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슬란 인질극중 실종된 고려인 학생 '스베타'
베슬란 인질극중 실종된 고려인 학생 '스베타'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4.09.1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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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동아일보

"아직도 우리 스베타(스베틀라나의 애칭)가 살아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 북오세티야공화국 베슬란 인질극 참사 발생 열하루째인 12일. 진압 당시 행방불명된 베슬란 제1공립학교 6학년 스베틀라나 최양(12)의 어머니 마리나 박씨(38)는 이날도 애타는 마음으로 사고 현장과 병원을 정신없이 찾아다녔다. 최양은 190명의 실종자 중 유일한 고려인 학생.

박씨는 남편과 오래전 헤어져 혼자 딸을 키우며 살아 왔다. 그만큼 최양은 박씨의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10여년 동안 연락 없이 지내던 전 남편 세르게이 최씨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지만 그녀에겐 위안이 되지 못했다.

“노래 잘하고 그림 잘 그리는 꿈 많은 아이, 우리 스베타가 왜 다른 민족의 분쟁에 휘말려 희생돼야 합니까?”

박씨는 “언젠가는 한국을 꼭 함께 가보자고 딸과 약속했다”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스베타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울먹였다.

박씨는 딸이 의식을 잃고 입원해 신원 파악이 안 되고 있거나 파렴치범들에 의해 납치돼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질서한 진압 당시 현장 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구출된 아이들을 병원으로 실어 나르는 척하며 어디론가 끌고 갔다는 것.

실제 박씨를 비롯한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당신 아이를 데리고 있으니 돈을 내면 돌려보내겠다”는 협박전화가 이어지고 있어 이들을 한 번 더 울리고 있다.

게다가 인질범 중 고려인이 포함돼 있다는 현지 검찰의 발표는 박씨의 가슴에 깊은 못을 박았다. 그 동양계 시신은 결국 고려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박씨에 따르면 러시아 지방검찰은 처음엔 그를 카자흐인이라고 했으나 카자흐스탄 정부가 구호금을 보내오자 슬그머니 카레예츠(한인·여기선 고려인을 지칭)로 발표를 바꾸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때 극동에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됐고 아버지 때 다시 카프카스로 옮겨와 살기 시작한 박씨의 가족사는 이처럼 50만 고려인의 서글픈 유랑사와 함께하고 있다.박씨의 친척 대부분이 옛소련 지역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어 이번 사건 소식을 듣고도 누구 하나 달려오지 못한 채 멀리서만 안타까운 마음만 보내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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