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 동시통역사 마리의 '차이와 사이'
일-러 동시통역사 마리의 '차이와 사이'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11.04.10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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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는 일본어-러시아어 동시 통역사이자 유능한 작가였다. 언어와 관련해 참 많은 책을 썼다. , , (모두 마음산책 펴냄)...많은 저서에서 동시 통역사로서의 정체성과 고충을 절절히 드러냈다.

그녀는 언어와 문화 차이에서 비롯되는 유머, 속담을 비튼 유머로 눈길을 잡는다. "'곰의 친절'이라는 러시아 속담은 곰이 토끼 볼에 붙은 모기를 잡아주려고 친절하게 앞발로 쳤다가 토끼가 승천해버렸다는 우화시를 바탕으로 한다'()는 등..

러시아어와 일본어를 통역으로도, 글로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덕분에 그녀는 생전에 많은 강단 위에 서기도 했다. 최근에 나온 (홍성민 옮김, 역시 마음산책 펴냄)는 그녀의 네 번의 강연 내용을 묶은 것이다.

이 책은 암컷과 수컷의 차이(1장), 언어와 또 다른 언어의 차이(2장), 통역과 번역의 차이(3장), 국제화와 글로벌리제이션의 차이(4장) 등을 잘 보여준다.

그녀는 다소 단정적으로 보일 만큼 '차이'를 명확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수컷은 이래, 암컷은 저래, 일본어는 이래, 러시아어는 저래…' 약간은 섣부른 단정 위에서 쭉쭉 뻗어나가는 대조의 도식을 따라가다 보면, '아무렴 어때, 재밌는데 뭘'이라는 감상에 닿는다. 어떻게 보면 개인의 체험과 결부된 '편견'이다. 하지만 헐뜯기 어려운 설득력과 재치, 통찰력을 보여주기에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통역의 고충을 얘기한 2장과 3장은 러시아어 전공자들은 꼭 읽을만 하다. 그녀는 똑같은 말에 대해서도 해석은 제각각이고, 통역은 그 해석의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툴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개그를 꺼낸다.

뉴욕 빈민가에서 한 흑인 부랑자 앞에 갑자기 신이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하얘지고 싶다', "여자들의 화제의 대상이 되고 싶다', "늘 여자 가랑이 사이에 있고 싶다'라고 외쳤더니 순식간에 남자는 사라지고 탐폰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다는 얘기다.ㅎㅎㅎ

그녀는 "통역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의미의 폭을 좁혀서 꼭 특정한 의미로 전달되기를 바라는 번역어를 선택하는 것" 이라고 말한다. 같은 언어로 말해도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개념 A를 상대방이 각자 경험에 따라 'A'나 'B로 해독하기에 그만큼 통역은 어렵다는 것이다. 동시 통역사는 또 순식간에 해치워야 한다. 이를 위해 회의가 잡히면 회의 당일 전까지 주제와 관련된 단어들을 죽도록 암기한다고 한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발언자의 핵심 정보를 누락시키지 않도록, 순간적 기억력도 필수로 갖춰야 한다.

요네하라 마리는 통역이라는 어려운 길에 들어선 이유를 유년 시절 감동적인 순간에서 찾는다. 체코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 4학년 시절, 캐나다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치보라는 남자아이가 등장, 학교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늘 여자아이들을 울게 만드는 대단한 장난꾸러기 치보였는데, 어느 날 여선생님이 한 마디로 그를 제압한다. "더 이상 말썽 피우기만 해. 그 불룩한 감자 얼굴을 시머트리(symmetry)로 만들어줄 테니까'라고. 아이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시머트리는 '대칭형'이라는 뜻이다. 치보는 그때 마침 오른쪽 볼이 보라색으로 불룩하게 부어 있었고, 반 친구들은 바로 전 수업 시간에 '시머트리'라는 단어를 배웠다. 갓 배운 신선한 단어에 상징적인 시적인 표현, 게다가 실제로 이 사건 이후 치보는 얌전해졌다.

마리는 왜 그랬을까 궁금해 하다가, 자신이 갓 전학 왔을 때 언어의 차이로 누구와도 같이 동시에 웃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치보의 '부적응 말썽'은 모두가 한 단어에 의미 공유를 했던 순간 사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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