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황색 공포’가 밀려온다
러시아에 ‘황색 공포’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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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6.0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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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극동지역에 쏟아져 들어오자 러시아 당국 긴장… 중국은 시베리아 자원 개발 ‘구애’ 우수리스크= 글 · 사진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황색공포’ 중국인들이 러시아 국경을 넘어 극동지역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러시아인들이 품고 있는 두려움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러시아 연해주 정부의 일부 간부들은 중국인의 진출을 두고, 옛 고토 회복을 위한 ‘새로운 인해전술’이라며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얼마 전 하바로프스크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인들의 진출을 이대로 놔두면 언젠가 이 지역 사람들은 러시아어 대신 중국말을 공식언어로 써야 할지 모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중국인 연해주 주지사의 탄생까지 점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값싼 중국산 물건은 좋지만… 러시아가 갖는 두려움은 중국의 인적, 물적 공세의 규모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올해 러시아-중국간의 공식 무역액만도 2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지역에는 무려 120만명의 중국인들이 흩어져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불법 체류자들이다. 며칠짜리 관광비자로 들어왔다가 기간 만료 뒤에도 그냥 눌러앉는 중국인들이 많다. 따라서 러시아 당국은 중국인 불법 체류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당국은 국경지역에 가까운 우수리스크를 비롯해 블라디보스토크 등 대도시 길거리 곳곳에서 일상적인 단속작전을 펼치고 있다. 외국인이 여권이나 비자 없이 외출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중국인 불법 체류자가 대부분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중국인만을 표적 단속할 순 없는 탓에 외국인은 누구나 불시 검문에 응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돈 많은 중국인들은 러시아 여성과 계약결혼을 해 합법적인 장기 체류 신분을 확보하기도 한다.

러시아 당국에게는 중국인들이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중국산 값싼 소비제품을 갖다쓰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그들의 진출을 반겨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유입을 허용하자니 중국 경제권에 완전히 편입돼 중국인에게 발목을 잡힐까 두렵다. 극동지역에 사는 대다수 러시아인들의 한달 생활비는 100달러가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이들은 모스크바에서 건너온 유럽산 제품들보다 값이 훨씬 싼 중국 제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극동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유명한 ‘우스리스크 중국시장’에는 가전제품을 비롯해 의류, 신발, 일용잡화들이 없는 게 없이 풍성하게 진열돼 있다. 이 중국시장을 비롯해 그 밖의 다른 자유시장에도 거의 100%가 중국산으로 채워져 있다. 게다가 품질도 나날이 나아지고 있다는 게 현지 고려인 손 빅토로브나씨의 평가다.

하지만 흥미로운 현상이 금방 눈에 띈다. 중국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면 중국인보다는 러시아인들이 많다. 이고리 비탈리예비치(45)씨는 “러시아 지방정부들이 중국산 소비제품은 환영하면서도 중국인들이 거주하는 것은 여러 방법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직접 물건을 파는 중국인 상인들이 생각보다 적은 이유다. 중국인들이 관광 목적으로 러시아에 들어올 때는 보통 1~2일간 비자가 나오나, 4일 이상은 허가를 하지 않는다. 다만 취업을 목적으로 입국하는 중국인에게는 한달간의 비자가 발급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주마다 약간 차이가 있으나 중국인의 입국 절차를 특히 까다롭게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인들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최소화하면서 경제적 실리는 챙기려는 러시아 당국의 이중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송유관 건설, 중국과 일본의 싸움 러시아-중국 사이의 활발한 국경무역도 눈길을 끈다. 극동러시아와 중국 동북 3성을 가르는 아무르강(중국 명칭은 헤이룽강) 국경지역은 과거 중-소 분쟁의 상징으로 일컬었지만, 이제는 양국간 활발한 국경무역의 대명사로 불린다. 하바로프스크나 연해주 주정부 당국은 국경지역에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해 교역 촉진에 나서고 있다. 자유무역지대 안에서는 중국 상인들이 비자 없이도 자유롭게 오가면서 물건을 팔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경계짓는 크라스키노-훈춘, 폴타프카-둥닝, 포고리치니예-쑤이펀허 세 군데가 유망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자유무역지대가 낙후한 변방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면서도 중국 상인을 일정 지역 안에서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끼는 듯하다.

중국에게 러시아 극동지역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따라 각종 원자재 확보에 비상이 걸린 중국은 가까운 러시아 극동지역의 풍부한 자원에 눈독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 전체 면적의 36.4%를 차지하는 광할한 극동지역은 원유, 천연가스, 석탄, 철광석, 금, 다이아몬드, 목재, 수산물 등 세계적인 천연자원의 보고다. 중국 당국이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구애의 손길을 러시아에 뻗치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푸틴 정권은 옛 소련 붕괴 뒤의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니다. 푸틴 정권은 자원개발 프로젝트마다 일본과 경쟁을 붙여 중국 당국의 애간장을 바짝 태우고 있다. 중국은 지난 10여년간 25억달러를 들여 시베리아 앙가르스크와 중국 동북부 다칭을 잇는 송유관을 건설하도록 러시아 정부를 설득해왔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은 최종 결정을 미룬 채 일본이 희망하는 극동항구 나홋카로 송유관을 연결하는 쪽으로 기우는 듯한 발언을 흘리고 있다. 러시아는 극동과 시베리아 경제를 살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에 중국과 일본 자본 가운데 어느 쪽이 유리한지 막판까지 주판알을 열심히 굴리고 있는 셈이다. 바야흐로 러시아 극동 국경지역은 총성 없는 경제 전장으로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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