 각 지역내 부정부패및 비리 추적과 유력 야권 후보에 대한 선거 지원 활동 등을 주로 하는 전국 네트워크로 자리를 잡았다. 나발니가 약 1년전 독극물 중독으로 쓰러진 곳도, 톰스크 지역 '나발니 본부'를 방문한 뒤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여객기 기내였다.

러시아 당국이 너무 심하다고 할 정도로 나발니 세력을 탄압하는 것은, 역시 푸틴 대통령의 정권 재창출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이웃 벨라루스에서 지난해 8월 불어닥친 '대선불복 시위'와 같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러시아의 차기 대선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푸틴 대통령은 이미 2011년 말 총선을 계기로 비슷한 총선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그가 대통령 연임을 제한한 헌법 조항에 걸려 4년간 총리직을 맡았다가 다시 크렘린으로 복귀하려던 시점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헌법 개정으로 오는 2024년 차기 대선 출마가 가능한데, 9월 총선에서 '개헌 무효'나 '푸틴 퇴진' 같은 구호가 대규모로 등장하고, 반대세력이 하원(국가두마)의 일정 의석을 차지하면, 차기 대선 준비를 낭패를 볼 가능성이 있다. 오는 2036년까지 장기집권을 꿈꾸는 푸틴 대통령에게는 생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다.

그래서 집권여당이 부랴부랴 만든 법안이 '극단주의 조직 구성원의 공직 선거 참여 제한에 관한 법'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 이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에 따라 극단주의 조직 구성원은 5년 동안 공직선거에 나서지 못한다. 푸틴에게 강력한 대항마라고 할 수 있는 나발니는 물론, 그의 측근 세력이 이번 총선과 차기 대선에 나서지 못하도록 쇄기를 박은 셈이다. 

푸틴 정권이 껄끄러워하는 인사는 나발니외에 또 있다. 푸틴 체제에 맞서다 옥고를 치른 뒤 해외로 망명한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전 유코스 회장이다. 2000년대 러시아 최고의 재벌이자 석유회사 유코스 소유자였다. 그러나 탈세혐의로 전격 체포돼 10년 수감생활 후에 해외로 도피, 러시아내 반푸틴 조직을 원격 지원하고 반정부 언론을 내세워 푸틴 체제를 흔들고 있다.

그는 해외 중재법원을 통해 유코스를 압류한 러시아 당국에 수십억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아내는 등 국제사회의 지지도 엮어내고 있다.  

법무부, 호도르코프스키 재단 등 5개 유럽 NGO를 '바람직하지 않는 단체'로 지정/얀덱스 캡처

그의 이름을 딴 호도르코프스키 재단은 지난 2004년 부터 러시아 안팎에서 교육 프로젝트를 지원해 왔다. 이 재단 산하 옥스포드 러시아재단(Oxford Russian Foundation)은 러시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이들 재단의 다양한 지원 활동이 순수하지 못하다고 보는 게 러시아 당국이다. 급기야 러시아 검찰은 지난달 9일 호도로프스키의 2개 재단과 러시아 미래재단(Future of Russia Foundation)와 프랑스 조직인 유럽의 선택(European Choice)등 5개 NGO를 '바람직 하지 않는 단체'로 지정했다. '바람직하지 않는 단체'로 분류되면 많은 활동이 당국의 감시하로 들어가 활동 자체가 자유롭지 못하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오픈 러시아'는 아예 지난 5월 러시아내 활동가들이 기소될 것을 우려, 활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픈 러시아'의 지도부 중 일원인 안드레이 피보바로프는 6월 말 폴란드 바르샤바행 비행기 탑승 중 체포됐다. 경찰은 '바람직하지 않은 단체'에 협조한 혐의로 그를 체포,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유죄 판결 시 최대 징역 6년 형에 처할 수 있다고 한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오픈 러시아'를 겨냥한 당국의 마녀사냥이 계속되고 있다"며 "피보바로프를 즉시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러시아내에서는 공허하기만 하다.

법무부, 러시아 언론인 8명을 '외국인 대리인'에 등록/얀덱스 캡처

반체제 성향의 언론에도 러시아 권력은 재갈을 물리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지난 석 달 간 최소 17개 언론(단체) 또는 기자를 외국의 앞잡이라거나 위험 인물로 규정해 활동을 중단시키거나 제재를 가했다고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지난달 28일 보도했다. 외국의 앞잡이는 '외국 대리인' Иностранный агент'이라는 뜻이고, 위험 인물은 '극단주의 조직' 구성원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가장 대표적인 게 푸틴 대통령과 크렘린 '이너서클'(권력 핵심)의 부패및 비리 의혹을 폭로한 인터넷 탐사보도 매체 '프로엑트'다. '프로엑트'는 지난해 11월 푸틴 대통령의 숨겨진 딸이라며 10대 여성 '엘리자베타'의 존재를 공개, 크렘린이 발끈한 바 있다. 

푸틴의 '숨겨진 딸'로 알려진 엘리자베타의 인스타그램 사진/캡처
프로엑트가 지난해 11월 올린 '엘리자베타' 사진. 이 매체는 10대 소녀의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SNS 계정이나 사진을 더 이상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캡처

러시아 법무부는 지난달 15일 '프로엑트'를 '위험한 단체'로 일단 분류한 뒤 편집장과 기자 등을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했다. '프로엑트' 기자들 외에도 반정부 성향이 강한 '오픈 미디어'(Open Media)와 '자유 라디오'(Radio Liberty) 기자 등 모두 8명을 '외국 대리인'으로 묶여 규제에 들어갔다. 

언론 매체가 이렇게(위험 단체 혹은 극단주의 단체) 지정되면 해당 언론사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사직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향후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다른 매체들도 해당 매체의 자료나 기사를 인용해서는 안된다. 특히 과거의 인용 기사도 삭제하지 않으면 불법 행위로 간주한다. 자금을 지원하거나 기부하는 사람도 형사 처벌 대상에 오를 수 있다고 영국의 가디언은 전했다. 러시아가 특정 매체를 '위험한 단체'로 규정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프로엑트 전 편집장 로만 바다닌 러시아 떠나/얀덱스 캡처

'프로엑트' 편집장 로만 바다닌은 아예 러시아 경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경찰 수사관들이 바다닌 편집장과 2명의 기자 아파트에서 컴퓨터 등을 들고 나오는 장면이 지난 달 초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다. 경찰은 가족들의 집까지 뒤진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 수색은 '프로엑트'가 추적중인 블라디미르 콜로콜체프 내무부 장관에 관한 폭로 기사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콜로콜체프 장관의 일가가 그의 장관 임명(2012년)후 엄청난 재산을 모았고, 조직 범죄에도 일부 연루됐다는 폭로 기사가 '프로엑트'에 의해 준비중이었다고 한다. 

율리아 야로쉬 오픈 미디어 편집장/페이스북 캡처

바다닌 편집장과 함께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된 '오픈미디어'의 편집장 율리아 야로시는 현지 언론에 "호도르코프스키 (회장)과 협력을 숨긴 적이 없다"며 "나는 오픈 미디어의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그로부터 보수를 받는다”고 말했다. '오픈 미디어'의 숨은 실세가 사실 호도르코프스키 전 유코스 회장이라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앞서 또다른 반정부 성향의 온라인 매체 '메두자'와 'V타임스'의 기자들도 '외국 대리인' 명단에 올랐다. 지원이 끊긴 'V타임스'는 결국 문을 닫았고, '메두자'는 크라우드펀딩 캠페인을 벌이며 버티고 있다. 올해 초 수감된 나발니 지지 시위를 보도한 온라인 학생 잡지 'DOXA'의 기자 4명는 형사 기소된 바 있다. 

반정부 성향의 인터넷 매체 '메두자'/캡처

러시아 당국은 특정 야당 인사에 대한 총선 출마 금지 조치도 서슴치 않고 있다. 지난 2018년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맞선 공산당 후보 파벨 그루디닌(당시 12% 득표)은 9월 총선 출마가 금지됐다. 외국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올해 초 나발니 지지 시위에 참석한 정의당 소속 드미트리 구드코프 전 의원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출마가 금지됐다. 러시아 검찰이 구드코프의 숙모가 소유한 건물을 담보로 한 6년 전 채무를 아직 변제하지 않았다며 그를 기소했기 때문이다. 구드코프는 지난달 불가리아로 급히 떠났다. 

러시아 당국의 이같은 강압 조치들이 푸틴 대통령의 체제 유지 자신감을 근거로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영리 싱크탱크 탈산업사회연구소의 블라디슬라프 이노젬셰프 소장은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푸틴 대통령은 현재 매우 확신에 차 있으며 (체제 유지를 위해) 강제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다"며 "그는 시민사회와 거래(타협)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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