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등지서 제2의 인생을 사는 남자들도 많다
러시아 등지서 제2의 인생을 사는 남자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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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8.2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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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빠지게 일했는데 나이 마흔줄에 명퇴당했지, 이혼까지 당하니까 죽고싶다는 생각밖에 안들더라고. 그러다가 새출발 해보자 싶어 3년 전에 퇴직금 들고 중국으로 왔어요. 여기서 한족(漢族) 여자와 결혼해 살고 있고 조그맣게 벌인 PC방도 곧잘 되고…, 후회는 없어.”

서울 시내의 잘 나가는 은행원이었던 김도균(47)씨는 현재 중국 지린성에서 중국인 부인과 함께 PC방을 운영하고 있다. 1999년 다니던 은행이 구조조정에 들어가 그는 졸지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한 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혼까지 당했다. 그 후 수차례의 맞선을 봐온 김씨, 그러나 결과는 모두 실망스러웠다. 그는 중국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30대 한족 여성을 소개받았고 몇 주의 연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그리고 퇴직금을 모아 중국에 30평짜리 아파트 한 채를 사고 PC방 2개를 열었다. “한국에서 1억5000만원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요? 장사를 해보고 싶어도 권리금이나 임대료가 엄청 비싼 데다 경기가 나쁘니 비전도 없잖아요. 부인이 현지인이니까 도움도 받고, 나도 같은 돈으로 처갓집에 생색내면서 해줄 수 있는 것도 많고…. 서로 좋은 거죠.”

서울 영등포의 A할인매장에서 일하는 신모(34)씨. 시계가 오후 7시를 ‘땡’하고 가리키면 허겁지겁 종각역 근처의 러시아 학원으로 달려간다. 신씨가 매주 3일씩 러시아어를 배우고 밤이면 나이트클럽의 여댄서들로부터 현지 분위기를 익히는 등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금발의 러시아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서다.

“나이가 30을 넘어가는데 모아놓은 돈도 없으니까 국내에서 참하고 예쁜 아가씨와 결혼하는 건 포기했어요. 러시아에 가서 결혼도 하고 지금 있는 돈으로 장사도 시작할 계획이에요.” 신씨는 추석 연휴를 이용해 러시아에 들를 생각이다. 국내 국제결혼 알선업체에 쥐어줄 돈 1000만원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김씨나 신씨처럼 국제결혼을 통해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내에서 국제결혼이 눈에 띄게 증가한 건 1998년 이후. 그 수는 계속 늘어 지난해엔 한국 남성 1만9214명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했다.(통계청) 2002년의 1만6건에 비하면 62% 증가한 셈이다.

초기에는 주로 농촌 노총각들이 베트남·조선족 여성과 결혼하는 게 전부였지만 지금은 30~40대 회사원이나 전문직 남성들도 러시아·고려인 여성과 국제결혼을 한다는 게 알선업체들의 얘기다. 게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제결혼 후 현지에 정착하는 남성이 늘어나면서 알선업체들은 결혼뿐 아니라 현지 정착 아이템을 함께 끼워 파는 ‘패키지’ 상품도 내놓고 있다.

인천의 A업체의 경우 1500만원짜리 ‘결혼+현지 개업컨설팅’의 패키지 상품을 팔고 있다. 최근 6개월 동안 이 업체를 통해 국제결혼에 성공한 남성의 20~30%가 중국·우즈베키스탄·필리핀에서 외국인 부인과 함께 PC방·음식점·포토숍 등을 열었다.

한국 남성들이 국제결혼 ‘원정’을 떠나는 곳은 중국뿐만이 아니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필리핀·러시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몽골·카자흐스탄 등 한국보다 물가가 싼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했다. 실제로 주 러시아 대사관 홈페이지에는 ‘현지 여성과 결혼한 후 러시아에 사는 것이 좋은지, 러시아에 정착한 후 국제결혼을 하는 것이 좋은지’ 등을 묻는 결혼 수속 관련 글이 100여건 올라온 상태다.

최씨처럼 30대 직장인이 첫 결혼을 외국인 여성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수는 재혼을 원하는 40~50대 남성이다. 자의 혹은 타의로 다니던 직장을 나와 퇴직금을 들고 외국에서 신혼살림을 차리는 것이다.

경기도의 B초등학교 교장이었던 김모(58)씨도 퇴직 후 40대의 러시아 여성과 올 초 결혼해 현지에서 살고 있다. 김씨는 러시아 은행에 3000만원 정도를 입금시킨 상태. 한국 아파트에 전세를 놓아 얻는 수입까치 합쳐 부인과 여행을 다니고 있다.

국제결혼 알선업자 전대영씨는 “동남아나 중국의 소도시에서는 말년을 즐기려는 일부 50~60대 남성들이 현지에서 결혼해 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국제결혼의 경우 재산분할에 관한 명확한 법이 없기 때문에 일부 돈 많은 남성들은 현지인 부인을 계속해서 바꿔 망신거리가 되기도 한다”고도 했다.

현지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국제결혼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영주권을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 언어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에서 중고 전자제품을 팔던 김모(53)씨는 작년 10월 고려인 여성과 재혼한 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에서 전자제품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국제결혼을 감행한 가장 큰 이유는 “국내 경기가 나빠 해외로 사업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다. 김씨는 국내의 한 결혼 알선업체를 통해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현지에 도착한 날부터 사흘간 그는 30~40여명의 러시아·고려인 여성과 맞선을 본 후 13번째 만난 여성을 선택했다고 한다. 넷째 날 신부 부모와 상견례를 갖고 한국 대사관에서 혼인신고를 한 후 다섯째 날에는 곧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현지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신혼여행을 끝낸 후 한국으로 돌아와 혼인신고를 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1주일. 그리고 올해 2월 김씨는 처갓집에서 불과 20분 떨어진 곳에 매장을 열었다.

“전기·가스·기름값이 거의 거저나 다름없어. 한국은 요즘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어요? 이 나라는 탁아소도 잘 돼있고 교육비가 얼마나 저렴한데…. 귀족학교도 월 10만원이면 충분하니까 한국에서 아등바등하면서 애들 키울 필요가 없는 거지.” 그는 “작년 10월 처음 타슈켄트에 들어갈 때만 해도 이미 한국인이 3000명이나 진출해 있는 상태였다”면서 “많은 수가 고려인들과 결혼한 후 예식장의 뷔페식당이나 호텔 나이트클럽 등을 운영한다”고 전했다.

외국인 부인이 현지 적응에 실패해 삶의 터전을 옮기기도 한다. 3년 전 러시아 백인여성과 결혼해 살고 있는 이모(37·회사원)씨는 부인의 등쌀에 못이겨 올해 말 처갓집이 있는 하바로브스크로 떠날 계획이다.

“저밖에 돈버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침 8시부터 12시간은 나가서 일을 해야 해요. 영업사원이다 보니 술자리도 많고…. 아내가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일만 하느냐, 러시아에서는 8시간만 일해도 된다’면서. 말도 안통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니까 우울해 하다가 이틀에 한 번꼴로 싸웠어요.”

러시아 국제결혼을 알선하고 있는 최모(40)씨는 “러시아 국제결혼의 80%가 이혼으로 끝난다”면서 “남자들이 1주일 만에 알선업체들을 통해 결혼한 후 지킬 수 없는 온갖 감언이설로 현지여성을 데려와놓고 부인의 한국 적응도 돕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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