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연수온 러시아 교포 3세들의 이야기
한국에 연수온 러시아 교포 3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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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8.0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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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색 피부`검은색 머리카락과 눈망울, 겉모습은 분명한 한민족이다.
하지만 이들은 ‘러시아’ 국적으로 한민족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 사회의 이방인이기도하다.

우리 말로 인사 한마디 전하지 못하는 이들 러시아 교포 3세 청소년들에게 한국과 구미는 어떤 모습일까?

동북아청소년협의회가 주관하는 모국어 연수를 위해 지난 2일 인천공항에 도착, 구미 금오산 자락에 안긴 경북도 청소년수련관에 여장을 푼 러시아 교포 3세 청소년들의 15일간 한국배우기를 따라가본다.

지난 3일 오전 10시. (사)동북아청소년협의회(이사장 김석호)가 주관한 ‘2004 러시아 교포 3세 청소년 모국 연수’에 참가한 러시아 교포 청소년 모국어 연수단 환영행사가 열린 구미시청 직원 휴게실.

열세살의 초등학교 여학생의 앳된 모습부터 스물두살의 대학생까지 32명의 청소년들과 3명의 인솔교사 등 모두 35명의 러시아 교포들은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한 듯 눈 반짝인다. 서로 재잘거리고 장난치는 교포 학생들의 모습은 한국의 청소년들을 보는 듯하다.

간단한 환영과 인사가 오가고 언론사 보도진을 위한 사진촬영과 시청 방문 기념촬영, 경북도 청소년수련관에서의 입교식 등 모국방문 첫날의 오전 일정은 바쁘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들에게 ‘한국’은 분명 모국(母國). 최 안드레이(14`유즈노사할린스크시 리쩨이학교)군은 “나와 같은 모습의 사람들을 보니 너무 기쁘다”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기억은 없지만 그분들의 고향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다”고 첫 소감을 이야기해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고향을 경험하고 한민족임을 배워 왔단다.

이들 교포 청소년들의 첫 연수는 단연 한국어 교육. 청소년협의회가 이 행사를 마련하는 이유들 중에서 으뜸이 교포 청소년들이 한국말로 인사라도 한마디 나눌 수 있도록 하자는 것.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한민족이라는 민족의식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하나`둘`셋, 한국음식 맛 있습니까?” 강사로 나선 박동욱(39) 이사의 말에 교육을 받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는지 교포학생들은 이내 까르르하고 웃는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한국말을 배울 수 있다는 게 마냥 기쁘다.

러시아 현지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별도로 없다. 이 때문에 현지인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한국말을 배우기란 무척 힘이 든다.
학교에 따라 별도로 한인 교포학생을 위해 1주일에 1시간 정도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나 글을 쓰고 말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단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등 간단한 인사말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을 찾지만 2명만이 손을 든다. 그마저도 어눌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이 학생은 자랑스럽다. 이내 박수가 쏟아진다.

2시간에 걸친 이날 첫 한국어 교육시간 내내 교포학생들은 ‘스트라스트 모이쩨, 안녕하세요’ ‘쓰파시뽀, 감사합니다’를 목청껏 외고 읽고 쓰면서 한민족임을 확인했다. 연수 교포학생들은 방문기간 동안 모두 10시간의 한국어 교육을 받는다. 이 시간 동안 기본적인 인사말을 익힌다.

처음 만났을 때 언어소통이 되지않아 서먹했던 모습이 보름 후 헤어질 때는 서로 악수하고 한국말로 잘가라, 고맙다 인사하는 정겨운 동포애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연수 방문 이틀째엔 한국어교육과 함께 동북아청소년협의회 김석호 이사장의 특강, 신나는 도심 관광 및 쇼핑, 그리고 저녁에는 지역인사들이 참석하는 환영만찬이 이어진다.

김 이사장의 특강에서 ‘구미가 수출200억불을 달성한 산업단지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인터넷 등 첨단 IT산업의 으뜸을 달리고 있다’는 등 소개가 될 때마다 “와!”하는 탄성과 박수가 터져나온다.

한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이내 질문들이 쏟아진다.
“구미 인구는 몇명인가?” “왜 구미라 했는가?” “유학을 오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등등. 이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공원과 PC방, 부를 수 있는 한국노래는 ‘아리랑’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아리랑이 울려퍼진다.

조 콘스탄찐(15`우글레고르스크시)군은 자신이 러시아에서 태어나 살게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일제때 강제로 끌려와 일을 하면서 살게 됐다”면서 또렷하게 ‘일본×’이라 해 깊은 한(恨)의 역사를 인식하는 듯했다.

일순간 교육장이 모두 숙연해진다. 모두가 그런 역사적 아픔을 알기에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다. 이어진 구미 도심관광과 쇼핑은 숙연해진 학생들을 이내 즐겁게 바꿔놓았다.

늘어선 차량과 도심 건물들, 곳곳에 조성된 공원과 숲이 이들에게 포근하게 전해온다. 대형할인점에 들어선 학생들은 이내 곳곳으로 흩어진다. 쇼핑의 즐거움에는 인솔교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금자(26`코르사코브시 15학교 한글교사)씨와 이 야나(23`사할린국립사범대 한영과 교수)씨는 화장품 매장 앞에서 어눌한 한국말로 상품을 고른다.

남학생들에겐 신발과 가방, 여학생들에겐 단연 옷이 관심거리다. 장 알레나(16`코르사코브시 제 6학교)양은 “옷이 너무 예쁘고 싸다. 색깔도 곱고 촉감도 좋아 티셔츠 두개를 샀다”고 수줍어 한다. 이 곳에서 학생들은 모국을 가슴속에 샀는지도 모른다.

방문연수 3일째 저녁은 민속놀이 체험. 교포학생들이 편을 갈라 윷놀이와 제기차기를 배운다. 처음에 서툴던 손놀림들이 한 두번만에 자연스럽다. 이들도 분명한 한민족의 핏줄임을 보여준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학생들은 이내 “윷이야. 모야”를 외친다.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다함께 외치는 소리가 좋다. 둥그렇게 둘러서 제기차기하는 모습에서 이들은 하나의 민족임을 새겼을지도 모른다.

청소년협의회 권순국 사무국장은 “민속놀이를 쉽게 따라하는 것을 보면 이들도 분명한 한국인”이라며 “앞으로 남은 일정 동안 한국을 많이 배워가길 바란다”고 했다.

이들은 앞으로 안동 하회마을과 민속촌, 경주 불국사와 박물관 등 한국문화유산을 체험하고 농심`LG`포항제철 등 산업체 견학을 통해 한국의 발전을 경험한다.

그리고 구미의 선산농경박물관과 화훼단지, 의구총, 금오산, 금오랜드 등 관광과 영화관람, 노래방, PC방 등 한국문화 체험 기회를 가진다.

최길영(50`코르사코브시 한인협회장) 연수방문단장은 “학생들이 이번 연수를 통해 한국의 핏줄임을 느끼고 돌아가길 바란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말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희망했다.

어둑해진 금오산 자락을 빠져나오는 길, 누군가가 등뒤에서 외친다.
“안냐히 가세요.”

구미`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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