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아프간 딜렘마 - '흑역사' 교훈 속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아프간 딜렘마 - '흑역사' 교훈 속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8.26 05: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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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국방부, 군소송기 동원해 아프간 잔류 자국민CIS 국민 긴급 철수에 나서
아프간 접경지역서 군사훈련 실시 - 시진핑 주석과 외교적 대응 공동 모색

아프가니스탄 진주에 관한 '흑역사'를 지닌 러시아도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도 '테러리스트 단체'로 지정된 탈레반 세력의 수도 카불 접수에도, 서방국가들과는 달리 주아프간 대사관의 철수도 고려하지 않는 채 지켜보던 러시아 국방부가 25일 군수송기를 띄웠다. 현지에 머물고 있는 러시아 CIS 국가 국민들을 철수시키기 위해서다.

그동안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중재하고, 탈레반과의 기존 우호 관계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발표한 러시아로서는 의외의 행보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은 탈레반과 구 정부세력간의 분쟁에 '군사 개입'을 일체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왜 러시아도 군수용 항공기 4대를 투입, 자국민과 옛 소련권 국가 국민들을 철수에 나섰을까? 

국방부, 4대의 항공기로 러시아, 우즈벡,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카불공항에서 철수시켜/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25일 일류신(IL)-76 수송기 3대와 IL-62 여객기 1대 등 항공기 4대를 이용해 러시아 국민과 벨라루스,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원국 국민, 우즈베키스탄과 우크라이나 국민 등 500여명을 카불 공항에서 각 지역으로 이송했다고 밝혔다. 

항공기들은 타지키스탄 키스사르 비행장과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 인근 칸트 비행장에 착륙, CIS국민들을 내려줬고, 러시아인들을 태운 수송기는 모스크바로 비행했다. 러시아는 크림사태 등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국민도 이번 철수 작전 대상에 포함했다. 

러시아 CIS 국민들을 태운 러시아 군 항공기가 카불 공항을 이륙하는 모습/현지 매체 동영상 캡처 

러시아도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했지만, 구정부 세력과의 내전 가능성 등 현지 정세가 극도로 악화하면서 자국민과 CIS 국민들의 신변 안전을 위해 일단 현지에서 긴급 대피시킨 것으로 보인다. 특히 탈레반 측이 외국인 등의 출국 시한을 이달 말까지로 확정한 것도 러시아가 급히 움직인 계기가 된 것으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아직 권력을 장악한 탈레반을 합법적 정부로 승인하거나, 테러집단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서두르지 않고 있다. 현지 상황을 지켜보면서 유엔의 탈레반 국가 승인 움직임과 보조를 맞추려는 의도를 내보이고 있다. 탈레반 세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더욱이 탈레반과 연계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주의자들의 중앙아시아, 러시아 이슬람지역 침투를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 탈레반 주도 세력에 '테러 세력과의 단절'을 대놓고 요구하는 이유다. 

카불 공항 외벽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미 해병 대원들/사진출처:미 해병대 페이스북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과 접경한 타지키스탄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군사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러시아 중앙군관구 공보실은 25일 타지키스탄 주둔 제201 군사기지 소속 부대들이 지난 17일부터 한 달 일정으로 훈련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훈련 중에는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 인근의 산악 훈련장에서 T-72 전차들을 동원한 사격 훈련과 공격용 및 수송용 헬기들을 동원한 기동 훈련 등이 포함됐다. 이는 아프간 정세의 악화로 탈레반과 중앙아 인접국 사이에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상황을 대비한 것이다. 

러시아는 유사시 중앙아 국가들을 포함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가동해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CSTO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6개국이 지난 2002년 결성한 군사·안보 협력체다. 

이에 앞서 미군의 아프간 철수 결정이 내려진 뒤 지난 10일까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3국 연합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타지키스탄 남서부 지역에서 실시된 훈련에는 3객국의 2천500여 병력과 500대의 각종 군사 장비들이 동원됐다. 

러시아의 또다른 우려는 탈레반 손에 들어간 다량의 러시아제 무기다. 자칫 극단주의 세력이 이 무기를 테러 활동에 나선다면 난감하기 그지 없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24일 "수백 문의 포와 수백 대의 장갑차, 수백 대의 휴대용 대공미사일, 전투기와 헬기 등 엄청난 양의 무기가 탈레반 수중에 들어갔다"며 "무엇보다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탈레반은 또 다수의 미국 무기들도 손에 넣았다. 

푸틴 대통령, 중국 시진핑 주석과 아프간 사태 논의/얀덱스 캡처
사진출처:크렘린.ru

군사적 대응 조치 준비에 못지 않게 러시아는 발빠르게 외교적 해결 모색에도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25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갖고 아프가니스탄 정세에 대해 논의하는 한편, 향후 대응을 공조하기로 했다. 미국 등 G7국가들의 긴급 정상회담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움직인 느낌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두 정상은 아프간에 대한 내정간섭과 외세 개입을 반대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외세가 아프간에 개입하고 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공동 대응하고, 두 나라가 함께 테러리즘과 마약 밀수 집단에 대응하고 안보 위험을 막자"고 제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정상은 이를 위해 양국이 참여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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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시아 2021-08-27 05:14:57
드미트리 쥐르노프 아프간 주재 러시아 대사는 26일 TV 채널 '러시아-24'와 인터뷰에서 "미군의 자국민 및 아프간인 조력자 대피 작전이 시작된 이후 카불 공항에서 약 50명의 민간인이 숨졌다"며 "미국인들은 공항에서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도 못해 50명가량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날 자국민과 CIS 국민들의 대피작전이 미군에 의존하지 않고 탈레반의 도움을 받아 자체적으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인들을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탈레반과 훌륭한 협력이 이루어졌다"는 것. 그는 대피 작전으로 360명의 러시아인이 아프간을 떠났고 잔류를 희망한 약 100명만이 현지에 남아 있다고 소개했다. 러시아는 군 수송기 4대를 카불로 급파해 자국민과 벨라루스, 키르기스, 타지크 등의 CSTO 회원국 국민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