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기념일이란 -펀글
전승기념일이란 -펀글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5.01.18 0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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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러시아인들에게 소생의 계절이다. 긴 겨울 동안 눈과 얼음과 황량함뿐이었던 산천이 연둣빛으로 살아나는 이 달에는 1, 2일의 메이데이(노동절), 9일의 전승기념일이 들어 있다. 사람들은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활짝 펴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화사한 봄 날씨를 견뎌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5월의 시작인 메이데이는 먹고 마시며 즐기는 달콤한 휴식을 제공한다. 그에 비하면 전승기념일의 분위기는 무언가 엄숙한 구석이 있다. 히틀러 군대와의 그 처절했던 대조국전쟁(2차 세계대전 중 독·소전쟁)에서 2천7백만명이 희생됐던 참혹한 역사를 결코 잊을 수 없음이다.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참전용사들은 늙은 전우들과 재상봉해 감격의 퍼레이드를 펼친다. 온국민이 승리와 소생의 환희를 되새기며 상처받은 강대국의 자존심을 서로 어루만진다.

러시아의 전승기념일은 소련군이 독일군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후 승전을 공식 선언한 1945년 5월9일에서 유래한다. 전승기념일은 나라에 따라 날짜와 명칭이 다르거나 아예 없는 곳도 많다. 유고슬라비아는 러시아와 같은 5월9일이지만 프랑스는 5월8일이다. 체코는 5월8일을 해방일로 기념한다. 패전국 독일은 물론 폴란드·네덜란드·오스트리아에는 전승기념일이 없다.

태평양전쟁 패전국가인 일본은 8월15일을 종전기념일로 정하고 있지만 국경일은 아니다. 북한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일인 1953년 7월27일이 ‘미제를 몰아낸’ 전승기념일이다.

올해 러시아의 전승 60주년 기념식에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나란히 초청받았다는 보도가 나와 주목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국 위상 과시를 위해 55개국 정상을 초청한 자리다. 사실이라면 남북정상회담 성사까지 바라볼 만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러시아의 초청 사실 자체가 비공개 상태인 데다 김정일 위원장이 이런 유의 국제행사에 참석한 전례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가능성이나마 버리지 않고 싶은 심정은 역시 평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리라.

김철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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