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에 가면 반드시 들러봐야 할 미술관, 트레치야코프 미술관
러시아 모스크바에 가면 반드시 들러봐야 할 미술관, 트레치야코프 미술관
  • 이진희
  • jhnews@naver.com
  • 승인 2016.08.02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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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러시아 관광 일정에는 미술관 투어가 포함되지 않는다. 저녁 시간을 빌어 가는 볼쇼이 발레 관람 정도가 문화예술의 나라에 간 예의정도라고 할까?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에르미타쥐 미술관을 찾아가듯이, 모스크바에서도 빠뜨리지 말아야 할 미술관이 있다. 트레치야코프 미술관이다. 

모스크바에는 트레치야코프 미술관과 푸쉬킨 미술관이 있다. 푸쉬킨이 주로 외국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면, 트레치야코프는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중이다. 트레치야코프 미술관 소장 작품은 13만여 점에 이른다고 한다. 러시아 유명 작가의 중요 작품은 모두 갖췄다고 보면 된다. 

트레치야코프 미술관은 19세기 말 러시아 최대 재벌이던 파벨 트레치야코프(1832~1898)가 수집한 미술품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1856년 자기의 집에 조그만하게 미술관을 갖췄다가 1892년 작품과 미술관을 모두 모스크바 시에 기증했다. 당시 기증한 작품은 회화 1362점, 드로잉 526점, 조각 9점이었다. 공산주의 혁명이전에는 모스크바 시립 미술관이었다.

현재의 위치에 미술관이 건립된 것은 1904년이다. ‘요정들이 사는 집’을 형상화한 환상적인 건물이다. 당시 러시아 최고 예술가 빅터 바스네초프가 설계를 맡았다. 소장품이 점점 늘어나자 그 옆에 부속 건물을 지어 오늘날의 형태가 됐다. 또 약간 떨어진 곳에 신관을 지었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러시아 미술품이 많은 것은 그의 엉뚱한 생각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 컬렉터들은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유럽 작품을 즐겨 수집했는데, 그는 엉뚱하게 러시아 미술 수집에 몰입한 탓에 당시의 괜찮은 미술작품은 모두 그의 품안으로 들어갔다.

사회주의 혁명이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은 1918년 모스크바 시립에서 국영으로 바뀌었다. 운영 방식도 달라졌지만, 가장 큰 위기는 2차 대전 때였다. 독일이 1941년 모스크바에 대규모 폭격을 가하자 트레치야코프 미술관은 ‘피난 작전’에 들어갔다. 1942년 9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미술품 수송 작전이 진행됐다. 액자를 뜯어내고 안전하게 포장해 시베리아로 옮겼다. 독일의 공습으로 미술관 건물은 부서졌지만, 소장품은 모두 안전하게 시베리아로 옮겨졌다. 러시아가 전쟁에 승기를 잡자 작품들은 1944년 10월부터 모스크바로 역수송됐다. 미술관 건물도 수리를 마치고 1945년 5월 다시 문을 열었다. 

트레치야코프는 19세기 후반 러시아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출현한 재벌 중 하나다. 그는 섬유 분야에 진출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당시 섬유업은 ‘산업화의 꽃’이자 ‘황금알 낳는 거위’였다. 그는 섬유산업에서 엄청난 돈을 모은 뒤 은행, 유통업, 무역업, 부동산업에 진출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트레티야코프는 매우 특이한 재벌이었다. ‘자선사업의 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회 곳곳에 많은 기부를 했다. 음악 등 각종 예술지원사업, 교육사업, 장애인 보호시설 등 그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크림전쟁과 러시아-터키 전쟁에서 생겨난 유가족을 돕는 일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는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했다.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이다. 구 소련 정권도 그의 이같은 헌신을 인정해 1977년 트레티야코프 형제의 이름에 '별(스타)'을 붙여주었다.  

그가 미술품에 관심을 갖는 것은 22세이던 1854년부터. 미술관을 세울 꿈을 안고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대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러시아 작가라고 하면 그 작가의 작품을 반드시 수집했다. 시리즈 작품은 해당 시리즈 전부를 사 모았다. 수집품이 계속 늘어나자 그는 집 확장을 거듭했고, 1881년부터는 일반인에게도 개방했다. 그의 자택 미술관은 매우 인기가 좋아 한 해에 3만 명이나 찾아왔다. 그로부터 10년 후, 많은 그림이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미술관은 잠시 문을 닫았지만, 1892년에는 동생이 수집한 서유럽 작품까지 기증받아 자택 미술관은 러시아 최고의 미술관으로 등극한다.

트레치야코프 미술관에는 톨스토이 초상화가 있는데, 이 그림을 얻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시 유명한 화가이던 이반 크람스코가 나서 톨스토이에게 “살아 있을 때 초상화를 그려놓지 않으면 죽은 후에 누군가가 당신을 상상으로 그릴 것"이라며 초상화 작업을 압박했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이 말에 설득을 당해 자신의 초상화를 두 점 그리도록 했다고 한다. 하나는 트레티야코프에게 주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갖기 위해서였다.

트레티야코프는 자신의 초상화 또한 남겼다. 1876년 크람스코이는 트레티야코프의 집에 머물며 트레티야코프 부부의 초상화를 그렸다. 러시아 국민화가 일리야 레핀도 1883년 트레티야코프의 초상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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