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CIS토크) EU 탈탄소화 정책이 러시아 경제의 동아시아 진출을 압박하는 요인
러시아CIS토크) EU 탈탄소화 정책이 러시아 경제의 동아시아 진출을 압박하는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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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5.05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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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을 훌쩍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은 기존의 안보및 경제, 환경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평가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3일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완전히 다른 현실에 직면했다"며 "유럽연합(EU)의 '평화 분담 원칙'도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분석했다.

EU는 구소련 해체후 30여년간 '평화분담 원칙'(국방력을 공동으로 유지함으로써 유럽 안보를 효율적으로 확보하는 방식)을 바탕으로 국방비를 줄이고, 그 예산을 경제·사회·복지·친환경 등 '미래 비전'에 대한 투자로 돌렸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EU는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친환경 인프라 구축 등에 쏟았던 예산마저도 나토(NATO)의 군사력 확충 쪽으로 되돌릴 수 밖에 없게 됐다. 2050년까지 매년 1,750억~2,500억 달러를 투입해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백지화될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EU의 도전적인 친환경 정책을 지켜보고 있는 러시아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가뜩이나 EU의 각종 제재로 동쪽(아시아)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러시아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매월 발간하는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3년 제 5호(2023년 5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에서 '탄소 중립 등 EU의 탈탄소화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러시아의 정책과 고민'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이창혁 씨(석사 과정, 러시아·CIS 경제 전공)가 쓴 '러시아 경제의 동방 지향성과 탈탄소화 동인'이다. 이 글을 소개한다/편집자.

"저탄소 경제를 향한 세계적인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러시아 경제가 유럽에서 아시아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탄소화 과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은 지난 1월 25일 막심 레셰트니코프 경제개발부 장관의 이같은 발언을 기사화했다. 러시아가 현재 아시아와 교류 비중을 늘리는 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이 중 하나가 바로 ‘기후 위기' 의제다. 러시아 경제의 동방 지향성과 기후 위기 사이에는 어떤 공통분모가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먼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이것이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의 상관관계를 알아야 한다.

◇ EU의 CBAM 도입 배경과 현황

2021년 7월 유럽위원회(EC)는 기후변화에 대응한 CBAM 도입을 세계 최초로 선언했다. EC는 지난 2022년 12월 최종 합의된 법안에 따라 2023년 10월부터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 6개 품목에 대해 탄소국경세 적용을 시작한다. 이에 따라 EU내 수입업체는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인증서 1개는 탄소 1t에 해당한다. EU의 인증서 가격은 탄소배출권거 래제(ETS)와 연동된다.

EU는 2025년까지 약 23개월을 전환 기간(시범사업 기간)으로 정해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만 보고받되, 앞으로 플라스틱·유기화학품을 적용 대상 품목에 추가할 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2026년 1월부터는 실제 해당 금액을 부과할 방침이다. EU로 수출되는 모든 물품은 탄소 함유량에 따라 별도의 비용을 관세 형태로 물어야 한다.

출처: Oxford Analytica Daily Brief

현재 EU와 미국을 중심으로 탄소국경세 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EU가 가장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다. 여기에는 그럴만 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EU 제품의 시장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된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별도 비용을 지출해 온 EU 역내 기업들과는 달리,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역외 국가들은 동일 수준의 탄소 배출 관련 규칙을 적용받지 않아 EU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게 사실이다. 이유는 또 있다. 유럽 내 기업들이 탄소 배출 관련 세금 회피와 비용 절감을 위해 탄소 배출 규제가 느슨한 나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이른바 ‘탄소 누출'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덤으로 세수 증대 효과도 있다. EU는 CBAM 도입 후 2030년부터 매년 91억 유로(약 100억 달러)의 세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 모든 것은 EU가 CBAM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배경을 구성한다.

◇ CBAM이 러시아 산업에 미치는 경제적 여파

EU의 CBAM 적용은 탄소 집약적 산업 비중이 높은 국가의 수출에 큰 손실을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브릭스(러시아 브라질 인도 중국)와 터키, 우크라이나, 미국 등이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특히 유럽이 수입하고 있는 제품군 중 CBAM이 직접적으로 적용받는 제품군의 약 17%가 러시아산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료: Sandbag-E3G 보고서

영국에서 설립된 기후정책 싱크탱크인 샌드백(Sandbag)과 E3G가 2021년 8월에 시행한 공동 연구 결과에 따르면, EU의 CBAM 도입으로 2033년 러시아의 대유럽 수출품에 대한 탄소세 부과 규모는 연 19억 유로에 이를 전망이다. 2033년은 EU의 무상 할당 탄소 배출 허용량이 ‘제로' 가 되는 해다. 게다가 아직 EU의 CBAM 우선 적용 대상 품목은 아니지만, 전환 기간을 거치면서 플라스틱과 유기화학품에도 적용하기로 결정된다면, 러시아는 최대 연 30억 유로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CBAM 도입으로 러시아가 향후 지불해야 할 비용이 여느 국가들보다 높을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 러시아의 CBAM 대응 방안

EU의 CBAM 도입에 대응하는 러시아의 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동아시아 지역으로의 수출 비중 확대이고, 다른 하나는 탄소중립 정책의 실현이다. 러시아는 당분간 수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탄소 배출권 규제 기준을 둔 동아시아 지역으로 수출품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교역 구조를 재조정하고 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출국은 중국과 한국, 일본, 인도인데, 2021년 기준으로 러시아의 수출에서 차지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 범주 내 상품군의 아·태지역 수출 비중은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75%까지 차지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아·태지역으로 수출 비중 확대는 단기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 아·태 지역 주요 수출 대상국 역시 탄소배출권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도를 제외한 세 국가는 이미 탄소 배출 저감 문제를 다뤄왔고,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공식 시행하고 있다. 일례로 중국은 2021년 7월 전국 단위 탄소배출권 거래소 출범으로, 약 2,000개 사가 참여하는 40억t 규모의 세계 최대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을 형성했다. 심지어 세계 3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인도마저 2022년 8월 탄소배출권 시장에 진입할 계획을 밝히면서 러시아 정부의 탈탄소화 정책 실천은 불가피한 일이 되었다. 글머리에서 러시아 경제개발부 장관이 탄소중립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러시아 역시, 글로벌 탄소중립 추세에 적응하기 위한 자구적 노력을 나름대로 꾸준히 펼쳐왔다. 러시아 경제개발부는 2020년부터 유럽 탄소배출권거래제(EU ETS)의 탄소 단위 가격을 기준으로 각 수출기업에 미칠 CBAM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브랏스크와 니즈니타길, 옴스크, 치타 등 산업 유해 물질의 배출량이 많은 12개 공업 도시를 중심으로 2026년 말까지 유해 물질 배출량을 2017년 수치 대비 20% 감축하는 ‘청정 대기 연방 프로젝트'도 수립했다. 2023년 올해부터는 300여 개 탄소 과다 배출 기업을 대상으로 ‘유해 물질 감지 시스템' 의무화 규칙도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 불가피한 선택이 된 러시아의 탄소중립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경제제재가 무려 10차까지 진행되고 있다. 대러 제재가 강화되면서 유럽의 CBAM 적용이 러시아 수출업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은 더욱 커질 게 분명하다.

문제는 CBAM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러시아 경제가 이를 피해 갈 방법이 유럽과의 교역 단절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미래에 닥칠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대한 대응 방안 마련에 부심하는 가운데, 동아시아 교역 파트너와의 협력을 최대화하고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도 점차 탄소배출권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러시아의 탈탄소 경제로의 산업구조 재편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 상황이 되었다.

종합해서 정리하면, 서구의 대러 제재와 EU의 CBAM 도입이라는 경제 사회적 여건의 압박은 러시아의 동아시아 시장 중시 정책을 강화하도록 몰아가고,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추세는저탄소 경제로의 구조적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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