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연해주지역에 고려인 자치주를 만든다고 하는데...
러 연해주지역에 고려인 자치주를 만든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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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2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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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차츰 무르익는 가운데 러시아 연해주 지역이 언론의 새로운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에선 이 같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작은 행사가 열렸다.

뜻있는 분들이 모여 연해주에 자치주를 건설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우선 연해주에 고려인 자치구를 만들고 향후 3년 동안 3만 명을 유치해 자치주를 설립한다는 게 모임의 기본 목표다.

해외에 자치주를 건설한다는 것은 여론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행사다. 신문사로서도 멋들어진 헤드라인 제목이 나오는 좋은 기사감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민족이 다른 나라에 자치주를 건설한다는 것은 사뭇 미묘한 사안이다. 사안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가볍게 '연해주 자치주'를 운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그 이유는 첫째 러시아가 자치주라는 용어에 대해 적지 않은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러시아 영토인 연해주에 모여 사는 한인 거주지를 '자치주'라고 부르는 것은 러시아로서는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러시아에서 자치주나 자치 영토는 장차 러시아에서 이탈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지역을 의미한다. 소련이 붕괴할 당시 자치공화국들이 모두 독립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는 자치라는 용어에 대해 매우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둘째는 연해주와 관련된 고려인의 삶에 있어 한국과 러시아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고뇌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 이 같은 사실을 간과하면 러시아가 자치주를 허용하려다가도 주저하게 하는 요인을 제공할 수 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연해주에서 발생한 사례를 소개하겠다. 러시아는 스탈린이 사망한 뒤 연해주에서의 인구 감소를 막고 중앙아시아의 한인들, 즉 고려인들을 연해주로 유입시키기 위해 러시아 군대가 철수한 지역의 막사나 군인 가족들의 아파트를 이들에게 제공한 적이 있다.

주로 우스리스크의 북쪽과 항카호 남쪽의 평원지대로, 이를 테면 라즈돌노예.포포프카.풀라토노부카.오레호보, 크레모보 등 5개 지역이었다. 러시아는 이들 지역의 막사나 군인 아파트를 고려인에게 줬고, 이와 함께 입주자들에게 가구당 평균 3ha의 농지도 제공했다. 한마디로 러시아가 고려인들에게 특혜를 베푼 것이다.

하지만 시설이 워낙 낙후됐기 때문에 수리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 한국에서 원조를 해줬지만 그 기금으로는 마을 하나도 제대로 보수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고려인들은 거주를 포기하고 연해주 정부에 모든 농지를 반환하고 말았다. 당시 러시아는 이들 고려인 거주지에 대해 그토록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음에도 그곳에 자치주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 밖에 한인들이 농토를 임대받아 수백ha를 소유한 기업을 만들고 우정마을까지 건설해 집단적인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미할엘노부카에는 고려인들이 대거 거주하면서 넓은 경작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경우에도 자치주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현재 미할엘노부카는 발레리 수히닌 주한 러시아 부대사의 제안에 따라 '한.러 공동 영농지대'로 불리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어떤 경우라도 자치주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한인의 입에서 다른 나라의 거주지 혹은 정착촌에 대해 자치주 운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설사 자치주가 생긴다 해도 그것은 고려인의 것이지 한국이 관여할 일은 아니다.

필자가 이 사안에 이처럼 강한 어조로 제언하는 것은 이러한 부주의가 러시아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에게 오히려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같은 위험을 사전에 막는 것이 동포들의 안위와 위상 강화를 염려하는 재외동포재단의 이사장으로서의 책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광규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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