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이 방러에서 가스도입에 좌절한 것은-동아일보
노 대통령이 방러에서 가스도입에 좌절한 것은-동아일보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4.09.28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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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장래에 가스산업 분야에서의 협력협정을 체결한다는 의사를 확인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때 양국 정상이 21일 채택한 공동선언에서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 부문에 대해 한국은 이같이 애매모호한 합의 문구를 얻어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지난해 11월 한국 중국 러시아 3국은 코빅타 가스전(이르쿠츠크 북쪽)∼중국∼서해∼경기 평택을 잇는 4238km의 가스관을 건설해 2008년부터 중국과 한국에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를 공급하기로 서명까지 마쳤다. 그런데도 이번 방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하고 원칙론을 확인하는 데 그친 것은 복잡한 속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장량 2조m³의 이 가스전을 둘러싸고 중국 일본 러시아 3국간에 이해가 얽히고 설키면서 한국으로서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코빅타 가스전 개발사업은 한국으로서는 앞으로 30년 동안 매년 700만t의 천연가스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가스관 노선을 중국을 경유하지 않고 연해주의 나홋카 쪽으로 바꾸기로 사실상 결정함으로써 상황이 복잡하게 꼬였다.

러시아의 노선 변경은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에너지 자원을 국유화함으로써 경제 개발의 핵심 동력으로 삼겠다는 신(新) 에너지 패권주의에 따른 것. 여기에는 극동 시베리아의 천연가스를 중국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일본의 적극적인 공세도 작용했다.

기존 노선의 수혜국은 중국(연간 1400만t)과 한국(연간 700만t)이지만 노선이 바뀌면 중국이 배제되는 대신 수혜국은 일본 한국으로 바뀌게 된다.

일본은 중국 경유 노선이 유지될 경우 에너지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중국이 생산량의 대부분을 선점할 것이 뻔해 천연가스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 지난해 러시아에 75억달러를 제공해 극동 시베리아 유전 개발을 약속하는 대가로 노선 변경을 요구해 왔다.

열쇠를 쥐고 있는 러시아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노선 변경을 최종 확정할 예정. 그리고 노 대통령의 이번 러시아 방문 때 노선 변경 가능성이 있음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측과의 협의에 참여했던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로서는 러시아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기존 합의 당사자인 중국을 고려하면 사업의 백지화를 우리가 먼저 제안할 수는 없는 만큼 러시아가 나서서 매듭을 지으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노선 변경이 이뤄지면 기존 합의가 완전 백지화되고 가스 도입물량 등을 원점에서 재협상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가스 배관의 길이가 늘어나게 되고 천연가스를 배편으로 운송하기 위해 액체상태(LNG)로 전환하는 대규모 설비를 갖춰야 하는 등 사업비용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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