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 투표가 가능한 러시아 총선, '야당 바람'은 사라지고, 탄압만 남았다
사흘간 투표가 가능한 러시아 총선, '야당 바람'은 사라지고, 탄압만 남았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9.17 20:0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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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반푸틴' 아이콘 나발니 수감, 핵심측근 출국, '스마트 보우팅' 차단..
크렘린: 지지율 비상에 전체 유권자 40%에게 지원금 살포, 총선 참여 호소

러시아 총선이 17일 극동지역에서부터 시작됐다. 9개 지역 단체장과 39개 지역 의회 의원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이번 총선 투표는 이례적으로 이날부터 사흘간(17~19일) 진행된다. 공식 투표일은 19일이지만, 신종 코로나(COVID 19) 감염 우려로 이틀 전부터 투표가 시작된 것이다.

또 모스크바와 세바스토폴, 니즈니노브고로드, 쿠르스크, 야로슬라블, 무르만스크, 로스토프 지역에서는 온라인 투표도 가능하다. 엘라 팜필로바 러시아선거관리위원장은 오는 2024년까지 전국 선거에서 전자투표가 도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온라인 투표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국가두마(하원) 투표는 극동 캄차트카와 추코트카서 시작/얀덱스 캡처 
러시아 총선 투표 모습/SNS 동영상 캡처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은 5년 임기의 의원 450명으로 구성되는데, 절반(225명)은 지역구별 직접 투표로, 나머지 절반(225명)은 정당이 득표한 비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는 비례대표 정당명부제로 뽑힌다. 정당은 득표율 5%를 넘겨야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이번 총선에는 집권여당이 '통합러시아'당과 '공산당' '자유민주당', '러시아정의당' 등 기존 원내 진출 정당을 포함해 모두 14개 정당이 출사표를 던졌다. 

현지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 기반인 '통합러시아'당이 이번에도 과반 안팎의 승리를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통합러시아당'은 지난 2016년 총선에서 54.2%의 지지를 받아 모두 343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제1 야당인 공산당은 13.3%(42석) 득표에 그쳤다. 

러시아의 9월 19일 총선 홍보 자료/캡처

총선 분위기는 이전의 그 어느 선거와 완전히 달라 보인다. 우선 신종 코로나 방역 조치로 야당의 바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바람은 '반푸틴'의 선봉장격인 알렉세이 나발니를 진원지로 불어오기 마련인데, 그는 현재 수감중이다. 비대면을 활용하는 '스마트 보우팅'(smart voting, 러시아어로는 умное голосование) 전략을 대안으로 내놨지만, 당국의 교묘한 탄압조치로 역부족이다.

반면, 크렘린(권력)과 정부 당국의 총선 개입은 아예 눈에 보일 지경이다. 코로나 재난 지원과 민생 등을 이유로 총선 한달 전부터 국민들에게 돈을 풀고, 정적 압박은 계속된다. 

이번 총선의 키워드는 '돈과 권력, 나발니'로 정리할 만하다. 과거 총선에서 현지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공산당'과 '러시아정의당'의 존재는 이미 희미해졌다. 나발니의 존재와 그의 지지세력, 그가 만든 인터넷 사이트와 SNS 계정 등이 계속 주목을 받는다. 정부 당국의 가혹한 탄압(?) 때문이다.

나발니가 이끌던 '반부패재단' 등 핵심 3개 단체들은 이미 '극단주의 불법 조직'으로 지정됐다. 그 여파는 핵심 측근들의 해외 도피와 인터넷 사이트(모바일 앱)의 접근 차단, 야당 바람의 실종 등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나발니 지지세력이 소련의 잔재 세력인 공산당 후보를 찍어달라고 읍소하기에 이르렀다.

타스:나발니 대변인 키라 야르미슈, 러시아 떠나/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나발니 핵심 세력들은 지난 달부터 줄줄이 러시아를 떠났다. 지난해 8월 나발니의 독극물 중독 사건을 처음 폭로했던 대변인 키라 야르미슈(31)는 지난달 30일 핀란드 헬싱키로 출국했다. 야르미슈는 나발니 석방 시위 주도 등 코로나 방역 규칙을 위반한 혐의로 1년 6개월의 거주 제한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한 기간을 틈타 러시아를 떠났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지만, 러시아 법률가들은 가능하다고 한다. 

야르미슈에 앞서 지난달 8일에는 나발니가 세운 '반부패재단'의 변호사인 류보피 소볼(33)이 비슷한 혐의로 1년 6개월의 가택 연금 선고를 받은 지 닷새 만에 해외로 몸을 피했다. 그녀는 일단 이스탄불로 날아가 다른 항공편으로 갈아탄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 북부 지역에서 출마한 아나스타샤 브류카노바는 “모두가 쫓겨났다”며 “내 이름이 투표용지에 ‘운 좋게’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이라고 씁슬해 했다.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된 TV매체 '도쥐'의 기사 웹페이지. "이 기사는 외국 대리인의 기능을 수행하는 법인에 의해 작성, 배포됐다"는 문구가 맨위에 표시돼 있다/ 캡처

반정부 성향의 언론기관(인)도 당국의 제재조치를 피해가지 못했다. 반정부 성향의 TV 채널 '도쥐'(비) 등은 최근 '외국 대리인' (Иностранный агент)으로 지정됐다. 심하게 말하면 외국에서 돈을 받고 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곳이니 가능하면 (보도를) 믿지 말라는 말이다. '도쥐'는 모든 방송 콘텐츠에 '자사가 외국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명시해야 한다.

푸틴 대통령의 체제 하에서 보안기관에 관한 책을 쓴 언론인도, 반체제 성향의 온라인 매체 편집자도 고국을 떠났다. 

그러다 보니, 나발니 측은 이번 총선에서 정부 여당을 견제하는 '스마트 보팅' 캠페인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스마트 보팅'은 한마디로 여당 후보 낙선 운동이다. 야당 후보는 누구든 좋으니, 경쟁력 있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자는 것이다. 나발니 측이 공산당 후보까지 지지하기로 한 이유다.

하지만, 러시아 정보통신당국은 이마저도, '스마트 보우팅' 앱을 인터넷과 SNS에서 차단했다. 

나발니의 '스마트 보우팅', 다수 지역에서 공산당 후보 지지/얀덱스 캡처
나발니의 '스마트 보우팅' 홍보물. '다함께 통합러시아당에 반대를'라는 문구와 함께 볼로딘 하원의장의 얼굴을 올렸다/인스타그램 캡처

러시아 외무부는 지난 10일 존 설리번 모스크바주재 미국 대사를 초치해 미국 IT 기업들의 러시아 총선 개입 시도에 항의했다. 설리번 대사의 초치는 구글과 애플 등 IT 기업들이 러시아 총선과 관련한 콘텐츠를 삭제하고, 관련 앱 배포를 중단하라는 러시아 통신당국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것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IT 기업들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요구는 겉으로 보기엔 합법적이다. 애플 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에서 '극단주의 불법 조직'으로 지정된 반부패재단의 앱 배포를 차단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치는 궁극적으로 나발니의 '스마트 보우팅' 캠페인을 막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당국이 "러시아 총선에 대한 미국 측의 간섭으로 간주할 것"이라며 발끈한 이유다.

나발니는 앞서 옥중 메시지를 통해 이번 총선에서 '통합러시아당' 후보들을 보이콧하는 데 도움을 줄 반부패재단의 '스마트 보우팅' 앱을 다운로드할 것을 호소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 군인들에게 1만5천 루블 지급 대통령령에 서명/얀덱스 캡처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집권 여당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꺼낸 카드는 '돈'이다. 총선 한달 전에 군대와 검‧경 공무원 등에게 1만5,000루블(약 24만원)을, 연금수급자들과 아이가 있는 가정에 1만 루블(약 16만원)을 지원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지난달 31일 확정됐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이 지원금을 총선 전에 지급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지원금 지급 이유는 코로나 대책으로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4%를 훌쩍 넘은 6.5%까지 치솟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계층을 돕겠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재난지원금과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단기간에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현금 살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영국 가디언지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여당의 지지율은 13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추락했다고 한다. 2008년 이후 최저치인 26%라고 한다. 지난 2016년 총선 때만 해도 80%대를 유지했던 푸틴대통령의 지지율도 올해 들어 61%(8월 기준·스타티스타)까지 하락했다고 한다. 러시아 언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료들이다. 

AKPA, (군인, 연금수급자들에게 지불한) 위기극복 사회적 지원금은 4천500억~5천억 루블로 추정/얀덱스 캡처

푸틴 대통령의 지원금 정책에 직접 영향을 받는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40%가 넘는 약 4,700만명이다. 이중 연금수급자만 4,300만명이다. 필요 예산은 5,000억 루블(약 7조9,100억원)으로 추정됐다. 이는 물가상승률(인플레율)을 0.2% 포인트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물가상승의 피해를 보전해준다는 지원금이 또 물가상승률을 0.2%포인트 올린다는 뜻이니, '약주고 병준다'는 비아냥과 '총선용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인플레 억제를 위해 지난 3월부터 5차례나 연이어 기준금리를 인상한 바 있다. 

러시아 정부와 여당은 총선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데도 신경을 쓰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총선을 하루 앞둔 16일 크렘린 웹사이트에 4분 20여 초 분량의 영상 메시지를 올려 총선 참여를 독려했다. 그는 "우리는 강력하고 권위 있는 의회가 필요하다"면서 유권자들에게 투표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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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시아 2021-09-18 07:32:22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브찌옴(VTsIOM)은 지난 9일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번 총선 결과를 예측했다. 우선 총선에 참가한 정당 중 5개 정당이 5% 장벽을 넘어 의석을 배분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투표율은 48~51%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예측에 따르면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은 41~44%, 공산당 18~22%, 자유민주당 10~13%, 러시아 정의당 7~9%; 새로운 사람들(Новые люди) 4~6% 득표 수준이다. 이번 조사는 18세 이상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2.5%포인트다.

바이러시아 2021-09-18 06:53:23
애플과 구글이 러시아 정보통신당국의 압력에 밀려 알렉세이 나발니의 '스마트 보우팅' 캠페인 앱의 등록을 삭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발니의 측근 레오니트 볼코프는 17일 텔레그램 계정에 "미국 IT회사들이 크렘린의 협박에 굴복했다"고 주장했다. 반부패재단 측은 "애플이 앱을 삭제한 이유를 러시아 정부가 나발니의 반부패재단을 극단주의 불법 조직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왔다"며 "권위주의적 헛소리에 터무니없이 복종한 셈"이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앞서 나발니는 옥중 메시지를 통해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후보들의 낙선을 겨냥한 모바일 앱인 '스마트 보우팅'을 다운받을 것을 유권자들에게 호소한 바 있다. 이에 러시아 당국은 애플과 구글에 각각 이 앱의 배포를 중단할(앱스토어 등록 삭제) 것을 요구했다.

바이러시아 2021-09-18 06:14:33
연합뉴스에 따르면 총선 여론조사 결과,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이 42~46%, 공산당이 17~19%, 자유민주당이 11~13%, 러시아정의당이 7~9%를 득표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서는 통합러시아당이 54.2%의 높은 정당 지지율로 독자적으로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개헌선(3분의 2 의석)을 크게 웃도는 343석을 확보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다수 하원 의석수를 믿고 지난해 7월 국민투표를 통해 오는 2036년까지 30년 이상 장기 집권이 가능한 개헌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러시아 하원은 당시 푸틴 대통령이 제출한 개헌안을 수정하는 방법으로 푸틴에게 차기 대선에 참가 기회를 제공하고, 국민투표로 넘겼다. 또 지난 3월에는 개헌안 취지에 맞춰 대통령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바이러시아 2021-09-18 06:02:43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총선 투표 첫날 투표율이 20시(모스크바 시간) 현재 16.85%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과 미슈스틴 총리 등 주요 인사들은 이날 온라인으로 투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에서 '온라인 투표'와 같은 의미인 '원격전자투표'(Система дистанционного электронного голосования, ДЭГ)의 참가율은 모스크바 시간으로 17시 현재 60%를 넘어섰다. 모스크바에서도 110만명 이상이 온라인으로 투표를 마쳐, 온라인 투표율이 57%를 넘어섰다.

바이러시아 2021-09-18 05:49:47
신종 코로나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 중인 푸틴 대통령은 17일 온라인으로 투표를 마쳤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영방송에서 "나는 온라인으로 시민의 의무를 다했다"며 국민들을 향해 투표 참여를 촉구했다.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소에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방지하는 등 신종 코로나 방역 수칙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투표 기간을 사흘로 확대하기로 했다. 우리의 사전 선거와는 다른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투표는 각 지역의 현지시간으로 오는 19일 21시에 마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