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백신의 위탁생산 경쟁 (2) - '생산 캐파(능력)'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러시아 백신의 위탁생산 경쟁 (2) - '생산 캐파(능력)'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8.18 05:1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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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표단 방한 - 휴온스컨소시엄에 기술이전, 월 1억 도스 생산 추진
대기업 A사 생산 참여 기회 노려 - 기존 컨소시엄은 생산 규모 확대 불가피

러시아 신종 코로나(COVID 19) 백신 '스푸트니크V'의 국내 위탁생산 경쟁이 한치 양보도 없는 '전쟁'으로 비화할 전망이다. 백신의 생산 부족이 시달리는 러시아측이 국내에서 공격적으로 위탁 생산 가능 업체 공략에 나서면서다.

'스푸트니크V' 위탁생산을 추진 중인 업체는 한국코러스(지엘라파 자회사)를 중심으로 한 컨소시엄과 휴온스글로벌 주도의 컨소시엄 등 2군데다. 컨소시엄에 들어있는 업체만도 10개 가까이 된다. 또 국내 굴지의 백신 전문 대기업 A사도 호시탐탐 '스푸트니크V' 위탁생산에 뛰어들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일 서울에 도착한 러시아 백신 대표단이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위탁생산 경쟁은 더욱 뜨거워진 느낌이다. 방한단은 '스푸트니크V' 백신 개발사인 '가말레야 센터' 기술진과 백신의 해외생산및 유통을 맡고 있는 러시아 직접투자펀드(RDIF) 대표들로 구성됐다.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홈페이지. RDIF는 신종 코로나 감염과 싸우기 위해 러시아와 세계의 우수한 기술을 결합한다고 홍보하고 있다/캡처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사진출처:RDIF

RDIF 측과 일찌감치 위탁생산 계약을 맺고 상업생산에 박차를 가해온 한국코러스 컨소시엄은 대표단과 스푸트니크V 백신의 상업생산을 위한 GMP(의약품품질관리기준, Good Manufacturing Practice) 인증과 뱃지(초도 생산 물량) 검수 결과 등에 대한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발주자인 휴온스컨소시엄은 신속한 기술이전과 시생산을 위한 시설 점검 등에 나섰다. 백신 대기업 A사는 자사의 뛰어난 생산 인프라를 러시아측에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 쪽은 역시 대표단을 초청한 것으로 알려진 휴온스컨소시엄이다. 이 컨소시엄은 휴온스글로벌을 중심으로 프레시티지바이오파마, 휴메딕스, 보란파마 등으로 구성됐다.

러시아 대표단의 2주일 자가격리 면제 등 방한 편의를 제공한 휴온스컨소시엄 측은 당초 러시아 측의 비공개 방문 요청을 받아들여 경향신문과의 회견(8월 2일)에서 "러시아 기술진의 입국및 활동 일정은 007 작전에 버금가는 비공개 대외비"라고 강조하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대부분 공개했다.

경향신문 8월 2일자 웹페이지 캡처

그러나 대표단과 A사와의 미팅을 주선한 러시아 전문 컨설팅 업체는 "러시아 측이 '컨피덴셜'(비밀 협의)을 요청했다"며 상세한 내용 공개를 꺼렸다.

휴온스컨소시엄 측에 따르면 RDIF의 드미트리 쿨리쉬 기술고문(일부에서는 기술담당 이사로 호칭)이 이끄는 대표단은 지난 9일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에서 컨소시엄 업체들과 '킥오프' 회의를 갖고, 13일에는 휴메딕스의 생산 시설을 둘러봤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는 컨소시엄에서 백신 원액 생산(DS)을, 휴메딕스는 완제 생산(DP, 백신의 바이얼 주입, 완제품 포장) 공정을 각각 담당한다. 

뒤이어 RDIF 계약담당 책임자인 블라디미르 스빈초프 이사와 스베틀라나 바에바 수석 전문위원이 14, 16일 충북 오송 백신센터를 찾아 위탁생산 본계약 전 사전점검을 시작했다고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측은 17일 밝혔다. 쿨리쉬 기술고문 등 대표단 일부는 14일 한국을 떠났다.

러시아 백신 대표단과 킥오프 회의를 하는 휴온스컨소시엄/사진출처:휴온스 컨소시엄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의 오송 캠퍼스(백신센터)를 찾아 환영 플래카드 앞에 선 러시아 대표 2명/사진출처: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바이러시아 취재를 종합하면 방한한 러시아 대표단의 공격적 행보는 예상을 벗어날 정도다. 그만큼 해외 위탁생산 시설 확보가 화급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표단은 행적이 공개되지 않는 기간(10~12일)에 A사의 생산 시설을 둘러보는 등 기술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컨설팅 회사 대표는 "공장 방문 등 기술협의를 진행했으나, (위탁 생산 계약을) 최종 결정할 목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며 "앞으로 협의를 계속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백신 기술 이전의 핵심은 역시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를 대상으로 한 원액 생산이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는 올해 초 RDIF측으로부터 백신 위탁생산 여부를 타진받고 휴온스글로벌과 협의해 컨소시엄을 꾸렸다고 한다. 

러시아가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측에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이 업체의 러시아내 비즈니스 성과를 인정한 결과로 추정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싱가포르 법인)는 지난 2018년부터 항암제 바이오시밀러를 러시아에 공급하는 등 러시아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확대해 왔다. 지난 4월에는 러시아 제약업체 '팜파크'(Фармапарк)와 항암제 바이오시밀러 '베바치주맙(бевацизумаб, 오리지널 약은 로슈 Roche의 아바스틴Авастин)의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와 러시아 '팜파크'간의 항암제 바이오시밀러 '베바치주맙' 공급 계약에 관한 현지 매체 4월 29일자 보도/캡처 

주목할 것은 휴온스컨소시엄이 기술이전을 순조롭게 끝내고 오는 9월부터 계획대로 백신 생산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여부다. 방한 대표단 중 기술이전팀은 약 두 달간 국내에 머물며 기술이전은 물론, 시생산과 스케일업(확장) 과정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관계자는 ”지난주 러시아 기술진의 방문을 시작으로 백신의 기술이전및 시험생산 과정 등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백신의 시생산은 지난 7월 초 관계사인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 제1캠퍼스 내에 설치된 200리터 규모의 바이오리액터(세포배양 장치) 2기에서 이뤄질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제2캠퍼스에 구축 중인 백신센터 내 2,000리터 규모의 바이오리액터를 통해 백신의 상업 생산이 시작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 시기는 9~10월 경으로 업체측은 밝혔다. 백신센터가 완공되면, 총 생산 규모가 10만 리터 수준(2,000리터급 바이오리액터 50기)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윤성태 휴온스글로벌 부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백신의 초도 생산량은 이르면 10월 중 월 3,000만 도즈를 예상하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월 1억 도즈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게 된다"고 말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V 생산 모습/현지 두마TV 캡처

그러나 백신의 대량생산 문제는 앞으로도 더 지켜봐야 할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앞으로 준공될 백신센터내 생산시설에 대한 러시아 보건부의 GMP 인증 때문이다. 

GMP 인증은 각국 별로 상당히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푸트니크V' 백신의 등록(긴급 사용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현장 실사에 나선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의약품청(EMA)이 러시아의 백신 생산시설에 대한 GMP 인증을 사실상 보류(보완 지시)함으로써 등록 자체가 지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휴온스컨소시엄 측도 백신 대량생산에 앞서 러시아의 GMP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생산 규모가 클수록 인증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식으로 백신센터를 구축하고 있는 만큼, 상업생산은 예정대로 이뤄질 것이라는 게 기업의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제1 캠퍼스는 이미 국내 식약처의 GMP 인증을 받은 시설"이라며 "(제2 캠퍼스) 백신센터에 대한 한러 양국의 GMP 인증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코러스 춘천공장의 백신 생산 시설/KBS 캡처

휴온스컨소시엄 측의 생산시설 확보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상업 생산을 앞두고 있는 한국코러스 컨소시엄의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RDIF의 방한 의도와 목적 등을 감안하면, 백신 위탁생산 경쟁은 그야말로 '규모의 경제' 원칙에 따라 승패가 판가름날 게 분명하다. 한국코러스 컨소시엄 생산 캐파(능력)는 연 5억~6억 도스 정도이지만 휴온스측은 월 1억 도스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기업 A사가 위탁생산에 본격 뛰어든다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한국코러스가 '선점 프리미엄'을 더이상 누리기 쉽지 않는 상황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때는 '경쟁'이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전쟁'이 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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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 2021-08-19 22:35:33
이진희 기자님 러시아 보건국에 GMP 등록이 지연되는 이유를 직접 취재해주실 순 없나요?

메기 2021-08-19 14:48:50
거침없는 기자님 답지 않게 녹십자를 녹십자라 하시지 못 하고 A사라 보도 하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