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뒤집기) 디폴트? 러시아가 유로본드의 달러화 이자 지급에 숨은 뜻은?
(우크라 뒤집기) 디폴트? 러시아가 유로본드의 달러화 이자 지급에 숨은 뜻은?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5.02 0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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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디폴트 회피로 보기엔.. 가스대금 루블화 결제 요구와 맞닿아
4월 6일 루블화 대신 지급시 "여건이 바뀌면 달러화로 지급할 것" 명시

러시아가 4월 초 지급해야 하는 달러표시 채권 유로본드의 이자및 원금 상환액 6억 5000만 달러(약 8,200억 원)를 달러화로 지급했다. 이로써 볼셰비키 혁명 이듬해인 1918년 이후 104년 만에 눈앞에 닥친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를 또 한번 슬기롭게 넘겼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재무부는 지난 29일 시티은행 런던지점을 통해 달러 표시 유로본드 2건의 이자 지급및 원금 상환 의무를 달러화로 이행했다고 밝혔다. 2022년 만기 유로본드의 이자및 원금 상환액 5억6천480만 달러와 2042년 만기 유로본드 이자 8천440만 달러 등 모두 6억5,000만 달러다.

러시아 재무부, 달러 표시 국채 일부 상환 디폴트 피해/얀덱스 캡처

당초 러시아 측은 지난 4일 유로본드 발행 대행사인 JP모건체이스측에 달러로 이자 지급을 요구했으나, JP모건이 미 재무부로부터 러시아 계정 속에 들어있는 달러의 출금및 사용 승인을 얻지 못해 투자자들에게 이자및 원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러시아측은 이틀 후 "미국의 러시아 외환보유고 동결 조치 등으로 대행사의 지급 협조를 얻지 못했다"며 "투자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러시아 은행의 특별 계좌를 통해 루블화로 지급했으니 찾아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외채 상환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계약서에 명시된 달러화 지급 의무를 지키지 못했으니, 계약을 위반한 것이다.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 등 국제 금융업계도 루블화 지급으로는 디폴트를 피해가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방 측이 러시아의 외환보유고 동결 조치를 해제하지 않을 경우, 대외 채무를 루블화로 상환할 수 밖에 없다는 기존 방침을 바꿔 국내에 보유한 달러화로 유로본드 이자 등을 지불한 것은 일단 의외다. 앞으로도 서방측의 은행에 들어 있는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를 쓰는 대신, 자국내 달러화로 외채를 상환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다만, 러시아가 유럽연합(EU) 등을 상대로 가스 대금의 루불화 결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디폴트'라는 또 다른 시비거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달러 지급 의무를 이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계약 위반의 부담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EU는 러시아의 가스 대금 루블화 결제 요구를 계약 위반으로 몰아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재무부/출처:재무부 홈페이지
사진출처:픽사베이.com

국내에 사용 가능한 외화가 비교적 넉넉하다는 점도 러시아가 달러 상환에 나선 부차적인 이유로 보인다. 러시아는 지난 2월 우크라이나 군사작전 개시 이후, 에너지 업체 등 모든 수출업체는 획득한 외화의 80%를 의무적으로 루블화로 바꾸도록 했다. 또 개인이나 기업의 외화 사용처를 까다롭게 제한하는 등 엄격한 통제를 가하고 있다. 한때 달러당 120루블까지 치솟았던 루블화가 달러당 70달러 선을 유지하는 이유다. 외화의 수요보다 공급이 크게 늘었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나왔다.

또 하나, 신용부도스와프(CDS) 시장 감독기구인 신용파생상품결정위원회가 지난 20일 러시아가 달러 표시 채권의 이자를 루블화로 상환한 것은 디폴트라고 판정한 것도 러시아에겐 부담스러운 것으로 판단된다. 지불 유예기간 30일이 끝나는 5월 4일이 지나면 신용파생상품결정위원회로부터 디폴트 판정을 받게된다.

CDS는 채권이 부도나면 손실을 보상해주는 보험 성격의 파생상품이다. 따라서 부도 위험성이 높아지면 CDS의 프리미엄이 올라간다. 만약 러시아가 이번에 달러를 이자를 지급하지 않았으면, 디폴트, 즉 부도가 난 것으로 간주돼 CDS 투자자는 손실액을 보상받을 수 있다. JP모건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와 연관된 CDS는 약 45억달러(약 5조6천억원) 규모다. 그 여파가 만만치 않다. 

그렇지 않아도 서방의 대러 금융 제재로 러시아 국채의 CDS 프리미엄은 가파르게 올랐다. ICE 데이터서비스에 따르면 러시아 국채 CDS 프리미엄에는 디폴트 가능성 93%가 반영되어 있다. 지난 2월 초의 5%, 3월 초의 40%에서 엄청나게 오른 프리미엄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시티은행 런던지점을 통해 송금한 달러가 미국 등 서방 투자자들에게 정상적으로 지급될 지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한다. 외환보유고를 동결한 미국이 그 자금마저 동결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 경우,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금융 제재는 '위험 수위'를 넘어서게 된다. 

윌리 아데예모 미국 재무부 부장관은 로이터 통신과의 회견에서 "러시아는 이번 상환을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쓸 자금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금융 제재가 성공했다"며 "우리의 목표는 러시아의 자원(전비)를 고갈시켜 우크라이나 전쟁을 중단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달러 송금으로 투자자들이 정상적으로 이자(원금)를 지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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