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출신 누드 여성 시위 그룹 피멘은
우크라 출신 누드 여성 시위 그룹 피멘은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13.04.28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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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출신 여성운동단체 ‘피멘’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푸틴 대통령이 독일 방문중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하노버 박람회로 가는 길목에 기다리고 있다가 상반신을 벗고 푸틴 대통령을 향해 달려드는 등 러시아와 그 지도자들에 대해 과격한 시위를 서슴치 않고 있다. 피멘은 성매매, 섹스산업, 인신매매, 국제결혼 알선업체와 독재·부패·교회 등에 반대하고 동성 결혼과 좌파적 경제정책에 찬성한다.

이들이 즉각적으로 관심을 끈 것은 시위 여성들이 어디서나 상반신 누드 시위를 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피멘 행동가들의 가슴엔 ‘도덕 따위는 던져라’ 같은 메시지가 적혀 있고 “왔노라, 벗었노라, 정복했노라” 같은 유인물을 뿌린다.

이들이 누드 시위를 주장하는 것은 간단하다. “성(性)을 자동차나 쿠키를 팔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데 사회적·정치적 이슈를 부각시키는데 성을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사회가 여성성의 상징인 가슴을 통제하는 만큼 토플리스가 된다는 것은 억압의 상징인 가슴을 드러냄으로써 성취하고 저항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나 시위자들이 날씬한 몸매와 빼어난 미모의 20대 여성들이라는 점은 피멘의 ‘성 상업주의’를 비판하는 근거다.

피멘의 종주국은 우크라이나. 창립자인 안나 헛솔(28)은 섹스관광, 가정 내 폭력, 남녀 간 임금차별 등에 둔감한 현실에 분노했다.

헛솔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쇼비즈니스 매니저로 일했다. 그러나 그는 또래의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신데렐라가 되기를 꿈꾸며 고국을 떠났다가 사기꾼들에게 속아 성매매의 함정에 빠져드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제는 17개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프랑스·벨기에·캐나다에 지부가 생기고 15만 명 이상의 지지 그룹을 거느리고 있다. 행동대원은 수백 명 수준이다.

타깃 중 하나인 푸틴 대통령이다. 그러나 푸틴은 이미 여유로워졌다. 하노버 박람회에서 5명의 피멘 시위자와 마주치자 푸틴 대통령은 양손의 엄지를 들어올리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시위자의 가슴에 적힌 ‘엿먹어라, 이 독재자야’라는 글씨를 보고도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무역박람회 주최 측은 박람회를 홍보해 준 이 우크라이나 여성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라는 조크까지 던졌다.

조직 운영의 투명성을 문제 삼는 세력도 있다. 다른 모든 조직과 마찬가지로 피멘도 운영 자금이 필요하다. 피멘 웹사이트에서는 40달러짜리 티셔츠나 머그컵 같은 기념품을 판매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크고 작은 손들이 이미 피멘을 후원하고 있다. 좌파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피멘도 결국에는 자본주의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새로운 게 뭐냐”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종교와 충돌 양상은 정부와의 충돌보다 훨씬 첨예하다. 피멘의 기류는 무신론·반종교다. 무신론자 리처드 도슨도 피멘 지지자다. 지난해 11월 프랑스에서는 동성 결혼 문제를 두고 보수적인 가톨릭 시위대와 격돌했다. 벨기에에서는 23일 네 명의 피멘 행동대원이 한 대학의 토론회에 참석 중이던 앙드레 조제프 레오나르 대주교에게 물을 끼얹었다. 벨기에 가톨릭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그가 동성 결혼에 반대한다는 게 공격 이유였다. 지난달 말 레오나르 대주교는 “동성 연애자들은 독신으로 지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중동에서는 누드 시위라는 방법을 두고 문명 충돌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피멘은 새천년 시대를 이끌어갈 진정한 페미니즘을 자처한다. 상당수 시위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마조네스 전사들처럼 그들의 급진 페미니즘을 실천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 언제 ‘순교자’를 배출하는 불상사가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기성 페미니스트들의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 않다. 온건한 여성운동가들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벗는 데만 너무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질문을 피멘에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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