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 접종 교민들이 귀국시 불이익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 접종 교민들이 귀국시 불이익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10.21 03: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러시아 교민이 현지에서 '스푸트니크V' 등 신종 코로나(COVID 19) 백신을 맞더라도 귀국할 경우, 자가격리 면제에 대한 기대는 당분간 접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20일 보건복지부 및 질병관리청 종합 국정감사에서 "러시아 백신은 세계보건기구(WHO) 승인을 받지 못해 사실상 자가격리 면제가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스푸트니크V'는 지난해 8월 러시아 정부가 세계 최초로 등록한 백신이나 미국은 물론, 유럽의약품청(EMA)와 세계보건기구(WHO)의 긴급 사용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백신 접종 현장을 찾은 정은경 청장/사진출처:질병관리청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러시아에서 진행한 교민 면담에서 러시아 백신 접종자의 자가격리를 면제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에 정 청장은 "러시아 백신은 WHO 승인을 받지 못해 우리 정부가 접종력을 인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항체 검사 등으로 보완할 점이 있는지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방역 규정에 따르면 WHO에서 승인된 백신을 접종한 뒤 2주가 지난 재외국민은 입국 시 해외 예방접종 완료자로 인정받아 자가격리가 면제된다. WHO 승인 백신은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모더나, 얀센, 아스트라제네카(AZ), 코비쉴드(AZ-인도혈청연구소), 중국의 시노팜, 시노백 등 7개이나 국내에는 중국 백신을 제외한 4종만 사용이 승인됐다.

지난 8일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주러시아 대사관 국감장 모습(위)와 질의하는 김석기 의원/사진출처:김석기 의원 페북

러시아 백신 접종 교민들이 감당해애 하는 불이익에 문제 제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8일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주러시아 대사관에 대한 국감에서 김석기 국민의 힘 의원은 "러시아 교민은 여기(러시아)에서 승인받은 백신(스푸트니크V)을 맞고도 우리 방역 당국에 의해 해외 예방접종 완료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귀국시 무조건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 의원은 "유럽 등 제3국으로 나가 귀국시 자가격리 면제가 가능한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맞는 교민도 있다고 들었다"면서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조태용 의원은 "스푸트니크 V 백신이 WHO 승인을 얻기는 당장 어려워 보인다"고 전제, "그렇다면, 한국에서 승인된 백신을 갖고와 러시아 교민들에게 접종하는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석배 주러시아 대사는 "한국에서 백신을 갖고 와 교민들에게 접종하는 방안에 대해 러시아 측의 반대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답변한 바 있다.

정은경 청장도 "이미 태국과 베트남 교민에게 (국내 승인) 백신을 지원했다"며 "외교부와 (러시아를 비롯해) 재외국민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내달부터 '위드 코로나' 정책이 본격 시작될 예정이지만, 러시아는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최근 급증하면서 모스크바 등 일부 지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대폭 강화됐다. 오는 30일부터 일주일간은 러시아 정부의 '코로나 (방역을 위한) 휴무일' 도입으로 나라 전체가 '올스톱'될 전망이다.

이전에 비해 규모가 커진 러시아의 코로나 '4차 파동'은 여름 휴가철 내내 느슨해진 방역조치 준수에 백신 접종률이 턱없이 낮은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러시아 백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사실상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러시아가 코로나 백신으로 인정한 '스푸트니크V'는 아직 WHO의 승인 목록에도 오르지 못했다. 사실 그 책임에서 러시아는 자유롭지 못하다.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사진출처:스푸트니크V.com

엄밀히 말하면 WHO는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을 평가해 사용을 허가하는 기관이 아니다. 지난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21)에 참석한 WHO 유럽지역 사무소 한스 클류게 소장은 "WHO는 백신 접종을 가속화하기 위해 사전적격성평가(PQ)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WHO는 규제 기관이 아니며,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 품질에 대한 권장 사항을 작성하기 위해 (개별 국가를 대신해) 사전 검증을 수행하는 기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WHO는 중국의 '시노팜'과 '시노백'의 (긴급) 사용을 권장(승인)하면서 '시노백'에 대해서는 "예방 효과가 51%이며, 중증 및 입원 방지 효과는 100%로 나타났다"며 "18세 이상 성인에게 사용하고 1차와 2차 접종 간격을 2∼4주로 할 것"을 권고했다. 질병 예방 효과 51%는 화이자나 모더나 등 다른 백신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WHO의 승인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WHO의 전문가 팀이 러시아 현장 실사를 끝내면 사용 승인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마리안젤라 시마오 WHO 사무차장도 "(백신) 평가에 필요한 모든 자료가 갖춰지면 WHO 기술 전문가 그룹이 6월 말~7월에 최종 평가(승인 여부)를 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그로부터 6개월여가 지났지만, 스푸트니크V의 WHO 승인은 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 현장 실사과정에서 백신 제조상의 문제가 불거져 심사 자체가 중단됐다고 한다. 러시아측이 자존심을 좀 상하더라도 WHO의 요구 조건을 수용했더라면, 승인 자체가 이렇게 늦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WHO측의 주장대로라면, 러시아 측은 사용 승인을 받기 위 필요한 자료 제공에도, 중단한 평가를 재개하기 위한 법적 절차 진행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스푸트니크V의 효능에 대한 자체 평가와 의학학술지 '랜싯'의 검증 등을 앞세워 남미와 중동, 동남아시아 등에서 개별적으로 사용 승인을 받는데 주력했을 뿐이다. 그리고 70여개국에서 사용 승인을 받아냈다. 러시아측이 WHO의 승인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그 결과, 현지에서 백신을 맞은 교민들만 귀국시 자가격리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게 됐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위드 코로나' 정책과 함께 미국과 유럽 등 서방진영에서 도입된 새로운 출입국 관련 규정에서 러시아 백신 접종자들은 제외되는 결과가 빚어졌다. 접종한 백신의 종류에 따라 출입국이 제한되는, 소위 '백신 동서냉전' 체제가 조성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코러스 생산 스푸트니크V 백신의 항공기 적재 모습/사진출처:한국코러스

국내에서 '스푸트니크V' 백신을 위탁생산하는 한국코러스나 휴온스 컨소시엄도 따가운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위탁생산 업체라면 응당 국내 사용 승인 획득에도 힘써야 하지만, 백신 부족에 허덕일 때에도 한국코러스는 "수출용 백신 생산 계약'을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고, 휴온스 컨소시엄은 지난 4월 뒤늦게 식약처에 '비임상(독성·효력시험)자료에 대한 사전검토'를 신청했다. 그것도 임상 1, 2상 자료도 아닌 비임상 자료만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늬만 '신청'이지, 내용은 없었던 셈이다.  

어이없게도 주한 러시아 대사관측이 스푸트니크V 백신의 해외 승인및 유통을 담당하는 러시아 직접투자펀드(RDIF)측이 우리 정부 관련 부서에 자료를 보냈으며, 검토중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지난 3월의 일이다. 벌써 7개월이 지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