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 마린스키 극장이 여전히 위대한 이유는?
상트 마린스키 극장이 여전히 위대한 이유는?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9.11.01 0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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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이 지금까지 전세계 공연계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유중 하나는 역시 작품을 알아보는 혜안이다. 안그랬으면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이 두각을 나타낼 즈음 서서히 내리감길을 걸었을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인 김대환 국민대 예술대 교수는 한 일간지 칼럼에서 "마린스키 극장은 예술분야의 편가르기의 늪에 빠지지 않고 끝까지 멋지게 승리하는 법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19세기 제정러시아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제정러시아 수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모든 문화적 에술적 문화의 꽃을 피우던 곳이었고, 모스크바는 경쟁관계. 특히 귀족문화의 핵인 각종 공연문화는 마린스키극장과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이 첨에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볼쇼이 극장은 마린스키 극장을 꺾기 위해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였던 차이코프스키와 함께 발레 를 무대에 올렸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평론가들은 혹독하게 차이코프스키를 비판했다. 당시 평론가들의 혹평은 작곡가들의 창작 의욕을 꺾어놓는 게 대부분. 차이코프스키도 그 상처로 다시는 발레 곡을 작곡하지 않겠다는 선언했다.

이런 차이코프스키에게 손을 내밀어 살린 곳은 의외로 마린스키 극장이었다. 는 그저 반주 역할을 하던 발레 음악의 가치를 한 단계 높인 작품이었다. 실패한 것은 안무였다고 분석한 건 마린스키 극장. 안무가 잘못돼 전체 공연의 실패로 이어졌는데, 이를 작곡한 차이코프스키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객관적으로 분석한 것.

이에 따라 경쟁극장에 속해 있던 차이코프스키에게 와 의 작곡을 잇따라 의뢰해 초연을 하였다. 또 차이코프스키 추모행사에서 를 프티파와 이바노프의 안무로 새로이 탄생시켜 경이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마린스키 극장은 그 후 모스크바로의 수도 이전과 소련의 붕괴 등 많은 위기가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대한 극장으로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정신때문이다. 그리고 게르기예프의 감독 아래 세계 최대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 발레단을 거느린 극장으로 다시 부활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인 게르기예프는 과거 마린스키 극장의 정신을 이어받아 스탈린이 금지시켜 사장되었던 프로코피에프의 작품을 연주하는 등 정치색을 배제한 다양한 레파토리를 섭렵해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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