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CIS토크) 러-우크라 전쟁으로 가속화하는 인터넷 편가르기 - 스플린터넷 현상 우려
러시아CIS토크) 러-우크라 전쟁으로 가속화하는 인터넷 편가르기 - 스플린터넷 현상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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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6.02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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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은 개인 메신저로 '왓츠앱'(WhatsApp)을 많이 쓴다. 러시아에서 접근이 차단된 페이스북(모회사는 '메타')이 운영하는 메신저다. 메타의 또다른 SNS 서비스인 인스타그램도 차단됐으니, 러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작동하는 메타의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이 '왓츠앱'이 6월의 첫날(1일)부터 러시아 법원에서 과징금 부과 처분을 받았다. 금지된 자료 삭제를 거부했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는 여차하면 '왓츠앱'도 차단할 듯한 분위기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매월 발간하는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3년 제 6호(2023년 6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속화하는 서방-러·중 간의 인터넷 서비스 편가르기 싸움을 다뤘다. 강승주씨(박사 과정, 러시아·CIS 정치 전공)가 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또 다른 여파 : 사이버 진영화의 가속화'다. 이 글을 소개한다/편집자.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질서에 미친 영향은 다양한 수준에서 설명이 가능한데, 이 가운데 하나가 사이버 공간에서 '파편화'(스플린터넷·Splinternet) 현상의 심화일 것이다. 지난 3월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논의하고자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당면한 전쟁의 중재를 논의하는 자리임에도 이례적으로 러-중 양국 정상은 “모든 국가의 주권과 안보가 보장되는 다자간 평등하고 투명한 글로벌 인터넷 운영 시스템의 구축을 지지한다”라는 문구를 공동 성명에 담았다.

또 3월 31일 발표된 러시아 연방의 대외정책 개념(Концепция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РФ)에도 “모든 국가들의 평등한 참여에 기반한 정보 통신망 ‘인터넷’의 발전 보장에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인다”(30항)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서도 러시아가 평등한 인터넷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 스플린터넷 현상을 심화시킨 러-우크라 전쟁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스플린터넷'(Splinternet) 현상이 관찰된다. '스플린터넷'은 '파편'이란 뜻의 '스플린터'(Splinter)와 '인터넷'(Internet)의 합성어로 국경, 정치, 종교, 민족주의 등의 요인으로 인터넷이 파편화한다는 의미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는 "2028년이 되면 인터넷(사이버 공간)은 미국과 중국이 각기 주도하는 양분화된 공간이 될 것"으로 경고했는데, 러-우크라 전쟁은 이를 한층 촉진시킨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해 2월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 개시 직후 러시아발 허위정보 차단을 명분으로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에 러시아의 국가 도메인인 ‘.RU’의 폐지를 요구했다. 도메인 .RU의 폐지는 해당 웹사이트 전체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며, 러시아의 인터넷 접근이 봉쇄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정부 차원에서 글로벌 IT 기업을 상대로 러시아 내 서비스 중단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ICANN은 특정 국가의 도메인을 차단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제한되고 도메인 차단은 기관의 임무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우크라이나 측의 요청을 거부했지만, 글로벌 IT 기업들은 우크라이나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러시아 정부도 이에 대한 보복으로 페이스북의 접속 차단에 소위 '가짜뉴스 퇴치법' 등을 제정했다. 지정학적 분쟁이 사이버 공간의 편가르기로 전이되는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러시아에서 차단된 '유튜브'를 대체하기 위해 시작된 자체 동영상 서비스 '루튜브'(RUTUBE)의 현지 매체 rbc 계정/캡처  
러시아의 토종 SNS 서비스 브콘닥테(vk)/캡처

◇미국 주도의 인터넷 체제에 도전하는 중·러

사이버 진영화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ICANN은 전 세계 인터넷 주소 자원을 관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법을 적용받는 기관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 같은 미국의 인터넷 패권에 대응하기 위해 ICANN이 가진 권한을 유엔(UN)산하 다자국가의 투표가 반영되는 ITU(국제 전기통신연합)로 옮기고자 시도했다.

실제로 중국 자오 허우린(Zhao Houlin) ITU 사무총장의 재임 기간(2015년~2022년)에 미국 주도의 인터넷 정책에 대응하려는 ITU의 노력이 가시화되었다. 예컨대, ITU는 현 TCP/IP 기반의 인터넷을 대체하기 위해 중국 화웨이 기술이 기반이 된 NEW IP (이후 FVCN : Future Vertical Communication Networks로 명칭 개정)를 국제사회에 소개했다. 중국이 개발한 NEW IP 기술은 TCP/IP 기술에 비해 효율적인 IP 관리가 가능하나, 인터넷이 검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최근 ITU 사무총장 선거가 주목받은 이유

2022년 10월, 허우린 자오 ITU 사무총장에 이어 2023년부터 4년 간 ITU를 이끌 차기 사무총장 선거가 루마니아에서 열렸다. 선거는 ITU 개발국장을 맡은 미국의 도린 보그단-마틴(Doreen Bogdan-Martin)과 러시아의 디지털개발통신미디어부 차관 출신으로 화웨이의 임원을 역임한 라시드 이스마일로프(Rashid Ismailov)의 양자 대결로 진행됐다. 투표 결과는 139표를 얻은 보그단-마틴 후보가 25표를 얻은 이스마일로프 후보를 압도했으나, 이번 선거로 미국이 국제기구 수장에 직접 출마하지 않는 관행이 깨졌다.

영국의 정보기술 전문잡지 '와이어드'(Wired.co.uk)가 이번 선거를 러시아와 중국 등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 서방이 개방된 인터넷을 수호했던 사건으로 논평했을 만큼, 미국으로서는 물러설 수 없었던 선거였다.

도린 보그단-마틴 신임 ITU 사무총장/사진 출처: ITU

◇사이버 진영화 추세에서 IT 강국 한국의 대응책

전술(前述)한 바처럼, 사이버 공간을 둘러싼 강대국 간의 주도권 싸움은 러-우크라 전쟁을 거치며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특히, 1국가 1표가 적용되는 ITU를 중심으로 미국 주도의 인터넷 체제에 대항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연대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사이버 공간을 둘러싼 내편 만들기 싸움에 러-중 양국이 연대 외교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IT 강국 지위가 흔들린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개방된 현 인터넷 체제 속에서 ICT(정보통신기술) 선도국으로 평가된다. '스플린터넷' 현상이 강화되는 현실 속에서 큰 추세의 변화는 예상되지 않지만, 미래의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은 요구된다.

그런 측면에서 인터넷 거버넌스 관련 국제기구에서 고위직 인사의 배출도 필요한데, 지난 해 ITU 사무차장직 선출에서 우리가 고배를 마신 것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특별히 유념할 점은 또 있다. ICANN 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과 인터넷 주도권을 ITU로 옮기고자 하는 중·러 연대 사이의 힘겨루기에서 우리의 국익을 최우선하는 방향으로 전략적 대응을 고민하고 도모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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