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CIS 토크)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러시아 정교회의 입장은?
러시아CIS 토크)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러시아 정교회의 입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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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2.02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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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는 키예프(키이우) 페체르스크 라브라 수도원에서 지난달 정교회 성탄절(1월 7일) 미사가 우크라이나어로 진행됐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수장 에피파니우스 총대주교는 미사에서 "우리 집에 슬픔을 가져온 적을 물리치도록 도와달라. 우리가 마침내 우리 땅에서 외국 침략군을 몰아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정교회는 오랫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최대 종교로서 양국을 잇는 유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성탄절 미사의 풍경은 우크라이나의 정교회가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은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러시아 정교회 산하 수도원들과 성당들을 잇따라 수색하면서 "종교 시설이 ‘러시아 세계’(Русский мир)의 중심지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회오리 속으로 순식간에 휩쓸린 느낌이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매월 발간하는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3년 제 2호(2023년 2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선택의 기로로 선 러시아 정교회의 처지를 다뤘다. 이하선씨(석박사 수료, 러시아·CIS 정치 전공)가 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러시아 정교회의 입장은?이다. 이 글을 소개한다/편집자.

◇ 현대 러시아 국가-종교 관계

소련의 해체 이후 러시아에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4개의 종교, 즉 러시아정교회와 이슬람, 불교, 유대교가 전통 종교로 인정되었다. 2020년 2월 레바다(Levada) 설문조사기관에 따르면 자신을 정교회 신자라고 대답한 러시아인이 68%에 달했다. 이슬람은 7%, 개신교 1% 무신교 16%로 정교 신앙이 러시아 사회에 가장 뿌리 깊게 자리잡았다.

동시에, 러시아 정교회(Russian Orthodox Church)는 탈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고 신자가 양적으로 증가하면서 일련의 사회문제에 대한 입장 및 견해를 밝히고 국가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그 결과, 현대 러시아에서는 국가와 종교(러시아 정교회)의 교향(交響·symphony)은 강화되었다. 2000년 발표된 ‘세속 사회에 대한 러시아 정교회의 기본 개념'(Основы социальной концепции Русской Православной Церкви)은 그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철저히 세속적 성격을 지닌 국가-종교 관계에서 벗어나 사회의 영적·문화적 자산의 보존, 민족·국민 간 갈등의 조정, 도덕적 교육과 자선 등의 분야에서 연대와 협력이 강조되었다.

러시아 내 주요 종교의 지형 변화

2008년 ROC-외무부 간에 실무그룹이 만들어지고 ‘루스키 미르 재단(Russian World Foundation)’을 통해 러시아의 문화 유산과 러시아어를 전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프로그램에 정교회가 적극 참여했다. 또 ROC는 종교 교과목으로 ‘정교 문화의 기초'를 공교육에 도입하는 데 교육부와 협업했다.

2010년에는 소비에트 시기 국가 소유였던 교회 지부와 재산이 ROC로 반환되었다. 이는 교회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흐름속에서 2020년 개정헌법에 ‘신'(Бог)에 대한 믿음이 명시되었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정교회는 푸틴 정부를 지지했다.

◇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한 러시아 정교회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 개시 당일,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은 키릴 총대주교의 이름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평화와 조속한 회복을 위한 기도'를 호소했다. 그러나 전쟁이 지속되면서 러시아 정교회는 ‘특별 군사작전'을 정당화하는 입장으로 선회한다.

작년 3월 6일 사순절 강론에서 키릴 총대주교는 “러시아는 타국을 침략한 적이 없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거나 점령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방의 도덕적 타락'을 지적하고, 이어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은 ‘정교회 신앙이 가르치는 내면의 도덕성'으로 무장해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루스키 미르'(Русский мир, Russian world, 러시아 세계) 교리를 내세워 공통된 정교 신앙을 바탕으로 통일된 루시를 건설할 수 있다는 논리를 견지해 왔다. '루시' 민족(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은 공통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 언어를 공유하며 분리할 수 없는 단일 세계로 통합되어야 하며, 그 중심에 러시아 정교회가 있다고 주장한다.

작년 2월 27일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에서 집전된 성찬 예배에서 ‘루시 민족들의 보호'가 등장한 것은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전부터 러시아 정교회가 주창한 '루스키 미르' 교리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과 키릴 총대주교의 크렘린 대좌/사진출처:크렘린.ru

 

◇우크라이나정교회(UOC-MP)의 탈러시아화

작년 5월 27일 키이우에서 개최된 우크라이나 정교회 주교협의회에서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산하 우크라이나 정교회 (Ukrainian Orthodox Church -Moscow Patriarchate)는 ROC로부터의 완전한 독립 및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주교 회의에서 채택된 결의안 10개 항의 핵심은 UOC-MP의 자율성 즉, 거버너스 변화에 관한 요구다. 교회 행정에 관한 모든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하며 교구 설립과 주교 임명, 간행물 출판, 신학교 강의 개설, 교회 지분 소유 등 러시아 정교회와 분리하여 독자적인 정교회 교구의 지위를 획득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UOC-MP의 탈 ROC 시도는 2014년 '유로 마이단' 혁명 이후 독립 정교회의 수립 착수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10월 콘스탄티노플 세계총대주교청에 자치권 인정과 관련한 공식 서한을 제출했고, 마침내 2019년 1월 6일 독립교구로 공인되었다. 그러나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청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내 교회 관할권 문제와 UOC-MP의 신성종무원(Holy Synod) 회원 자격과 관련해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UOC-MP 소속 사제와 신자들은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을 이탈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독립 여론조사기관 릴리기야(Religiya)의 조사에 따르면 전쟁 전 20%였던 UOC-MP 신자는 4%로 감소했고 우크라이나인의 74%는 UOC-MP가 모스크바 총대주교청과 관계를 단절하기를 원했다.

◇러시아 정교회, 분열과 통합의 기로에서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정교회 신자의 이탈은 우크라이나의 종교 지형을 바꾸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미래는 향후 전쟁의 결과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ROC의 입장과 행보로 인해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은 이전과 같은 영적 권위와 신뢰 회복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키릴 총대주교는 종교간 대화를 통해 갈등을 중재하고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종교 지도자로 인정받아 왔다.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세계정교회 공동체의 반감과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분리 독립은 ‘루스키 미르'의 건설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러시아 정교회 일각에서는 'ROC의 가르침과 전통이 전쟁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평화와 전쟁 종식을 요구하는 움직임도 있다. 러시아 정교회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생한 대내외적 위기와 도전 앞에서 어떠한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ROC의 미래와 세계정교회의 분열 및 통합은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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