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우크라이나, 그곳이 가는 길
혼돈 우크라이나, 그곳이 가는 길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4.11.25 0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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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함께 구소련을 지탱해온 대국 우크라이나가 정국 혼란에 휩쓸렸다. 21일 실시된 대선 결과를 놓고 우크라이나 자체는 물론이고, 구소련권의 영향력 재결집을 노리는 러시아와 해체를 목표로 삼는 미국이 치열한 전쟁에 돌입했다.

러시아는 쿠츠마 대통령과 그의 후계자인 빅토르 야노코비치 현 총리를, 미국은 야당후보인 빅토르 유시첸코 전 총리의 승리를 사실상 선언해 대리전을 펴고 있다.

미국의 개입은 부시 대통령의 재선과 함께 아주 노골적이다. 이전만해도 러시아의 일정 영향력을 인정해주던 관행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곧 사임할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24일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결과를 받아 들일 수 없다고 대놓고 말했다. "이번 선거 결과가 미국과 우크라이나 관계를 위한 결과가 아니라"고 강조했으며 외교 실무진에서는 이미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협력 제한 등 제재안을 공공연히 거론하고 있다. 크츠마 대통령으로서는 아주 자존심이 상하는 조치들이고, 러시아 마찬가지다.

파월이 쿠츠마 대통령에게 "시위대를 진압하지말라"고 경고했다고 AP 통신의 보도에 러시아가 발끈하고 나서는 판이다. 외신은 우크라이나가 그루지야의 무혈혁명과 같은 길을 걷지 않겠느냐? 제2의 세르비아(유고연방)이 되는 것 아니냐고 성급한 판단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두 후보의 지지세력이 지역으로 완전히 갈려 있다는 점이다. 키예프를 비롯해 시위에 나선 주민들은 대부분 서쪽이고, 동쪽은 웃기는 넘들이라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여당 후보의 당선 발표가 나오자 수만명의 시위대는 키예프시에 모여 결과가 뒤집혀야한다고 주장하는 것만 보면 바로 그루지야의 무혈혁명을 연상하기 쉽지만 의회도 그렇고, 주민도 그렇고 두쪽으로 나눠지고 있으니 쉽게 한쪽으로 무너질 양상은 아닌 듯하다.

일단 우크라이나 중앙선관위는 24일 야누코비치 후보가 49.46%의 득표율로 46.61%를 얻은 야당 후보인 빅토르 유시첸코를 제치고 승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3일 선거 부정이 자행됐다며 최종 결과를 공표할지 말 것을 주장했던 2명의 선관위원은 이날 개표 결과에 서명을 거부하는 등 부정 선거 의혹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유시첸코는 "선관위의 발표를 수용할 수 없다. 두번의 선거기간동안 1만1천건의 위법행위가 자행됐다"면서 "관리들의 행동은 형법에 따라 조사돼야만 한다"고 말했다. 야누코비치 총리도 선관위의 결과 발표전 "개표결과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고 법적 정통성을 얻을 때까지 승리를 성급히 공식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쿠츠마 대통령은 선거결과를 둘러싼 위기감이 고조되자 "야당이 쿠데타를 획책할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양측에 정치적 대화를 촉구했다.

우리나라가 선거만 치르면 동과 서로 나뉘는 안타까운 현실이 우크라이나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동이든 서든 그 심정은 다들 짐작할만하다. 그렇다고 판을 깨지는 못했다. 그게 민주화의 성숙이든, 총칼의 위협이든 체제는 영속돼 왔는데, 우크라이나는 현재 그런 정도가 아닌 듯하다.

유시첸코 지지자들은 이날 선거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며 사흘째 항의 시위를 계속했고 수백명은 선관위 빌딩에 몰려들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키예프 시내의 '독립광장'에서는 눈이 내리는 혹한의 날씨 속에 이날 오전 8시(현지시각)부터 유시첸코를 지지하는 수만명의 인파가 모여 시위에 나섰다. 지난 23일 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정부 청사 앞까지 진격했던 시위대는 이날도 1천여명이 대통령 집무실 전방 50m 앞까지 다가가 '유시첸코 대통령!' '쿠츠마는 물러나라', `선거 무효'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특히 유시첸코를 대통령으로 선언한 르비프시(市)에서는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를 떠나라"며 극단적인 반정부, 반러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유시첸코 시위대에 맞서 야누코비치를 지지하는 도네츠크 등 동부지역 시민들도 24일 집회를 갖고 야누코비치의 승리 선언을 요구, 대선을 둘러싼 국론분열은 쉽게 가라앉기 어려울 전망이다.

다만 우크라이나 역시 독재체제 아래서 상당기간을 보냈고, 그 여파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권력이 질서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야당 후보인 유시첸코가 "이번 선거는 레오니드 쿠츠마 대통령과 야누코비치 총리 세력의 쿠데타"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의회세력이든 법적 판단이든 무력진압이든 어떤 방식에 의해서든 야누코비치 새 권력이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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