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뒤집기) 우크라 전쟁의 '미스터리' 셋
(우크라 뒤집기) 우크라 전쟁의 '미스터리' 셋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5.04 0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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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없이 버티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다'는 우려가 슬슬 실감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개전 두달을 넘기면서 전쟁 양상은 장기전으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미국 등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개전 초기의 준비 부족과 전술적 실수, 예상외로 허약한 군사력 등으로 단시간에 우크라이나를 공략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군은 당초의 특수 군사작전 목표인 친러 성향의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으로 병력을 집결시켜 현지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군(민병대)과 합동으로 2단계 군사작전을 수행 중이다.

러시아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 연합군은 하루 10Km에도 못 미치는 속도로 진격하고 있다. 더딘 속도가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현지 전문가들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객관적인 이유중 하나로는 2014년 돈바스 분쟁 발발 이후 지난 8년간 우크라이나 군의 최정예 부대가 현지에 구축한 단단한 방어적 요새(要塞)가 가장 먼저 꼽힌다.

우크라이나 요새를 신속하게 공략하지 못한 것을 러시아군의 군사작전 실패로 규정하는 게 서방 측의 시각이다. 그러나 러시아 측은 더디지만 '단단하게' 진격 중이라는 태도다. 러시아 군은 군사적 점령→ 현지 긴급구호→ 군민(軍民)정권 수립및 민심 수습→ 러시아 루블화 경제권 편입 순서로 현지의 러시아화를 추진하는 게 눈에 띈다. 군사적 점령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끌 수는 없다. 자칫하면 '본전도 못 찾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자국에 대한 서방의 가혹한 제재로 날이 갈수록 '총체적 어려움'에 빠져들 전망이다.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 측에 제공하는 탱크(장갑차량)와 공격용 드론, 곡사포 등 각종 무기가 본격적으로 전투 현장에 투입되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저항세력과 더욱 치열한 접전을 벌어야 한다. 

파종 농민을 돕기 위한 러시아군의 지뢰 제거 작업 
임시 가설한 부교를 타고 강을 건너는 러시아군/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영상 캡처

우크라이나 상황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서방 측의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는 쉽지 않다. 러시아가 강력한 각종 미사일들을 쏟아붓는 상황에서 시간을 끌수록 피해만 늘어날 뿐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은 국민과 국가 경제를 피폐하게 만든다. 설사 이기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 될 가능성이 높다.

누가 뭐래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종 승자는 미국이 될 것이다. 미 국방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에게 이번 전쟁은 실패한 전략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알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의 땅에서 피 흘리지 않고, 혼내주겠다는 말이다. '어부지리'(漁夫之利) 전략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미국의 꼭두각시가 되었다"는 러시아 측의 주장이 결코 헛된 말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것 같다. 

전쟁을 빨리 끝내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의장은 지난달 25일 "러시아군도 미군이 유고(세르비아)와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등에서 보여준 무자비한 공습및 폭격 작전으로 나섰다면, 전쟁은 이미 끝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군의 행태와 달리, 우크라이나의 민간 기반시설과 민간인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도록 선택적이고 신중한 작전을 펴왔다는 게 그의 논리다. 뒤집어 말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근본적인 약점이다. 

유순기 합동군사대학교 전략학과 교관(육군 중령)은 국방일보 4월 29일자 '국방광장'에 기고한 글에서 "전쟁은 당연히 참혹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전쟁에도 엄연히 정당한 전쟁이 있으며, 전쟁법을 준수해야 한다"면서 "러시아는 전쟁 수행에서 위법적인 측면이 너무도 많다"고 주장했다. 특히 "피난민 공격과 민간인 건물및 기차역 폭격, 부차 학살(?) 사건 등 전쟁범죄 의혹이 세계로 퍼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러시아의 군사작전에서 선뜻 이해하지 못할 미스터리가 하나 둘이 아니다.

전쟁 범죄를 염두에 두지 않은 러시아군이 개전 초기에 왜 2015년 시리아를 공습하듯, 키예프를 대대적으로 공습하지 않고 자기의 피를 그렇게 흘렸을까? 만약 부정확한 사전 현지 정보(예컨대, 우크라이나인들의 환영)에 따른 판단 착오가 있었다면, 그 이후에라도 왜 폭탄을 퍼붓지 않고 물러났을까? 단순히 우크라이나의 수도권 방공망이 무서워서, 전쟁의 '승리 공식'을 따르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우크라이나 각지의 군사기반 시설을 향해 퍼붓는 칼리브르 순항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 기존의 이스칸데르, 스메르치 미사일 등등을 동원했다면, 키예프는 이미 초토화됐을 것이다.

러시아의 해상 발사 순항 미사일 칼리브로/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그 답은 푸틴 대통령의 군사작전 명령에서 찾아야 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월 개전 TV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이웃 나라가 아니다. 우리(러시아)의 역사, 문화, 정신적 공간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일부이며 동료, 친구뿐만 아니라 혈통, 가족관계로 연결돼 있다"며 진격하는 군에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시설및 민간인 보호를 주문했다.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아조프스탈' 공장에서 저항하는 우크라이나군을 향한 마지가 공격을 허락하지 않고, 봉쇄 명령을 내린 게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많은 피를 흘린다는 게 이유였다. '아조프스탈' 봉쇄 작전은 공격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그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사회 기반 시설을 폭파한 것은 우크라이나 군이었다. 러시아 군의 진격을 막는다는 이유로 멀쩡한 댐을 무너뜨려 주변 지역을 침수시키고, 철교와 다리 등을 폭파했다. 올렉산드르 쿠브라코프 우크라이나 인프라 장관은 지난달 27일 우크라이나군이 약 300개의 철도 연결 부위를 파괴했다고 확인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한강인도교와 철교를 폭파한 작전과 다를 바 없다고 치자. 댐 폭파로 키예프 인근의 한 마을이 완전히 물에 잠겼는데도, "우리가 키예프를 구했다"는 식의 '영웅 만들기'(미 뉴욕 타임스지)는 상식의 선을 넘었다. 그렇다면 러시아군의 진격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가 하지 않는 게 뭘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파괴된 우크라이나 철교/사진출처:glas.ru

러시아도 이제는 우크라이나의 기반시설을 폭파할 때라는 주장이 현지 종군기자들과 군사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서방이 제공한 무기의 우크라이나 유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수송 루트(철도)를 파괴해야 한다는 것이다. 확전을 막고 조기에 승리를 선언하려면 러시아군의 철도 파괴는 불가피해 보인다. 철도는 우크라이나 주요 공항의 활주로가 파괴되고, 항구가 봉쇄된 상태에서 서방측 무기가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그러나 아직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철도 혹은 철교를 파괴했다는 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기껏 일부 기차역의 전력시설 등 운송 기반 시설을 칼리브로 순항 미사일 등으로 공격했다는 정도다. 현지 종군기자들마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러시아군이 공격했다는 우크라이나 기차역. 왼쪽이 폴란드, 아래쪽이 몰도바다. 폴란드에서 돈바스가 위치한 동쪽으로 연결되는 철도 기차역이 공격 목표가 된 것으로 보인다/사진출처:텔레그램 캡처

이에 대해 러시아 군사 전문가인 알렉산드르 시트니코프가 지난 1일 명쾌하게 답변했다. 교량 등 기반 시설의 파괴는 '양날의 검'이라는 주장이다. 우크라이나가 다리를 폭파하는 바람에 우크라이나 제 79여단이 연료와 식량 보급을 받지 못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다는 것이다. 

또다른 군사 전략가 알렉세이 레온코프는 "기반시설의 파괴는 전략적, 전술적 필요성도 따져봐야 한다"며 "우리(러시아)는 그것을 보호한다. 복구할 기회가 있으면 또 복구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부수고, 러시아가 복구하는 아이러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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