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CIS 토크) 러시아의 '샤프 파워' 미디어, 서방의 균열을 파고든다 - 7월호
(러시아CIS 토크) 러시아의 '샤프 파워' 미디어, 서방의 균열을 파고든다 - 7월호
  • 바이러시아
  • buyrussia21@buyrussia21.com
  • 승인 2022.07.02 08: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벌써 5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정확히는 2일로 129일째다. 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보는 국내외 시각도 많이 시들해졌다. 전쟁이 몰고온 물가 폭등과 증시 하락, 환율 변동 등 경기 변동 추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일 식어가는 자국에 대한 관심을 되돌리기 위해 세계 주요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현대전에서 소위 '프로파간다(선동 선전)'를 빼놓을 수 없다. 심리전이 갖는 비중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이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도 온라인상의 주요 소통(SNS) 플랫폼에 계정을 열고, 전쟁 성과 홍보(?)에 나선 이유다. 같은 사안을 놓고 양측의 주장, 혹은 평가가 엇갈리는 게 다반사다. '프로파간다'전(戰)에서 '진실'은 이미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매월 발간하는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2년 제 7호(2022년 7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에서 '러시아의 프로파간다 전략'을 다뤘다. 러시아·CIS 정치 전공 심종현(박사 과정)이 쓴 '러시아의 ‘샤프 파워’ 미디어, 서방의 균열을 파고들다' 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욱 심화할 '프로파간다'전의 속성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이 글을 소개한다.

'러시아CIS 토크'는 미리 "이 글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며 학과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밝혔다. 바이러시아(www.buyrussia21.com) 편집진도 같은 입장이다. 또 저자가 사용한 '러시아 침공'이라는 단어를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으로 바꿨다는 사실도 미리 알린다/편집자 주 

◇ 러시아와 ‘샤프 파워’ 전략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크게 부상한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단극(unipolar)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권위주의 국가로 분류되곤 하는 양국은 자국의 매력 요인을 활용하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 전략 대신, 타국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그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2017년 미국 민주주의재단(NED)의 워커(C. Walker)와 러드윅(J. Ludwig)은 바로 이러한 파워 구사 전략을 ‘샤프 파워(sharp power)’로 정의했다.

◇ RT의 탄생

워커와 러드윅에 따르면, ‘샤프 파워’ 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어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로 대표되는 경제적 방법론을 채택해 자국에 대한 비판을 억제하고자 한다면, 러시아는 군사·안보적 방법론을 채택해 상대방의 정보를 교란·조작하고, 그들의 제도와 가치를 저해하고자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러시아가 수행하는 ‘샤프 파워’ 전략의 핵심 도구는 바로 대외용 미디어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러시아 당국이 설립한 매체가 바로 RT다. ‘러시아 투데이(Russia Today)’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RT는 구 소련권 국가들에서 연달아 발생한 ‘색깔 혁명’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유럽 확장으로, 러시아의 안보 위기가 고조되던 2005년 12월 개국했다.

국영 통신사 리아 노보스티(RIA Novosti)에 의해 설립된 RT는 이른바 ‘러시아판 BBC’를 표방하며 국제 사회에 러시아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러시아의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을 '사명'(使命)으로 했다.

◇첫 번째 전환점: 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

2008년 8월 러시아는 조지아(러시아명으로는 그루지야)내 분리주의 지역인 남오세티야의 자국민 보호를 명목으로 조지아를 공격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전쟁은 NATO의 구소련권 확장을 저지하기 위한 러시아의 실력 행사였다. 이 전쟁을 통해 러시아는 ‘강한 러시아’의 부활 을 증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러시아 대외정책의 변화에 따라 RT의 성격도 달라졌다. RT는 ‘Question More’라는 슬로건 아래, 서구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서구 미디어의 신뢰성을 공격하며 ‘대안 언론’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사명(社名)을 '러시아 투데이'에서 'RT'로 변경하며 ‘러시아’라는 정보 발신지를 희석했으며, 유튜브·트위트와 같은 뉴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전환점: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2013년 (야누코비치 친러시아 대통령을 몰아낸) 유로마이단 시위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듬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에서 친러시아 공화국들(DPR과 LPR)의 독립 선언으로 이어지며, 러시아와 서방 간의 관계를 급격히 악화시켰다.

유로마이단 시위 모습/사진출처: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노선과 NATO 가입 시도를 용인할 수 없는 러시아는 서방을 향한 ‘샤프 파워’ 전략을 한층 더 강화했다. 그 선봉에 선 RT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를 ‘파시스트’로 묘사하며 러시아의 행보를 정당화했다.

2014년 7월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발생한 말레이시아 항공 MH17 여객기 격추 사건 당시에도, RT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돈바스 친러 반군의 소행이라는 국제 사회의 잠정적 결론을 부인하고 러시아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그해 11월에는 소련 시절 ‘라디오 모스크바’로 개국했던 국제 단파방송국 ‘러시아의 소리’를 온라인 매체 ‘스푸트니크(Sputnik)’로 개편하면서 대외용 미디어를 현대화했다.

소련이 쏘아올린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으로, 냉전기 미국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던 '스푸트니크'를 매체 이름으로 사용한 것은 러시아의 의도적 행보였다. 실제로 스푸트니크는 RT와는 달리 정제되지 않은 거침없는 논조로 서방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가해 서방으로부터 ‘황색 언론’, ‘선전 매체’ 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진격하는 러시아 기갑부대/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영상 캡처

◇세 번째 전환점: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의 공세적인 대외용 미디어 활용에도. 서방은 (언론 자유를 이유로) 이들 매체에 대한 제재에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RT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 주요국에 지사를 설립하며 확장 행보를 보였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및 미 대통령 선거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 의혹과 2018년 전직 러시아 정보요원인 스크리팔 (FSB 대령의) 부녀에 대한 독극물 암살 미수 사건에도 불구하고, RT와 스푸트니크에 대한 서방의 제재는 솜방망이 수준이었다.

하지만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은 러시아 대외용 미디어 제재에 인색했던 서방의 태도를 180도 돌려놓았다. 개전 직후인 3월 2일 EU 집행위원회는 RT와 스푸트니크의 역내 송출을 전면 금지했고, 영국도 같은 달 18일 RT의 방송 허가를 취소했다.

서방 IT 대기업들도 제재에 동참했다.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은 3월 11일 RT와 스푸트니크 등 대외용 미디어 뿐만 아니라 러시아 국영TV 채널인 '페르비 카날'(1-TV)와 '러시아-24', NTV 등의 계정을 폐쇄했다. 러시아 정부는 부당한 언론 검열이라며 반발했지만, 서방은 국가의 통제를 받는 러시아 매체를 ‘전쟁을 부추기는 러시아의 선전 도구’로 규정하며 러시아의 반발을 일축했다.

◇ ‘샤프 파워’ 전략의 미래는?

그렇다면 우리는 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이라 는 ‘하드 파워(hard power)’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샤프 파워’ 전략은 자연스럽게 폐기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RT의 러시아 특수 군사작전 Z의 6월 30일자 전황 영상/캡처

실제로 ‘샤프 파워’ 전략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온 RT와 스푸트니크 등 러시아의 대외용 미디어는 서방의 강도 높은 제재로 인해 접근성이 크게 악화됐다. 본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샤프 파워’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서방 진영에서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각국의 이해관계 충돌로 대(對)우크라이나 지원이나 대러시아 제재의 방법론에서 통일된 견해를 도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산 자원에 의존도가 일부 국가에서는 매우 높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도 식량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물가 폭등(인플레이션)은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샤프 파워’ 전략은 바로 이러한 틈새를 파고 들고 있다.

러시아는 '하드 파워'를 통해 자기 세력권을 보존함과 동시에 ‘샤프 파워’를 통해 자국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과시하고, 궁극적으로는 서방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이른바 ‘복합적 파워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샤프 파워’ 전략은 비단 유럽 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에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고, 러시아가 자국 제재에 나선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면서, 한반도 역시 러시아의 파워 전략 측면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중국의 대한반도 파워 전략은 러시아의 영향을 직접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은 ‘샤프 파워’의 대표 주자인 러시아와 중국을 모두 인접국으로 두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 강대국들의 파워 전략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