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하바로프스크 '2차대전 일본 전범 재판' 학술대회 참관기 - 김원일
(기고) 하바로프스크 '2차대전 일본 전범 재판' 학술대회 참관기 - 김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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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9.12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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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 7일 러시아 극동 하바로프스크에서는 제2차 대전 종전 후 진행된 ‘하바로프스크 전범재판’을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주제는 '하바로프스크 전범재판(Хабаровский процесс):역사적 의미와 현대사의 도전'이다.

김원일 박사(모스크바대 정치학, 전 민주평통 모스크바협의회장)는 한국 측 발표자로 이 학술대회에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김 박사의 학술대회 참관기를 받아 싣는다.

하바로프스크 전범 재판에 관한 학술대회 프로그램

'하바로프스크 국제 학술 포럼'은 당초 예상를 뛰어넘는 규모로 진행됐다. 개막식에 푸틴 대통령이 영상으로 축사를 보냈고, 알렉세이 체쿤코프 극동개발부(정식명칭은 극동·북극 개발부) 장관 등 장관급 인사만 약 10여명이 참석했다. 신종 코로나(COVID 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주변 국가에서 온 학자들도 100여명에 이르렀다.

신종 코로나로 온라인 참여도 이뤄졌는데, 이고리 크라스노프 러시아 검찰총장이 화상으로 자신의 소논문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식 사고로는 현직 검찰총장의 학술대회 참가는 쉬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 이유를 러시아 학자들에게 물어보니, "전쟁 범죄를 다루는데 검찰총장만한 적임자가 어디 있느냐?"는 반론이 질문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장관급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극동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하면서 "이 지역에서 자행된 일본의 전쟁범죄가 제대로 평가되고, 또 기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럼에 참석한 필자(맨 왼쪽)
국제학술대회가 열린 하바로프스크 영빈관

하바로프스크 전범재판은 일본이 항복하고도 한참 뒤인 1949년 12월 25일부터 6일간 소련군에 포로로 잡힌 관동군 지휘부와 731 부대의 생체실험, 세균 무기 개발관여자들을 대상으로 열렸다. 특히 731 부대에서 세균무기 제조와 생체실험을 지휘한 장교들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번 포럼에서도 참가자들의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것은 첫날 저녁 방영된 일본 731부대 다큐멘타리 필름이었다.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731부대를 테마로, 일본의 생물학 무기 실험을 고발한 50분짜리 영화다. 러시아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 타치아나 보르쉬의 작품이다. 

731부대의 만행을 증언하는 일본 할머니 아마베 유키코

다큐멘터리 영상에 나온 93세의 일본 할머니 아마베 유키코는 "731부대의 만행을 직접 목격했다"며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731부대의 만행을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평생을 바쳤다"고 했다. 그녀는 특히 일본 정부가 아직도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도덕적·법적 책임을 회피하는데 대해 분노했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도 731부대의 만행을 알리고 일본 정부의 책임 추궁에 바치겠다고 했다.

731부대에서 사병으로 근무했다는 한 일본인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심한 고통속에 죽어갔다"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자신은 일개 사병에 불과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731부대 전쟁범죄는 일본 정부가 지금이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적인 자료와 증언에 매우 충실한 이 다큐멘터리 필름은 무려 80여년 전의 무서운 전쟁 범죄를 생생하게 재현한 듯한 느낌을 안겨줬고, 러시아 참석자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이어진 영화감독과 참가자들 간의 수준높은 질의 응답도 731부대의 만행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질 높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었다는 게 신선하고 반갑고 고마웠다.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후 질의응답에 나선 타치아나 보르쉬(위)와 필자와 함께 한 모습 

타치아나 보르쉬 감독에게 이같은 감동을 전하며 이 다큐멘터리를 한국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 전세계에 소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또 러시아 외무부와 국방부, 정보기관에서 비밀해제된 자료들이 대거 공개됐다. 제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과의 전쟁 당시를 알려주는 희귀 자료들이다. 731부대 다큐멘터리 필름과 함께 일본의 전쟁 범죄를 연구하는 국내 학자들에게도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포럼장에 전시된 비밀해제 문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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