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의 모스크바 탐방) 역사의 인물들이 묻힌 '노보데비치 묘원'을 가다 -속편
(김원일의 모스크바 탐방) 역사의 인물들이 묻힌 '노보데비치 묘원'을 가다 -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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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0.09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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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잠들어 있는 '노보데비치 묘원'(Новоде́вичье кла́дбище)에는 제정러시아 시절부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분들이 영면(永眠)에 들어가 있다. 무려 2만6천여 분에 이른다. 

그 시작은 16세기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노보데비치 수녀원'의 수녀와 신도가 주변의 버려진 땅에, 나중에는 모스크바 공국(제정러시아 출현 전 국가 체제) 시절의 왕실 가족이나 귀족들이 수도원내 '스몰렌스크 대성당' 지하에 안장됐다. 

이 곳에 묻힌 대중적인 유명인사는 데니스 다비도프(Денис Давыдов, 1784~1839년)가 처음이다. 1812년 나폴레옹 전쟁 당시 전설적인 기병대장으로 이름을 날렸고,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이후 노보데비치 묘원은 모스크바에서 가장 좋은 '터'가 됐고,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 예술가들이 너도 나도 이 곳에 묻히기를 원했다.

특히 유명 극작가 안톤 체호프가 1904년 아예 노보데비치 수도원에서 장례식을 치르면서 주요 인사들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노보데비치 묘원은 확장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구 묘역(старое Новодевичье кладбище 섹션 1~4), 신 묘역(новое, 섹션 5~8), 최신 묘역(новейшее, 섹션 9~11)으로 나뉜 이유다. 

노보데비치 수도원(위)와 노보데비치 묘원에 안장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부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묘지를 참배한 날, 온종일 노보데비치 수녀원과 묘원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현지 전문가의 안내를 받아 넓은 땅에 흩어져 있는 러시아의 역사적 인물들을 찾아다녔다.

전편에 소개한 열친 전대통령과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제1서기 외에 한소 수교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 외무장관(나중에 총리), 흐루시초프 시절에 권력의 한 축인 최고회의 간부회 의장(우리 식으로는 국회의장)을 맡은 아나스타스 미코얀, 소련 초기의 유명 소설가겸 극작가 미하일 불가코프, 연극계의 '스타니슬라프스키 (교육) 방식'을 창안한 연출가겸 배우 콘스탄틴 스타니슬라프스키, 소련 '지구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블라디미르 베르나스키 등등 정치 지도자와 과학자, 작가, 애국전쟁(나폴레옹 전쟁과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혁혁한 전과를 올린 장군들, 유명한 공훈배우, 발레리나, 음악가들이 거기에 있었다. 

소련 '지구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르나스키
스탈린의 부인 갈리나

흥미로운 점은 노보데비치 묘원에는 유명 예술가들이 많고, 또 좋은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 과학을 중시하는 러시아식 사고와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노보데비치 묘원에 잠든 유명 인사들과 눈에 확 띄는 개성적인 묘를 소개한다.

소련 최고회의 간부회 의장 미코얀
러시아의 유명 희극인 니쿨린, 그의 애견도 앞에 엎드려 있다
러시아 정교회 풍의 묘 
고인을 추모하는 방식으로는 당당한 모습(군인)과 
고뇌하는 모습(예술가)과
얼굴만으로도 충분하지만
평소의 산책 모습으로도 표현됐다.
러시아(소련)의 배우이자 가수 류드밀라 구르첸코
소련(러시아) 오페라 가수 타티아나 슈미가
소련 소설가겸 극작가 미하일 불가코프
한소 수교에 역할을 한 프리마코프 전 총리

글·사진:김원일 모스크바대 정치학박사, 전 민주평통 모스크바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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