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러시아에서는-8) 보스니아 내전 취재와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 통제 사이엔..
(그때 러시아에서는-8) 보스니아 내전 취재와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 통제 사이엔..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5.08 0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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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취재는 위험하다.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한국 언론사에서 종군기자로 목숨을 바친 최초의 언론인은 한국일보의 최병우(1924~1958) 기자다. 한국일보 편집국에서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종군기자의 전설'로 남아 있다.

최 기자는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정부 간의 전쟁(포격전) 취재차, 1958년 9월 11일 최전방인 금문도(金門島)로 향하던 중 배가 침몰하면서 사망했다.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도 그를 기려 1990년 ‘최병우 기념 국제보도상’을 제정했다. 

이후 전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전쟁이 터졌지만, 국내에서 종군한 기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필자는 '유럽의 화약고'로 불렸던 발칸반도의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내전 취재 경험을 갖고 있다. 비록 포탄과 총알이 쏟아지는 직접 전투 현장은 아니었지만, 유엔(평화유지군)이 제공하는 화물기를 어렵게 얻어 타고 날아간 수도 사라예보는 보스니아 내전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분쟁 당사자 간에 평화협정 서명을 앞두고 있었으나, 여전히 사라예보는 전쟁의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방탄복도 필수였다. 하지만 한국의 아마추어 종군기자는 그것마저 챙기지 못해 웃음거리(?)가 됐다. 국내에서는 내전 중 사라예보에 첫 발을 디딘 기자로 남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 보스니아 내전 취재 '그때 러시아에서는' 참조

출처:한국일보 웹페이지

 

모스크바 특파원 시절, 제1차 러시아-체첸 전쟁이 한창이었다. 1996년 양측 간에 평화협상 분위기가 조성되자, 서울에서 온 전화는 "체첸 전쟁 취재 한번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미 보스니아 내전의 끝물을 경험한 필자는 서슴치 않고 "한번 해보지요"라고 했다.

특파원 사무실이 입주한, 한국일보와 제휴관계를 맺은 리아노보스티 통신사 측에 협조를 요청했다. "러시아 정부군과 체첸반군 측의 취재 허가증은 받아줄 수 있는데,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절대로 가지 말라'"는 게 리아노보스티 통신사의 답변이었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사의 종군 기자들도 이미 여러 명이 현장에서 죽었다고 겁을 줬다. 그때 나이 마흔(40)전, 솔직히 목숨이 아까워 포기했다. 사망 보험 가입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시절이다.

한국 언론계가 우크라이나 전쟁 현장 취재를 놓고 시끄럽다. 한국기자협회가 발간하는 기자협회보는 지난 3일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 막는 외교부'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유독 한국만 이렇게 (현장 취재를) 통제해 언론인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투 현장에 종군한 러시아 TV채널 '러시아-1' 여기자. 그녀는 부상을 당해 모스크바로 후송됐다/현지 방송 캡처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된 러시아군 탱크/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분쟁지역 전문 PD인 김영미씨는 지난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들어가 현장을 취재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월 13일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 내린 여행경보 4단계(여행금지) 조치다. 여권법에 따라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누구도 우크라이나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 달 뒤인 3월 18일부터 ‘공익적 취재’ 목적의 입국이 허가됐으나, 그것도 외교부 출입기자단에 한해서였다. 김영미 PD는 “외교부의 취재 통제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며 “헌법이 보장한 취재(언론)의 자유에 반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1995년 말 필자가 내전 중인 사라예보에 입국할 때(물론 민간항공기가 아니고, 유엔 운항 화물기였다), 보스니아가 여행금지 지역이었는지 여부는 알지 못했다. 여행금지 및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제도가 지난 2007년 시작됐으니, 그때는 그런 제도가 없었던 것 같다. 

우크라이나 취재에 대한 문제 제기는 4월 15일 유럽 주재 특파원들이 '취재 보장'을 촉구하는 입장문을 내면서 불거졌다. 유럽 현지에 체류 중인 KBS, 조선일보 등 국내 언론 특파원 6명은 ‘유럽주재 한국 특파원단’ 명의로 낸 성명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뉴스로 다뤄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제대로 취재, 보도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며  “외교부는 여행금지 국가의 취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3월 18일 외교부가 비록 제한적이나마 현지 취재를 허락했는데, 왜 이런 성명서가 나왔을까? 
성명은 “우리(유럽 주재 특파원단)는 외교부가 제시한 허가 조건을 보며, 정부의 ‘국민 알 권리 보호’에 대한 수준 이하의 인식과 언론 자유에 대한 몰이해에 대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외교부가 예외적 입국을 허용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전선과 가장 먼 서남부 체르니우치 지역에서만 취재하도록 허가했다는 것이다.

주우크라이나 대사관 임시 사무실 공지/캡처

체르니우치는 키예프(키이우)에서 약 500㎞ 이상 떨어진 루마니아 국경 도시다.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이 임시 사무실을 개설한 곳이기도 하다. 

성명은 또 체류 인원및 기간의 문제도 지적했다. 외교부가 ‘한번에 4명 이내’의 언론인이 ‘2박 3일’씩만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공익적 목적의 취재와 보도를 허용하는 척 하면서 언론의 기능을 ‘수학여행’과 같은 행위 정도로 격하시켰다”고도 했다. 최병우 기자가 순직한지 74년, 필자의 사라예보 취재 27년이 지난 지금,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취재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국내 언론의 외신(서방) 베끼기에 대한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달 27일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과 언론 보도 세미나’에선 국내 언론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보도가 외신, 특히 서방 언론에 의존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키이우의 유령'이라며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올린 트윗/캡처

대표적인 예가 '키이우의 유령'이라는 기사다. 개전 초기에 ‘키이우의 유령’이라고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공군 조종사가 혼자 러시아 전투기 수십대를 격추시켰다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사가 국내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우크라이나 정보국 → 우크라이나 언론 → 친우크라이나 일부 외신 → 국내 언론으로 이어지는 '베끼기'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국내에서는 '키이우의 유령'이 실재 인물이 아니다라는 미 뉴욕타임스의 '팩트 체크'기사는 무시됐다.(서울경제 신문 3월 5일자). 우크라이나 공군이 3일 ‘키이우의 유령’은 '가상의 영웅'이라고 고백하자, 국내 언론은 또 그 기사로 호들갑을 떨었다.

'키이우의 유령'은 한마디로 우크라이나의 '프로파간다'(선전전)에 불과했다. '전쟁 취재'에서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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