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 재단의 장학금으로 한국에 온 이 나탈리아
재외동포 재단의 장학금으로 한국에 온 이 나탈리아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5.10.08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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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제가 한국인이란 것이 너무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올해 카자흐스탄에서 연세대 대학원으로 유학 온 고려인 3세 이나탈리야(24·국문학·사진)씨는 국어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며 뿌듯해했다.

카자흐스탄에서 2000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나탈리야씨는 대학 전공 선택을 놓고 할머니가 원했던 한국어와 자신이 희망한 영어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많이 망설였다. 이런 이나탈리야씨가 국어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대학 진학을 위해 학비가 덜 드는 키르기스스탄으로 간 이나탈리야씨는 한국인이 하는 연설을 듣게 되었는데, 그 순간 한국어가 편안하게 느껴지게 된 것이다.

한국어로 듣는 첫 연설이었다는 이나탈리야씨는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한국어가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며 “한국 사람이란 것을 잊고 살았던 것이 부끄러웠고, 국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나탈리야씨는 키르기스스탄의 바쉬케크인문대학 한국어과에 입학한 뒤 외국인 학생에겐 장학금을 주지 않는 규정을 깨고 장학금을 받는 행운까지 얻었다. 이후 학교를 졸업한 이나탈리야씨는 재외동포재단에서 주최하는 한국유학생 선발에 뽑혀 연세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한국어 선택으로 인생 자체가 기적과 같이 확 바뀌게 되었다는 이나탈리야에게도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계속 남아 있었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고 외모는 비슷하더라도 카자흐스탄인은 아니고 러시아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러시아인 역시 아니란 것이 어린 시절부터 정체성에 많은 혼란을 주었다.

또 그나마 자신은 한국인이라고 여기며 학교에 다녔지만 한국인에게서 들은 ‘당신은 한국인이 아니라 고려인’이라는 말은 큰 상처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정체성의 혼란은 대학에 다니며 국어를 배우고 할아버지가 카자흐스탄까지 오게 된 것이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 때문이었다는 역사를 알게 되면서 자신이 한국인이란 사실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같은 테두리 안에 있으면 잘 대해 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벗어나면 너무 매몰차지는 것에 가장 놀랐다는 이나탈리야씨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외국에 나가 살더라도 같은 중국인, 일본인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같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족, 고려인으로 우리를 다르게 부르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며 아쉬워했다.

학업을 마친 뒤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이나탈리야씨는 “한글과 역사 등에 대해 한국인들과 얘기를 하면 서로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며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있는 동포들이 한국인으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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