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스트로이카의 그늘을 이용하는 푸틴 독재?
페레스트로이카의 그늘을 이용하는 푸틴 독재?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5.03.20 0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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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칼럼니스트 윌리엄 파트는 대소 강경론자다. 냉전시절부터 강경파에 속한 그는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에 속해 있으면서 대소 강경론을 펼쳤다. 그가 보는 러시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러시아 국민들은 20년 세월이 흐른 지금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러시아 국민의 거의 절반은 그것이 아마도 필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지난 10년간 의미있는 변화이다. 러시아에서 페레스트로이카는 유리 안드로포프가 1년 임기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으로 취임한 1982년 11월에 시작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렇지만 소련 지도층의 일부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국가와 경제 개혁의 필요성이 분명히 조성되어 있었다.

당시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도 안드로포프와 같은 생각이었지만 그 이유는 달랐다. 중국 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스스로 부자가 되라고 말하면서 경제성장과 부의 창출을 독려했는데 이것은 그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중국 지도층은 긍정적인 정치개혁의 필요성이나 불가피성을 결코 진지하게 인정한 적이 없었다. 천안문 광장 시위대의 진압은 중국 국민과 엘리트들의 자연발생적인 개혁 욕구에 대한 그들의 응답이었다.

안드로포프는 소련의 정치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알았다. 단지 그는 경제개혁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 그것을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르바초프의 통치 하에서 개혁정책은 “의식 혁명(글라스노스트, 즉 과거와 현재에 대한 진실 수용)에 이어 차례로 정치개혁과 경제혁신을 단행”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86년 하반기까지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는 점차 암묵적으로 혁명적 속성을 띠게 되었고 급진적이고 결정적인 민주화와 개혁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소련은 시장경제나 시장민주주의를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소련 사회는 기업가적 전통과 정신, 시민사회의 가치관과 조직, 신세력을 포용할 수 있는 제도적 및 법적 구조를 결여하고 있었다.

89년 말까지 고르바초프는 레이건 행정부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고 중부 및 동부 유럽에서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종식시키는 등 대외관계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절실한 경제적 발전에 실패했고 소수민족들을 독립시킴으로써 USSR(소비에트연방공화국)의 해체는 불가피해졌다.

러시아학술원 사회과학연구소는 지난 1월과 2월 중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러시아의 젊은이와 중년층, 그리고 교육받은 적극적인 엘리트 계층들은 역사적인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해 아주 높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수의 러시아 국민들은 페레스트로이카의 초기단계(85∼88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 그 자체보다 한층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의 마지막 단계(89∼91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전체 응답자의 4분의 1에 미치지 못했다.

이 조사에서 절대 다수의 러시아인들은 페레스트로이카 기간에 소련 사회가 “안정의 상실, 사기 저하, 안정과 미래에 대한 자신감의 상실, 국가 질서의 잠식” 등 “큰 손실”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국민들의 바로 이러한 상실감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윌리엄 파프(美 칼럼니스트)

세계일보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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