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뒤집기-1) 러시아의 16일 '디폴트'를 '디폴트'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
(러시아 뒤집기-1) 러시아의 16일 '디폴트'를 '디폴트'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3.16 2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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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재무, 중앙은행 계좌 동결 해제 요구 후 "루블화로 갚겠다" 선언

우크라이나에서 특수 군사작전을 펴고 있는 러시아는 서방 측의 일방적인 '금융 시장 봉쇄'로 16일 디폴트(채무 불이행, 쉽게 이야기하면 '부도')에 빠질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외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날 1억1천700만 달러 상당의 달러 표시 채권에 대한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데,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렇다고 바로 '부도'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서방측 금융권에 의해 '부도 처리'될 게 분명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16일 이후에도 21일 6천563만 달러, 28일 1억200만 달러, 31일 4억4천653만 달러 등 외화 국채 만기가 줄줄이 돌아오니, 러시아로서도 별다른 대책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도 러시아가 3월 한 달에만 7억 달러 이상의 외화 부채를 갚아야 한다며 디폴트 가능성을 거론했다.

무디스와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이미 러시아의 장기신용 등급을 '디폴트' 직전 단계로 강등했다. 국제 금융시장 여건이 이 정도라면 어떤 나라든 '디폴트'에 빠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러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는 '부도'를 앞두고 있는 나라 같은 표정이 아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16일 만기가 되는 외화 국채의 이자 지급을 (러시아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는 외국 은행에게) 요청했다"며 "외국은행이 러시아 중앙은행(재무부)의 계정 동결을 이유로 지급하지 않을 경우, 어쩔 수 없이 루블로 이자를 지불할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러시아중앙은행 외화계좌 동결은 서방 측이 러시아를 디폴트(부도)로 몰기 위한 의도를 보여준다/얀덱스 캡처

그의 발언을 '막무가내의 배째라'식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실루아노프 장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는 공공 부채(국채)에 대한 의무 이행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환 능력이 안되는 것도 아니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6,400억 달러, 부채는 4,782억 달러다. 가진 돈으로 부채를 전부 갚고도 한참 남는다.

국내에서는 부채보다 훨씬 많은 자산을 갖고 있는 기업이 만기로 돌아온 빚을 제때 못 갚을 경우, 통상 '흑자 부도'라고 말한다. 현금(자산)이 묶여 있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당 기업이 (서울)회생법원에 '회생'(법정관리)을 신청하면, 법원은 기업의 '존속 가치'(회생)가 '청산 가치'(파산 처리)보다 높다고 판단해 신청을 받아들인다고 봐야 한다. 

러시아 루블화/바이러 자료사진

상식적으로 국제 금융시장이라고 해서 이와 별반 다를 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서방 측이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에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 정부의 외화 계좌를 일방적(?)으로 틀어막은 것. 전체 외환보유고 6,400억 달러중 3,000억 달러 정도가 서방측의 계좌 동결로 묶인 상태다.

러시아로서는 유동성 문제가 일시적으로나마 생긴 게 아니라, 서방 측(채권자들)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할 만하다. 부도가 난 게 아니라, (채권자들이) 고의적으로 부도를 낸 셈이다. 실루아노프 장관이 지난 14일 "서방 측이 러시아 중앙은행(재무부)의 외환보유고 계정을 동결한 것은, 러시아가 부도를 내도록 인위적으로 내모는 것"이라고 비판한 이유다.

그렇다면 러시아 측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 먼저, '돈을 받고 싶으면 묶어 놓은 내(러시아) 돈(계좌)을 풀어달라'고 요구할 것이고, 거부당할 경우, '이거(루블화)라도 받아가라'고 내밀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채권자들에게 '내 돈이 XX은행에 있으니 알아서 찾아가라'고 '배째라' 할 수도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 달러 채권의 루블화 상환 가능성은 디폴트로 분류/얀덱스 캡처 

러시아가 외채 상환을 대하는 태도는 현재 '돈을 받으려면 중앙은행 계좌 동결을 풀어라'는 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러시아의 루블화 상환은 30일 유예기간이 지나면 디폴트에 해당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국제 금융권에서도 '러시아의 디폴트'라고 선언할 개연성이 높다. 전쟁 비용의 자금줄을 옥죄기 위해서다. 

하지만, '(금융 경제) 전쟁'(실루라노프 장관의 표현)에서 디폴트(부도)라는 게 무슨 큰 의미를 가질까?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패가 가려질 즈음에 양측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협상하지 않을까?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디폴트가 선언되더라도, 지난 1998년의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 유예)과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998년에는 돈을 갚을 능력 자체가 없었으나 지금은 돈은 있으나 서방 측의 제재로 인해 상환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 국제유가도 배럴당 100달러선을 오가고 있어, 그때와 다르다고 했다. 러시아의 공공부채 비율도 1998년 국내총생산(GDP)의 135%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18% 수준에 불과하다. 경제 이론상으로는 '디폴트'에 빠질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다.

물론, 러시아의 '총칼'과 서방의 '돈줄'이 충돌하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가 손을 들 경우, 러시아의 디폴트는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타격을 받는 쪽은 러시아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아닐까?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우리 기업의 한숨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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