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CIS토크) 서방의 지옥 같은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가 버텨나가는 근본적인 이유
(러시아CIS토크) 서방의 지옥 같은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가 버텨나가는 근본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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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0.02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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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이 특수 군사작전의 목표로 내세웠던 '돈바스 해방'을 사실상 일궈냈다. 군사적으로 완전히 점령하지는 못했으나, 정치적으로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와 인근의 자포로제(자포리자), 헤르손주를 러시아로 편입시켰다. 핵무기를 상징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 땅을 지킬 것이라고 했으니,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와 함께 우크라이나 남동부 일대를 '실효 지배'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맞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측은 가혹한 경제제재로 러시아의 '경제 숨통'을 조이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봉쇄'가 바로 눈앞에 와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남부 '실효지배'를 '경제 봉쇄'로 깨뜨릴 수 있을까?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매월 발간하는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2년 제 10호(2022년 10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는 서방의 가혹한 대러 경제제재를 다뤘다. 김유정 씨(박사 수료, 러시아·CIS 경제 전공)가 쓴 '서방의 지옥의 제재, 버티는 러시아 경제'다. 이 글을 소개한다/편집자 

◇ 지옥의 제재를 가하는 서방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 이후 미국을 정점으로 한 서방국가들이 대러 경제제재를 전방위적으로 가일층 강화하고 있다. 이를 통칭해 '지옥의 제재;라고 하는데, 금융과 에너지, 첨단기술 수출 분야에서의 숨통 조이기가 특히 두드러진다. 서구는 푸틴 대통령과 라브로프 외무장관, 국가두마(하원) 의원들을 포함해 수백 명의 개인과 국영및 민간기업에 대 해 자산 동결, 거래 중지, 국고채 투자 중단 등의 금융제재를 시행했을 뿐만 아니라 제재의 '끝판왕' 국제금융결제망(SWIFT) 배제를 통해 러시아를 사실상 국제금융 시장에서 퇴출시켰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고강도 제재가 진행 중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석유, 천연가스 및 석탄 수입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EU는 올해 연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의 90% 축소를 발표했다. 지난 5월에는 오는 2030년까지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입 '0%' 목표를 포함한 '리파워EU 플랜'(REPowrEU Plan) 발표했는데. 이는 EU의 강력한 대러 에너지 의존 단절 의지를 반영한다. 

첨단기술에서도 미국은 반도체, 컴퓨터, 통신, 정보보안장치 등의 분야에서 장비 및 소프트웨어에 대한 대러 수출뿐만 아니라 미국산 (기술및 부품)을 이용하는 제 3국의 대러 수출도 제한했다. EU 역시 방위, 보안, 항공, 우주 분야에서의 제품과 기술 수출을 금지시켰다

이밖에도 러시아 국적기 및 러시아에 등록된 항공기에 대한 영공 운항 금지를 통해 서방으로의 인적 및 물적 접근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

서방의 대 러시아 경제제재/출처 https://www.equipnet.ru/news/finans/finans_2490 7.html

◇ 버티는 러시아 경제

서구의 이런 가혹한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는 예상보다 잘 버티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특히 러시아 루블화가 특별 군사작전 초기 급락했으나, 한달 만에 반등하여 현재는 전쟁 이전보다 더 높은 가치를 유지하는 역설적인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루블화 강세는, 무엇보다도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과감히 20%까지 올리고 외화 송금을 금지하는 등 기민하게 초동대처를 잘 한 결과로 보여진다. 

현재 러시아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는 전쟁 이전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조정되었다 실업률 역시 2021년 말 4.3%에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로,  2022년 2/4분기에는 4.0%를 기록했다. 6월 실업률은 3.9%로 1992년 통계발표 이후 최소치를 찍는 등 지표상으로만 보면 경제위기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서구의 고강도 제재가 러시아 경제에 아직까지 큰 충격을 주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IMF 는 –8.5%로 예상했던 2022년 러시아 경제성장률을 7월 말 -6%로 변경했다.

러시아 루블화의 환율 변동 추이/출처: 러시아 중앙은행 http://www.cbr.ru

◇ 러시아 경제가 선방한 이유는

그렇다면, 러시아 경제가 서구의 '지옥의 제재'에도 이렇게 선방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러시아가 대표적인 환금성 자원인 '에너지 강국'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유럽은 러시아산 에너지의 최대 수입국이다. 뒤집어 해석하면, 러시아에게 유럽은 에너지 인질인 셈이다. 이는 EU가 대러 제재에서 '단일대오'(單一隊伍)의 형성을 방해한다. 러시아는 폴란드와 불가리아, 라트비아 등 반러 성향의 EU 회원국에게는 가스 공급을 차단한 반면, 친러 성향을 보이는 헝가리에는 가스 공급을 확대하는 등 에너지를 무기로 EU의 제재에 대항하고 있다.

러시아는 제재가 한참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지난 6개월간 유럽에 850억 달러 상당의 에너지를 판매했다. 이와 동시에 에너지 수출 노선의 다변화도 적극 꾀하고 있다. 그 결과, 러시아는 서구의 제재와는 무관하게 에너지 수출로 천문학적인 외화를 획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가스 대금의 루블화 결제'를 요구하며 금융시장에서 루블화 가치까지 방어하고 있다. 여기에 에너지 가격의 고공 행진은 외화 수입 증대와 함께 에너지 무기화 전략의 유효성을 강화시켜 주었다.

다음으로 러시아가 세계 5위 외환보유국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2022년 8월 기준,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5,806억 달러로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 대외 부채를 상쇄시키기에 충분한 규모다.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외환거래를 금지하는 바람에, 지난 6월 말 한때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는 서방에 의한 '강제적 디폴트'로 러시아가 지불 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타 국가들의 디폴트 상황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유가의 에너지 수출은 외환 수급의 어려움을 약화시킨다.

러시아가 식량자원 부국이라는 점도 서구의 제재 강도를 완충시키는 요인이다. 주지하듯, 러시아는 세계 3위의 밀 수출국으로 중요한 곡물수출 메이저 국가다. 그래서 에너지 못지않게 세계 곡물 수급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곡물가격 상승은 식량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게 '재앙'처럼 다가왔고, 전세계적으로 식량안보 문제를 대두시켰다. 다행히 최근 밀 가격이 대폭 하락했는데,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를 러시아의 밀 수출 이 전년 대비 확대된 것을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이처럼 러시아는 에너지와 더불어 식량을 무기로 서구의 고강도 제재에 영민하게 대처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가 선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래 가해져 온 서구의 제재에 대해 어느 정도 내성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제재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적 기초체력을 기르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서방으로부터의 ‘경제적 분리'에 대한 대비를 나름 체계적으로 잘 준비해 온 것이다.

실제로 지난 8년간 크렘린은 서방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산업부문에서 수입대체 정책을 펼쳐왔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독자적인 국제금융결제시스템 '미르'(MIR)도 구축했다. MIR 시스템은 현재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국가 이외에도 튀르키예(터키), 아랍에미리트, 베트남 등에서 통용되고 있고, 얼마 전 한국에서도 이용이 재개되었다. 최근에는 경제 대국 인도에서 '미르' 시스템 이용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바, 서방의 제재를 우회하는 러시아 금융서비스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 미국 정부의 강력한 압박으로 EAEU 일부 국가와 터키 주요 은행들이 최근 MIR 결제를 중단한 것으로 보도됐다/편집자
 

러시아 미르 시스템/출처 https://khanty-yasang.ru/news/13145

◇ 귀추가 주목되는 러시아의 대외적 행보

서방의 경제 제재 '약발'은 러시아에 그다지 먹히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유럽 및 세계 경제가 곤경에 처한 모양새다. 그러나 장기적 측면에서 러시아 경제 전망은 밝지 않다고 본다. 고립된 경제는 지속적인 발전을 퇴보시키며, 특히 첨단 기술 분야에서 서구와의 협력 중단 및 가치 사슬 단절은 러시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이미 차세대이동통신 5G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통신 장비를 공급하던 서방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해 러시아의 통신 인프라 확보 계획에 큰 차질이 발생했으며, 중국에 대한 경제·기술 의존도가 더욱 심화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러시아는 외관상 (서방의 제재에) 잘 버티는 것일 뿐, 속은 곪아가고 있다. 이미 물가는 20% 이상 상승곡선을 그렸고, 경제도 당분간 마이너스 성장(역성장)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러시아 경제가 더욱 악화될 것은 분명한 사실인 바, 크렘린이 향후 정치 목적과 경제 이익 사이에서 어떤 행보를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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