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판 '청계천 조형물' 논란 - 주무른 찰흙 덩어리 작품도 '관광 명소'될까?
모스크바판 '청계천 조형물' 논란 - 주무른 찰흙 덩어리 작품도 '관광 명소'될까?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8.29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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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LG다리'의 재보수 기념 조형물, 모스크바 강변공원에 세워
알루미늄 덩어리를 쌓아 만든 작품에 '예술품 공방', 시민들 비판 거세

서울 청계천 복원 공사가 끝난 뒤 광화문 입구쪽에 상징 조형물이 세워졌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클레스 올덴버그(Claes Oldenberg)가 만든 거대한 소라 모양의 '스프링'이다. 국내 하천에 서식하는 다슬기 형상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생태하천 복원 사업의 성공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라고 했다. 청계천의 세계적 명소화를 겨냥한 예술 작품이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일반에 공개되자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진출처:네이버 거리 뷰 캡처

청계천과 거의 흡사한 논란이 15년여가 지난 지금 모스크바에서 벌어지고 있다. 크렘린 앞에서 모스크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볼쇼이 카멘느이 다리' (Большой Каменный мост) 밑의 작은 '볼로트나야 광장'(Болотная площадь)에 세워진 거대한 조형물 '빅 클레이 넘버 4'(Big Clay №4, 러시아어로는 Большой глины №4)을 놓고 찬반 논쟁이 치열하다. 스위스 조각가 우르스 피셔의 작품이다. 

현지에서 'LG다리'로 잘 알려진 '볼쇼이 카멘느이 다리'는 모스크바 강위에 세워진 다리 중, 위치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모스크바에서는 명소와 같은 곳. 지난해 대대적인 보수 작업에 들어가 지난 16일 끝났다.  '빅 클레이 넘버 4' 조형물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높이 12m에 이르는 대형 조형물은 손으로 주무른 진흙(찰흙) 덩어리를 크게 확대(50배)한 형상이다. 20여명의 작업자가 알루미늄으로 만든 거대한 조각 덩어리들을 크레인을 이용해 하나씩 쌓아올렸다.

모스크바 도심에 세워진 찰흙 덩어리 조형물/사진출처:현지 매체 동영상 캡처
크레인을 이용해 거대한 조형물을 세우는 모습/TV채널 '모스크바-24' 영상 캡처 

논란의 핵심은 이 조형물이 예술적 가치가 있느냐는 점. 또 모양 자체가 아름다운 다리(볼쇼이 카멘느이 다리)와 크렘린, 구세주대성당 등 주변 건축물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볼로트나야 광장'이 모스크바 강의 하중도(河中島)인 볼로트나야 섬(서울로 치면 여의도)에서 모스크바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강변길에 있다는 점도 논란을 키웠다. 

비판이 거세지자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27일 '빅 클레이 넘버 4'를 '독특한 오브제'라며 옹호에 나섰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소뱌닌 시장은 이날 '러시아 크리에이티브 위크' (Российская креативная неделя)에서 "창조적인 작품이란 무엇이냐"고 되물으며 "이 작품 역시 독특한 형상을 지닌 창조적인 조형물이며, 내년에는 세계의 다른 유명도시에서도 세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뱌닌 시장, 볼로트나야 강변길에 세워진 조각품은 세계적인 수준의 작품/얀덱스 캡처

우르스 피셔의 '찰흙 조형물'은 미국 뉴욕, 이탈리아 피렌체에 이어 세번째로 모스크바에 세워졌다. 지난 2017년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에 이 조형물이 등장하자, 현지 관광객들이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소뱌닌 시장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 한 곳에도 내년 5월 이전에 또 하나가 설치될 것"이라고 강조한 이유로 짐작된다.  

작가인 피셔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판적 여론에 대해 "도시의 거리에는 못생긴 건물과 자동차들이 많이 있다"며 “예술은 추함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뭔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예술이 전달하는) 그 뭔가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은, 결국 보는 사람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빅 클레이 넘버4' 조형물의 작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모스크바의 반응에 놀라/얀덱스 캡처

작가는 또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순간, 뭔가를 붙잡고 싶은 원초적 본능에서 '찰흙 조형물'의 예술적 모티브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갓 태어난 첫 딸을 처음 품에 안았을 때, 그녀는 나의 손가락을 붙잡았다"며 "뭔가를 잡는다는 것은 배고픔과 같은 욕구를 느낄 때 나타나는 인간의 원시적인 본능이며, 나는 이를 작품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것은 못생기거나 아름다운 것과는 관계가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실은 작가의 생각과 많이 다른 듯하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알루미늄 덩어리로 만든 '우스광스러운 조형물'이 무슨 예술품이냐"고 비판한다. 러시아의 전통 건축물을 연구해온 건축학자 안드레이 아니시모프는 "이 조형물에는 분명 도발적인 요소가 있다"며 "아름다운 미적 즐거움을 가져다 줄 예술품마저 부족한 모스크바에서는 아직 이러한 조형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아래 사진은 모스크바 뉴스통신 agn의 동영상 캡처

다양한 각도에서 본 찰흙 조형물/현지 매체 agn 동영상 캡처

청계천의 스프링 조형물처럼, 모스크바의 '찰흙 덩어리'도 시간이 지나면 모스크바의 품속에 넉넉하게 안길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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