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주일간 러시아인들에겐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지난 1주일간 러시아인들에겐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 이진희
  • jhnews@naver.com
  • 승인 2014.11.09 0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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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람들에게 지난 1주일은 '과거 악몽'들을 되살리게 했다. 구 소련 붕괴 직후인 1992년 시장경제 도입을 시작으로 90년대 두어차례의 통화 개혁, 1998년 모라토리엄 선언, 2006년 5,000루블짜리 화페발행,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등등..지난 20여년간에 걸쳐 수도 없이 겪었던 현실속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게 아니냐는 불안에 시달렸다.

외신에 따르며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5일 외환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며 사실상의 변동환율제 도입을 선언했다. 환율방어에 하루 3억5000만달러(약 3827억2500만원) 이상은 쓰지 않겠다고도 했다. 루블화는 이 발표 직후에만 3% 떨어지는 등 지난 1주일간 11% 폭락했다. 주간 기준으로 11년 만에 최대 낙폭이다. 루블화는 발표 당일 한때 달러당 4% 나 떨어재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유로 대비 루블화 가치는 사상 처음으로 1유로당 60루블 선을 상향 돌파했다.

달러 대비 루블화 가치는 지난 6월 중순 이후에만 25%, 올 들어 30% 추락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긴장감과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최근 두드러진 국제유가 하락세 등이 루블화에 악재로 작용했다. 이쯤되면 러시아 사람들은 달러 사재기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앞선 악몽을 되살리며, 학습효과로 얻을 체험이 다시 환전소 앞에 줄을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 줄은 다시 루블화 환율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모스크바의 크레디트유럽뱅크의 경우, 점심시간마다 달러를 사려는 러시아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일반인들의 달러 수요가 워낙 많아 이 은행을 비롯한 러시아 중소형 은행들은 고객들에게 달러 주문은 최소한 하루 전에 해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이와관련, FT는 러시아인들이 가까이는 2008-2009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와 1998년 모라토리엄 외환위기 때의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리게 됐다고 전한다. 루블화 약세가 지속되면 사상 최고 수준에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지율도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경고한다. 러시아는 2009년 금융위기 당시, 루블화 가치를 떠받치는 데만 2000억달러를 쏟아 부었다. 

러시아는 루블화 하락에 따른 가파른 물가 인상을 잡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이다. 그중의 하나가 소비자 심리 안정이다. 러시아 소비자연맹(Consumers Union)은 최근 ‘좋은가격(Good Price)’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요 소비품이나 특정 물품에 대한 최소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주요 서비스다. 국내 공급부족 현상과 가격 담합, 밀수 등으로 물가가 상승한 것을 억제하기 위해 소비자연맹이 7개의 주요 소매업체를 대상으로 연구조사하고 있다.

또 소비가 둔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동차도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활성화 방안으로 내놨다. 해외 직구 활성화 방안도 추진중이다. 최근(2013년 말) 해외 온라인 상점에서 상품을 구매할 경우, 150유로까지 면세 혜택을 주었는데, 이 상한 금액을 500유로(약 66만7000원)로 올렸다. 서방의 대 러시아 경제제재로 부족한 물품 공급을 인터넷 해외 직구쪽으로 찾는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또 오는 2016년까지 각종 세금 인상을 보류했다. 그동안 정부와 의회내에서 소득세와 판매세의 인상이 화두였는데, 이를 보류하는 등 정부의 세수 확보보다는 민생 경제안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각종 대책이 러시아인들에게는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러시아 증시와 채권시장마저 크게 흔들린다. 달러 기준인 모스크바 증시의 RTS지수는 이날 한때 심리적 지지선인 1000선이 무너지며 2009년 이후 최저치로 밀렸다. 10년 만기 러시아 국채 금리는 2009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10.3%까지 치솟았다. 

러시아 기업과 은행들의 외채상환 능력도 의심받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러시아 기업과 은행이 갚아야 할 외채는 각각 4220억달러, 1920억달러에 이른다. 이 중 연내에 갚아야 할 외채가 기업은 300억달러, 은행은 100억달러쯤 된다.

FT는 올해 안에 상환해야 할 외채 부담이 큰 기업은 대개 외화 수입이 탄탄한 국영 에너지 기업이어서 루블화 환율이 미치는 단기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은행권에 대한 우려는 크다고 지적했다.

반면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fAML)는 다른 분석을 내놨다. 외환 표시 회사채 발행 상위 17개 러시아 기업 가운데 외채의 80% 이상을 갚을 수 있는 현금을 가진 회사가 9곳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중 외채를 전액 상환할 수 있는 회사는 7곳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로스네프트는 러시아 정부에 이미 2조루블(약 45조3200억원)의 긴급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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