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외교정책 푸틴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러시아 외교정책 푸틴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5.02.25 0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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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카라가노프 러시아 외교·국방정책협 의장은 러시아의 외교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기고를 했다. 경향신문에 실린 글을 옮겨옵니다.

러시아인들은 2년전 만족한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었다. 우리는 경제력과 군사력이 보장할 수 있는 이상으로 외교분야에서 강한 것처럼 보였다. 이젠 더이상 그렇지 않다.

지난해엔 러시아의 경제적 주권을 제약하던 외채를 거의 완불하는 등 몇가지 성공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외관상 힘은 변하지 않은 가운데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은 쇠퇴했다. 중동지역, 테러와의 전쟁,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를 위한 노력 등 지구촌의 여러 분야에서 러시아는 값있는 참여자가 돼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혼란스럽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효율적인 의사전달자이지만 러시아는 지난 한 해 세계무대에서 이미지 훼손과 지위 손상을 겪었다. 이웃나라 벨로루시에선 알렉산데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러시아의 경고를 무시하고 스스로 종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국민투표를 밀고 나갔다.

러시아는 이후 우크라이나에 모든 관심을 쏟았으나 또 실패를 경험했다. 극동에서는 과거 이행하지 않은 약속을 보상하려다 결국 중국측 국경분쟁 해결조건을 수용했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을 상대로 한 러시아의 대화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

요즘 러시아의 대 서방 관계엔 폭넓은 냉랭한 기운이 덮씌워져 있다. 지금까지 이것이 재앙으로 변하진 않았으나 서방 언론은 러시아와 그 지도층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러시아인을 멸시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의 최근 사태는 ‘유럽·아시아 경제공동체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독립국가연합(CIS) 소속 국가들은 러시아의 취약점과 무능함을 이미 간파했다.

나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 될지라도 뭔가 말하고 싶다. 상심말고 듣기 바란다. 러시아인들은 아직 실패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외교정책을 획기적으로 수정하지 않는다면 실패를 맛보는 것은 물론 국제무대에서 지위와 영향력 상실을 겪을 것이 뻔하다.

실패의 주된 원인은 러시아 외교정책의 지적(知的) 취약성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나라에 대한 러시아인의 지식과 이해는 계속 취약해지고 있다. 예컨대, 우크라이나에서의 대실패는 시의적절하게 정세를 평가한 뒤 승리가 확실해 보이는 후보를 지원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러시아는 상업적 이해를 염두에 두고 아마추어 러시아인들에게 아마추어 우크라이나인들을 담당하도록 맡긴 결과 실패했다.

러시아의 외교정책은 ‘인격화된 푸틴’이라 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행한다. 인재들이 모여 있는 외무부는 대체로 외교정책 기획과정에서 배제돼 있다. 그 결과 좋은 결정인 것처럼 보여도 기획이 불완전하며 이로 인해 실수의 위험이 높아진다. 게다가 외교업무에 관한 책임이 엉뚱한 인사들에게 돌아가기도 한다.

최근 들어 과도한 중앙집권, 조직보다는 개인에 대한 의존, 관리의 부실화 등 러시아 정치체제의 근본적 여러 취약점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의 지배 엘리트는 이 나라의 역량과 필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실패가 빈발함에 따라 우리는 타인을 비난하거나 다른 강대국에 맞서기 위한 공상적 계획을 세우고 있다.

러시아는 지배 엘리트나 일반인 등 인재들에게서 나오는 국가전략을 놓고 진지하게 토의를 벌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외교정책에서도 효율적 기획과 조정 메커니즘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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